주간동아 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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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 흥분’이 다양한 맛 죽일라

막걸리

  • 황교익 blog.naver.com/foodi2

    입력2010-05-03 11: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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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막걸리 흥분’이 다양한 맛 죽일라

    다양한 맛으로 소비자들을 유혹하는 막걸리.

    일본의 막걸리 붐을 확인할 수는 없으나 국내에 막걸리 바람이 분 것은 확실하다. 음식 유행에 가장 민감하다는 홍대 앞에는 연일 새로운 스타일의 막걸리집이 문을 열고, 전국 막걸리 수십 종을 갖다놓고 파는 집도 생겼다.

    막걸리 붐으로 가장 들뜬 곳은 다름 아닌 언론이다. 막걸리집과 양조장 취재를 넘어 막걸리 제조와 유통의 문제까지 꼼꼼히 따지고 전문가들의 막걸리 평가 자리를 마련하느라 분주하다. 그래선지 막걸리 기사가 빠지는 날이 하루도 없다. 와인이나 사케 붐에 들썩였던 일을 생각하면 이번에도 음식 담당 기자들의 ‘흥분’으로 끝나는 게 아닌지 걱정되기도 한다.

    언론만큼 들떠 있는 곳은 대형 막걸리 제조업체다. 매출은 급성장하고 주가는 연일 상승 중이다. 음식점마다 막걸리 광고 포스터가 붙어 있고 텔레비전 광고도 한다. 막걸리의 보존기간 연장과 냉장 막걸리의 유통 등을 핵심 전략으로 내세워 막걸리 시장에 뛰어들 준비를 하는 대형 주류업체도 여럿 된다.

    이 대목에서 걱정이 하나 생겼다. 막걸리 붐이 오히려 막걸리의 다양성을 해치는 쪽으로 전개되지 않을까 싶어서다. 지방에는 소규모 생산, 소규모 유통구조를 유지하며 그 지역의 사람들에게 막걸리를 판매하는 오랜 전통의 제조업체가 곳곳에 박혀 있다. 그런데 대형 업체의 막걸리 시장 진출은 곧 지방 소규모 막걸리 생산자의 시장을 빼앗는 형국이다. 실제 요즘 어느 지방을 가든 대형 업체 막걸리 포스터가 눈에 띈다. 걱정이다.

    자본주의 사회이니 지방의 소규모 막걸리 생산자도 전국 유통망을 통해 자신의 막걸리를 판매할 수 있지 않느냐고 하겠지만 현실에서는 어려운 일이다. 전국 유통망을 확보한 대형 업체에서 소규모 막걸리 생산자의 것을 끼워줄 리 만무. 결국 독자적으로 유통망을 확보해야 하는데 여기에 막대한 비용을 들일 수 있는 막걸리 생산자는 매우 드물다.



    식품에서 이런 예는 많다. 예전에는 동네마다 소규모 두부공장이 있었으나 대형 업체들이 시장을 독식하면서 다 문을 닫았다. 대형 식품업체의 제품이니 더 믿을 만하고, 그래서 소비자가 선택한 것이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이는 단지 대형 업체들이 유통기간을 늘려 전국에 두부를 공급하는 대규모 마케팅이 소비자에게 먹혔기 때문이다. 유통기간이 늘어나는 것이 과연 소비자에게 도움이 되는 일일까? 소비자들은 당일 만든 따끈하고 맛있는 두부를 먹지 못하게 됐을 뿐이다.

    어떤 상품이든 독과점 상황이 만들어지면 소비자에게 최선의 선택은 사라진다. 또 일단 이런 상황이 만들어지면 이를 깰 방안도 없다. 독과점 상황은 우리에게 다양한 먹을거리를 즐길 기회를 빼앗아간다.

    최근, 막걸리를 취재한 기자를 여럿 만나 지방의 막걸리 업체 사정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그런데 이들은 사정이 나아진 업체가 거의 없다고 말했다. 그중 내 폐부를 찌르는 말이 있었다. “이젠 취재 오지 말래요. 아무 도움이 안 된다고.” 막걸리 붐의 혜택이 업체에 골고루 돌아갈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막걸리 맛의 획일화, 막걸리 시장의 독점화로 이어지지는 않기를 바란다. 진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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