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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끔찍한 교통사고에서 벌어진 운명의 장난

‘뒤바뀐 딸’

  • 왕상한 서강대 법학부 교수 shwang@sogang.ac.kr

    입력2009-10-28 15: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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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끔찍한 교통사고에서 벌어진 운명의 장난

    반 린 가족, 세락 가족, 마크 탭 지음/ 김성웅 옮김/ 포이에마 펴냄/ 324쪽/ 1만1000원

    2006년 4월26일 수요일 저녁, 미국 인디애나주 매리언에서 대형 교통사고가 일어났다. 테일러대학 신임총장 취임 축하연에서 일하고 돌아오던 교직원과 학생들이 탄 승합차가 졸음운전으로 중앙선을 넘어온 화물차와 충돌한 것.

    승합차에는 학생 5명과 교직원 4명이 있었다. 현장에서 5명이 즉사했고(학생 4명, 교직원 1명), 생존자 중 2명은 헬기로 이송됐는데 1명은 위독한 상태였다. 이 사고는 학생들과 교직원이 희생된 데다 현장이 워낙 참혹했던 탓에 인디애나주는 물론 전미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사고 희생자들의 장례가 엄숙히 치러지고, 추모와 애도의 발길이 이어지는 가운데 생존자 로라 린은 중환자실에서 인공호흡기에 의지해 힘겹게 호흡을 유지하고 있었다. 사건 약 5주 후, 딸의 회복만 바라며 밤낮으로 간호한 가족들의 노력에 힘입어 로라는 조금씩 의식을 회복한다.

    그런 과정에서 가족들은 이상한 낌새를 발견한다. 그리고 비슷한 시각, 이미 5주 전에 사랑하는 딸을 땅에 묻고 슬픔에 잠긴 세락 가족에게 한밤중에 걸려온 전화 한 통은 그야말로 충격적이었다. 생존한 학생이 로라가 아니라 사고 당시 같은 차를 탔던 휘트니 세락이라는 것. 조사 결과, 잘못된 신원확인 과정의 전모가 드러나고 병원에 있던 학생은 로라가 아니라 휘트니로 최종 확인됐다. 두 사람 모두 금발에 체격과 얼굴까지 닮아 일어난 일이었다.

    밤을 새워가며 돌본 딸이 남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로라 가족, 죽은 줄만 알았던 딸을 다시 만나게 된 휘트니 가족. 갑작스런 사고의 충격과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슬픔, 어이없는 실수로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이 뒤바뀐 기막힌 현실을 두 가족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극복할까. 이 사연은 놀랍게도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실화다. 신원 확인을 잘못해 희비가 엇갈린 두 가족의 사연은 곧바로 언론에 보도됐다.



    블로그를 통해 로라의 회복 과정을 지켜보던 지인들은 물론 전 세계 사람들을 충격에 빠뜨렸다. 그러나 진짜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시작이다. 이 소식이 전해진 순간부터 지역 방송국은 물론 ABC, NBC, CBS, CNN, ‘오프라 윈프리 쇼’ ‘닥터 필 쇼’, 심지어 외국 방송국에서도 이들의 이야기를 들려달라는 요청이 쇄도했으며 책을 내자는 제안도 계속됐다.

    두 가족은 사고 이후 언론매체와의 접촉을 일절 거부했다. 실수의 책임 소재를 따지거나 누군가를 비난하거나 원망하려는 생각이 없었고, 무엇보다 두 가족 모두 조용히 로라의 죽음을 애도하며 휘트니의 치료에 집중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 세계에서 쇄도하는 위로편지를 읽으면서, 또 사고 1주기를 맞아 함께한 자리에서 두 가족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통해 많은 사람이 힘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에 동의하게 됐다.

    두 가족은 언론에 알려지지 않은 숨은 이야기들을 꺼내놓기 시작했고, 베스트셀러 작가인 마크 탭은 그 이야기를 모아 생생한 감동을 전해주는 책을 완성했다. 이 책에는 끔찍한 교통사고와 잘못된 신원확인 과정보다 놀라운 이야깃거리가 들어 있다(사실 책에서는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됐는지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없다). 진실이 밝혀지고 난 뒤 서로 자기 일처럼 기뻐하고 슬퍼하는 두 가족의 모습에 친척과 친구들, 병원 관계자들은 물론 보도를 접한 많은 사람이 감동했다.

    병문안을 하고, 음식을 제공하고, 희망과 격려의 메시지를 보내고, 심부름을 해주고, 필요한 물품과 공간을 제공하고, 함께 웃고 울며 힘든 시기를 보낸 사람들의 이야기는 우리 시대에 가족과 이웃, 공동체는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진지하게 되돌아보게 한다. 만약 양쪽 가족이 신원확인 과정에 불만을 품고 거액의 소송을 제기했거나(실제로 소송을 맡겠다는 법률사무소의 제안도 있었다),

    기자회견을 통해 억울함과 원통함을 호소했다면 이들의 이야기는 호사가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추악한 가십에 그쳤을지 모른다. 그러나 두 가족은 아무도 원망하지 않고 용서함으로써 자신들을 위로하려던 사람들에게 오히려 위로를 안겨주었다. 책은 출간 즉시 ‘아마존’ ‘뉴욕 타임스’ ‘퍼블리셔스 위클리’ 등의 베스트셀러 리스트에 올랐고, 2009년 Retailers Choice Awards 논픽션 부문을 수상했다. 책의 원제는 Mistaken Ident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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