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감이나 가죽, 종이류에 실과 천 조각 등을 누비고 붙이고 끼워서 아름답게 장식하는 기법 또는 작품을 자수라고 한다. 기원전 3000년 무렵 만들어진 고대 이집트 무덤에서도 자수가 발견된다고 한다. 세계 역사에서 이름 있는 나라치고 자수 유물이 쏟아져 나오지 않는 나라가 없다. 유럽 중세의 궁정 복식 자수와 종교 예복 자수는 금실, 은실을 사용할 만큼 호화로웠다.
우리나라 자수 역사도 오래됐다. 옛 병풍과 족자 같은 장식품이나 장신구, 수저집 등 생활용품에서 볼 수 있는 자수는 섬세하고 치밀하다. 정성을 기울여 만든 과정이 잘 드러난다. 불교 자수는 전통 자수에서 위상이 높다. 국립중앙박물관 전시품에서 불교 미술이 차지하는 위상과 비견될 정도다. 우리 불교 자수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작품이 허동화(91), 박영숙(85) 두 분이 운영하는 한국자수박물관에 있다. ‘자수가사’와 ‘자수 사계분경도’다. 서울 논현동 한국자수박물관에서 만난 허동화 관장은 보물로 지정된 이 두 점에 애착을 드러내며 이렇게 말했다.
“마치 가족과 같아요.”
1970년대 초 이 소장품을 구한 과정도 극적이었다. 자수 사계분경도는 서울 인사동 고미술상 ‘금당’에서 외국 대사에게 넘기려던 것을 구매했다. “이 자수 병풍은 귀중한 유물이라 해외에 반출할 수 없다”는 국가주의 논리를 바탕으로 설득했다고 한다. ‘국가를 위해 뭔가를 열심히 한다’는 국가주의는 허 관장의 인생철학이기도 하다. 국내외에서 조각 보자기와 자수보 등 유물 관련 전시회를 115회나 열며 규방문화를 국가 브랜드화한 바탕에도 그의 이런 철학이 깔려 있다.
1975년 당시 최순우 국립중앙박물관장과 정양모 수석학예연구관(이후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지냄)은 서울 을지로에 있는 허 관장 집을 자주 드나들었다. 한국자수특별전 때문이었다. 3년 뒤인 78년 6월 당시 경복궁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개막된 특별전 이름은 ‘박영숙 씨 수집 한국자수특별전’이었다. 정양모 씨는 훗날 그 특별전과 관련해 이렇게 회고했다.
“허동화 선생이 부인 이름을 넣기를 원했죠. 당시 자수품이 상하기 쉽고 보관도 어려워 수집되지 않고 사라졌어요. 특별전 이후 자수품이 수집가에게 주목받기 시작했어요.”
당시 학예사로서 특별전 도록 ‘한국의 자수’ 해설을 쓴 김춘실 충북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는 “허동화 선생님이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자수 전시를 한다고 무척 좋아했다. 처음 공개된 자수가사와 자수 사계분경도가 아름다웠다”고 말했다. 이 두 걸작은 이듬해인 79년 2월 보물로 지정됐다.
이 중 자수가사는 1단에 여러 부처의 좌상과 입상, 2 · 3단에 보살, 4단에 경전, 5단에 존자를 수놓은 것이다. 흰색 공단에 윤곽선은 이음수로 하고, 나머지는 실을 평행으로 배치하는 평수로 수를 놓았다. 굵고 꼬인 실을 사용해 투박한 질감을 나타냈으며 배색이 뛰어나다. 한국 자수가사의 전통을 보여주는 귀한 자료다.
자수 사계분경도는 분재, 분경의 옛 모습을 보여준다. 이 병풍도는 실의 훼손 정도로 미뤄볼 때 상당히 오래된 듯하다. 소재와 색감, 화면 구도에서 중국 취향이 짙어 밑그림은 중국 그림이 모본(模本)으로 추정된다. 무늬, 색상이 유사한 송대 작품이 있어 고려 말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송 자수에 비해 구도가 단순하고 꼰 실로 자련수를 한 기법도 한국 자수의 특성을 잘 나타낸다.
원내에는 화분과 꽃, 나비 등을 수놓았다. 각 폭이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을 나타내고 있다. 허동화, 박영숙 관장이 수집한 규방 관련 소장품은 3000여 점이나 된다. 허 관장은 창작 화가의 길에 매진하면서 5월 7일까지 서울 종로구 환기미술관에서 ‘허동화 : 충만’전도 열고 있다.
우리나라 자수 역사도 오래됐다. 옛 병풍과 족자 같은 장식품이나 장신구, 수저집 등 생활용품에서 볼 수 있는 자수는 섬세하고 치밀하다. 정성을 기울여 만든 과정이 잘 드러난다. 불교 자수는 전통 자수에서 위상이 높다. 국립중앙박물관 전시품에서 불교 미술이 차지하는 위상과 비견될 정도다. 우리 불교 자수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작품이 허동화(91), 박영숙(85) 두 분이 운영하는 한국자수박물관에 있다. ‘자수가사’와 ‘자수 사계분경도’다. 서울 논현동 한국자수박물관에서 만난 허동화 관장은 보물로 지정된 이 두 점에 애착을 드러내며 이렇게 말했다.
“마치 가족과 같아요.”
1970년대 초 이 소장품을 구한 과정도 극적이었다. 자수 사계분경도는 서울 인사동 고미술상 ‘금당’에서 외국 대사에게 넘기려던 것을 구매했다. “이 자수 병풍은 귀중한 유물이라 해외에 반출할 수 없다”는 국가주의 논리를 바탕으로 설득했다고 한다. ‘국가를 위해 뭔가를 열심히 한다’는 국가주의는 허 관장의 인생철학이기도 하다. 국내외에서 조각 보자기와 자수보 등 유물 관련 전시회를 115회나 열며 규방문화를 국가 브랜드화한 바탕에도 그의 이런 철학이 깔려 있다.
1975년 당시 최순우 국립중앙박물관장과 정양모 수석학예연구관(이후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지냄)은 서울 을지로에 있는 허 관장 집을 자주 드나들었다. 한국자수특별전 때문이었다. 3년 뒤인 78년 6월 당시 경복궁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개막된 특별전 이름은 ‘박영숙 씨 수집 한국자수특별전’이었다. 정양모 씨는 훗날 그 특별전과 관련해 이렇게 회고했다.
“허동화 선생이 부인 이름을 넣기를 원했죠. 당시 자수품이 상하기 쉽고 보관도 어려워 수집되지 않고 사라졌어요. 특별전 이후 자수품이 수집가에게 주목받기 시작했어요.”
당시 학예사로서 특별전 도록 ‘한국의 자수’ 해설을 쓴 김춘실 충북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는 “허동화 선생님이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자수 전시를 한다고 무척 좋아했다. 처음 공개된 자수가사와 자수 사계분경도가 아름다웠다”고 말했다. 이 두 걸작은 이듬해인 79년 2월 보물로 지정됐다.
이 중 자수가사는 1단에 여러 부처의 좌상과 입상, 2 · 3단에 보살, 4단에 경전, 5단에 존자를 수놓은 것이다. 흰색 공단에 윤곽선은 이음수로 하고, 나머지는 실을 평행으로 배치하는 평수로 수를 놓았다. 굵고 꼬인 실을 사용해 투박한 질감을 나타냈으며 배색이 뛰어나다. 한국 자수가사의 전통을 보여주는 귀한 자료다.
자수 사계분경도는 분재, 분경의 옛 모습을 보여준다. 이 병풍도는 실의 훼손 정도로 미뤄볼 때 상당히 오래된 듯하다. 소재와 색감, 화면 구도에서 중국 취향이 짙어 밑그림은 중국 그림이 모본(模本)으로 추정된다. 무늬, 색상이 유사한 송대 작품이 있어 고려 말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송 자수에 비해 구도가 단순하고 꼰 실로 자련수를 한 기법도 한국 자수의 특성을 잘 나타낸다.
원내에는 화분과 꽃, 나비 등을 수놓았다. 각 폭이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을 나타내고 있다. 허동화, 박영숙 관장이 수집한 규방 관련 소장품은 3000여 점이나 된다. 허 관장은 창작 화가의 길에 매진하면서 5월 7일까지 서울 종로구 환기미술관에서 ‘허동화 : 충만’전도 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