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는 시간이 5분인 학교는 운동장에 나가 놀 시간이 없다.
#2. 초등학교 6학년 김모 군은 쉬는 시간마다 표정이 바뀐다. 김군의 학교는 쉬는 시간을 5분, 10분으로 번갈아 운영한다. 점심시간이 짧다고 느끼는 김군에게는 10분 동안 열심히 뛰어노는 것이 낙이다. 하지만 5분만 쉴 때는 밖에 나갈 수가 없어 친구와 교실에 남아 떠드는 것이 전부다.
4월 14일 국회 교육과학위원회 소속 민주당 안민석 의원은 서울시교육청의 ‘초등학교 쉬는 시간 현황 자료’를 공개했다. 이 자료에 따르면, 서울 지역 587개 초등학교 중 ‘쉬는 시간 5분제’를 시행하는 학교가 20여 개에 달했다. 이처럼 학교마다 쉬는 시간이 들쑥날쑥한 이유는 교육과정 편성운영지침에 쉬는 시간에 대한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특히 일부 학교는 △효율적인 생활지도 △교육과정의 효율적 운영 △사립학교 특성화교육 △급식실 공간 부족 등의 이유를 들어 5분이라는 짧은 시간만 쉬고 있다.
뇌가 휴식하는 시간은 10분
블록타임제 운영으로 쉬는 시간을 줄인 학교도 있다. 교육과정 자율화 추진 이후 40분 수업 두 개를 하나로 묶는 80분 수업이 가능해졌다. 미술, 글짓기 등 시간이 오래 걸리는 수업에 주로 적용되지만, 일반 교과수업에서 활용되기도 한다. 80분 수업을 하면 쉬는 시간이 산술적으로 20분이 돼야 하나, 실제 학교에선 10분만 쉰다. A초등학교는 “아이들에게 무리는 있다. 산술적으로 20분을 쉬어야 하지만 너무 길게 쉬면 아이들을 관리하기 어려워져 10분만 쉰다”고 밝혔다. 20분을 쉬면 다음 수업에 집중할 여건이 안 된다는 주장.
문제는 ‘쉬는 시간 5분제’를 비롯해 학생들의 쉬는 시간을 줄이는 것이 성장기 어린이의 건강을 해치고 수업 집중력의 저하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이다. 세브란스어린이병원 고홍 교수는 “초등학생의 변비 문제가 심각한데, 변비가 있는 아이는 계속해서 변을 옷에 묻힌다. 변을 누기 힘드니 아예 밥을 안 먹으려는 학생도 있다”며 “5분은 학생들이 변을 보기에 부족한 시간이다. 장 건강을 해칠 뿐 아니라, 변비로 여학생은 예민해지고 남학생은 과격해지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연세신경정신과 손석한 원장 역시 “40분 수업을 하고 10분은 쉬어야 뇌가 휴식을 취한다. 5분만 쉬고 수업에 들어가면 뇌가 혹사당해 도리어 집중력이 떨어진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쉬는 시간 5분제’를 운영 중인 학교들은 큰 문제가 없다는 반응이다. ‘쉬는 시간 5분제’를 운영하는 B초등학교는 학부모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학부모의 87%가 ‘쉬는 시간 5분제’를 찬성했다고 밝혔다. B학교 관계자는 “3개 반마다 화장실이 하나씩 있어 학생들이 사용하기에 불편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나 직접 해당 학교 남학생 화장실에 들어가 보니 소변기 3개, 대변기 2개만 있었다. B학교의 학급당 평균 학생 수는 약 30명, 3개 학급이면 90명이다. 남학생 45명이 5분 동안 불편 없이 생리현상을 해결하기는 힘든 환경이다.
B학교는 수업 중 화장실에 자유롭게 다녀올 수 있다고 해명한다. 하지만 고 교수 생각은 다르다.
“배변 문제로 병원에 온 초등학생에게 용감하게 화장실 간다고 손들으라고 권해요. 그럼 아이들은 창피하게 어떻게 가냐며 그냥 참는다고 말하지요.”
B학교는 “학생들의 안전을 위해 불가피하게 쉬는 시간을 5분으로 하고 있다”고 말한다. B학교는 서울시교육청에 보고한 5분 휴식의 이유로 ‘24시간 학교 개방, 운동장 에 차량 출입 빈번, 교문 앞 차도 등’을 들었다. 쉬는 시간이 5분 이상 되면 학생들이 건물 밖으로 나가 위험하다는 것이다.
실제 B학교 내에는 지역민에게 개방한 스포츠센터가 자리 잡고 있었다. 학교가 민간에 위탁운영을 맡긴 센터에는 헬스장, 수영장이 있어 지역 주민의 왕래가 잦고 차량도 자주 오고 간다. B학교 관계자는 “교문과 도로가 안전장치 없이 맞닿아 있는 데다 입구도 경사져 있어 학생들에게 위험하다. 등교 이후 학교 밖으로 나가선 안 된다고 교육하지만, 학생 수가 많으니 밖으로 나가는 아이가 꼭 생긴다. 5분만 쉬는 이유는 이를 고려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심지어 “5분을 쉬는 것이 학생 생활지도에 수월하다”고 주장하는 학교도 있다. 2006년부터 ‘쉬는 시간 5분제’를 실시해온 C초등학교는 “쉬는 시간이 길면 다음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아지기 때문에 교사들은 5분만 쉬는 것에 만족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쉬는 시간 5분제’에 대한 비판이 억울하다는 반응이다. 이에 대해 한 교육 전문가는 “학생들이 수업에 흥미를 느끼도록 만드는 것이 교사의 의무다. 교사 편의대로 쉬는 시간을 5분으로 줄이는 것은 무책임한 행위”라고 비판했다.
점심시간 전 수업 신설 학교도
초등학교의 5분 휴식을 놓고 논란이 불거지자 C학교는 5분 쉬는 시간 횟수를 하루 4회에서 2회로 줄였다. D초등학교는 학생들의 건강에 문제가 생긴다는 항의전화를 받은 뒤 다시 10분제로 돌렸다. 그 대신 등교시간을 앞당기고 점심시간을 늦춰 순증 수업을 운영하기로 했다. 즉, 2010학년도부터 연간 수업시수의 20% 범위 내에서 수업을 늘릴 수 있게 돼, 매주 수요일 쉬는 시간을 5분씩 줄여 점심시간 전에 수업을 하나 더 신설한 것이다.
한편 주무 관청인 서울시교육청은 안 의원의 요구가 있기 전까지 ‘쉬는 시간 5분제’ 학교를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안 의원의 발표가 있은 뒤에야 서울시교육청 초등교육 정책과는 부랴부랴 “5분만 쉬는 이유를 파악한 뒤 학생의 건강을 고려해 10분을 쉬라”고 권고했다. 서울시교육청의 권고 뒤 몇몇 학교는 쉬는 시간을 10분으로 환원했지만, 쉬는 시간과 관련된 규정은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
초등학교의 5분 휴식 논란에 대해 “학교는 지식만 습득하는 공간이 아니다. 예비사회답게 쉬는 시간에 친구와 어울리며 사회성을 키우는 것도 중요하다”며 비판적인 반응을 보이는 사람이 많다. 손 원장은 “학생이 주도적으로 10분의 쉬는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계획을 세우는 것도 좋은 교육이다. 5분은 그럴 여유가 없다. 특히 활동성이 뛰어난 아이들이 에너지를 분출하지 못해 힘들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