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5시45분. 고요하고 어스름한 길을 따라 긴 행렬이 다가온다. 마음을 가다듬고 합장을 한 후, 준비한 쌀밥을 손으로 한 주먹 떼어낸다. 그리고 오렌지빛 법복 앞에 매달린 발우(스님의 공양 그릇)에 떼어낸 밥을 조심스레 담는다. 이어지는 스님들의 행렬.
밥을 뭉치는 속도가 빨라지고 가슴도 콩닥콩닥 뛴다. 무엇일까. 온몸이 감전이라도 된 듯 찌릿한 이 느낌은. 라오스의 오래된 도시, 루앙프라방에서의 하루는 이렇게 ‘탁밧’과 함께 시작됐다. 탁밧은 우리말 ‘탁발(托鉢)’에 해당하는, 스님들에게 공양을 하는 예식으로 루앙프라방에서는 매일 새벽 이 의식이 행해진다.
탁밧은 공양의 의미도 있지만 스님들에게 밥을 바치는 이들에겐 욕심을 버리고 베풀 수 있는 기회를, 수행자들에겐 자신의 마음을 낮추게 하는 의미도 있다. 사람들은 스님들을 위해 따뜻한 밥을 짓고, 새벽에 사원에서 나온 스님들은 그 밥을 받아 거리의 헐벗은 아이들에게 나눠준다.
탁밧 행렬의 스님들은 열 살도 안 돼 보이는 어린 스님부터 인자한 얼굴의 노스님까지 나이도 표정도 다양하다. 세상이 환해지기 전이지만, 이미 세상은 보시하는 이들의 마음과 스님들의 가슴속 나눔의 빛으로 반짝인다.
사원으로 가득한 불심의 나라
루앙프라방을 마음에 품은 것은 오래전이다. 라오스를 여행하고 온 친구들은 욕망이 사라지는 곳, 순수함을 만날 수 있는 곳에 대한 환상을 심어줬다. 뿐만 아니라 ‘뉴욕타임스’와 여러 여행잡지는 2009년에 꼭 가봐야 할 곳으로 인도차이나의 이 작은 나라를 꼽기도 했다. 도대체 그곳은 어떤 곳일까 궁금했고, 사람들을 가까이 만나기 위해 루앙프라방에서는 느리게 걸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라오스는 인도차이나에서 가장 조용하고 소박한 나라다. 공산주의 국가이면서 불심이 가득한 불교의 나라다. 삼면이 바다인 우리와 달리 중국과 베트남, 미얀마, 태국, 캄보디아 등 사방이 다른 나라로 둘러싸인 나라다. 그중에서도 루앙프라방은 1000년을 자랑하는 라오스의 역사가 고스란히 살아 숨쉬는 도시다. 우리의 경주쯤이라고 할까.
루앙프라방 산책은 사원에서 시작해 사원에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사원이 많다. 사원의 수는 책마다 다른데, 대략 80개쯤 된다고 한다. 숫자로 보면 그다지 많은 것 같지 않지만 걸어보면 안다. 사원들이 얼마나 구석구석에 들어서 있는지. 골목만 돌면 다른 사원이 나타난다. 가끔은 걷고 또 걸어도 제자리걸음을 하는 것처럼 느껴지는데, 비슷하면서 조금씩 다른 사원이 계속 등장하기 때문이다.
사원은 라오스 사람들에게 엄마이자 친구이자 선생님이다. 슬플 때는 따뜻하게 안아주고 대화가 필요할 때는 친구처럼 말을 걸어주는 곳이다. 종교라기보다는 생활이다. 그래서 어쩌면 그들은 누구보다도 순수한 눈빛을 하고 마음을 비우며 살아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시간이 멈추는 도시
루앙프라방에서의 사원 산책은 왓 시앙통(Wat Xieng Thong)에서 시작했다. 라오스의 수많은 사원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원으로 꼽히는 곳.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구석구석 무척이나 섬세하다. 힌두 신화인 라마야나 신화와 부처의 생애를 표현한 벽화가 사원 벽에 촘촘하게 그려져 있다. 왓 시앙통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생명의 나무’ 벽화다.
붉은 바탕에 여러 색의 동(銅)을 입혀놓았는데, 햇살이 들어오자 여러 색이 한꺼번에 반짝이면서 묘한 분위기를 만든다. 멍하니 벽화를 바라보는데, 노비스(승려 견습생) 한 사람이 다가왔다. 우리나라라면 빅뱅이나 2NE1에 푹 빠져 있을 나이의 그는 사원 가이드를 자청했다. 왓 시앙통에는 뭐가 있고 어떤 역사를 지녔는지 자랑스럽게 설명하는 그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사원을 돌아보는 것이 더욱 즐거워졌다.
라오스의 과거와 현재를 만나는 듯한 느낌이라고나 할까. 사원을 한 바퀴 돌아본 뒤 뜬금없이 그에게 꿈이 뭐냐고 물어봤다. 생뚱맞게도 자동차 영업을 하고 싶단다. 3년간 사원에서 공부도 하고 일도 하면서 고민해봤는데,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은 승려보다는 다른 일인 것 같다며 1년간 더 수행한 뒤 본격적으로 일을 하거나 공부할 생각이라고 한다.
어린 노비스들이 모두 절에 남아 승려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사원이 이렇게 아이들이 자신의 꿈을 찾게 도와주는 역할까지 하는지 몰랐다. 앞으로 무엇을 할지, 어떤 일이 어울릴지 그는 부처님과 하루에도 수십 번 묻고 답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그의 꿈은 더 다부져 보였고, 초롱초롱한 눈이 더욱 빛나는 듯했다.
마음이 절로 낮아지는 곳
왓 시앙통을 뒤로하고 라오스의 국보급 황금불상이 있는 박물관으로 향했다. 하늘을 찌를 듯 높이 솟은 종려나무들을 따라 들어가니 박물관 건물이 나타났다. 박물관 안에서는 라오스 왕가의 침실과 접견실을 볼 수 있는데, 길에서 만난 라오스 사람들만큼이나 박물관에 전시된 유물도 소박하기 이를 데 없었다.
박물관에서 빠뜨리지 말고 봐야 할 것은 순금으로 만들어진 ‘파방’. 2000년 전 스리랑카에서 만들어진 파방은 크메르 제국이 란상 왕조를 세운 파응움에게 선물한 불상으로, ‘루앙프라방’이라는 이름도 ‘파방’에서 나온 것이라고 한다. 그 정도로 중요한 불상이지만, 지금은 철장에 갇혀 안쓰럽게 전시돼 있다. 파방을 안치하기 위한 사원인 ‘호 파방’을 입구에 만들고 있는데, 아직 공사가 덜 끝났기 때문이라고 한다.
박물관 입구에서 길을 건너니 ‘루앙프라방의 심장’ 푸시산으로 오르는 입구가 나왔다. 푸시에 오르기 위해 입장료를 내려고 하는데, 입장료 받는 아저씨가 그냥 올라가란다. “아침에 올라가지 않았느냐”면서. 내가 아침에 올라가는 걸 보고 기억했다는 말 아닌가. 오전에 푸시에 올랐다가 일몰에 맞춰서 다시 한 번 푸시에 오르기 위해 들어간 길이었다. 푸시에 오르는 입장료는 2만 킵, 우리 돈 3000원 정도지만 세심하게 마음을 써준 아저씨가 고마웠다.
푸시산은 야트막한 산이지만 계단이 328개나 이어져 있어 정상까지는 몇 번이나 숨을 골라야 했다. 정상에 오르면 황금색 탑인 탓 촘시(That Chomsi)가 있고, 탓 촘시를 중심으로 루앙프라방의 사방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멀지 않은 곳에 황토색의 메콩 강이 흐르고 빼곡한 숲과 옹기종기 모여 있는 집들. 이런 게 바로 ‘그림 같은 풍경’이리라.
시장에서 사온 꽃을 탑 아래에 바치고 향을 피운다. 하늘은 아름다운 파스텔 톤으로 바뀌고 내려다보이는 집에서는 하나둘 밥 짓는 연기가 향을 피운 것처럼 올라온다. 경건해지는 분위기 속에 나도 모르게 조금씩 마음이 비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때 가슴속에서 ‘아, 바로 이것이었구나. 루앙프라방에 가보라는 이야기는 이런 낮아지는 마음을 만나보라는 것이었구나’라는 울림이 올라왔다. 루앙프라방은 마음의 찌꺼기를 버리는 것이 어렵지도 멀지도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곳이었다.
밥을 뭉치는 속도가 빨라지고 가슴도 콩닥콩닥 뛴다. 무엇일까. 온몸이 감전이라도 된 듯 찌릿한 이 느낌은. 라오스의 오래된 도시, 루앙프라방에서의 하루는 이렇게 ‘탁밧’과 함께 시작됐다. 탁밧은 우리말 ‘탁발(托鉢)’에 해당하는, 스님들에게 공양을 하는 예식으로 루앙프라방에서는 매일 새벽 이 의식이 행해진다.
탁밧은 공양의 의미도 있지만 스님들에게 밥을 바치는 이들에겐 욕심을 버리고 베풀 수 있는 기회를, 수행자들에겐 자신의 마음을 낮추게 하는 의미도 있다. 사람들은 스님들을 위해 따뜻한 밥을 짓고, 새벽에 사원에서 나온 스님들은 그 밥을 받아 거리의 헐벗은 아이들에게 나눠준다.
탁밧 행렬의 스님들은 열 살도 안 돼 보이는 어린 스님부터 인자한 얼굴의 노스님까지 나이도 표정도 다양하다. 세상이 환해지기 전이지만, 이미 세상은 보시하는 이들의 마음과 스님들의 가슴속 나눔의 빛으로 반짝인다.
사원으로 가득한 불심의 나라
루앙프라방을 마음에 품은 것은 오래전이다. 라오스를 여행하고 온 친구들은 욕망이 사라지는 곳, 순수함을 만날 수 있는 곳에 대한 환상을 심어줬다. 뿐만 아니라 ‘뉴욕타임스’와 여러 여행잡지는 2009년에 꼭 가봐야 할 곳으로 인도차이나의 이 작은 나라를 꼽기도 했다. 도대체 그곳은 어떤 곳일까 궁금했고, 사람들을 가까이 만나기 위해 루앙프라방에서는 느리게 걸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라오스는 인도차이나에서 가장 조용하고 소박한 나라다. 공산주의 국가이면서 불심이 가득한 불교의 나라다. 삼면이 바다인 우리와 달리 중국과 베트남, 미얀마, 태국, 캄보디아 등 사방이 다른 나라로 둘러싸인 나라다. 그중에서도 루앙프라방은 1000년을 자랑하는 라오스의 역사가 고스란히 살아 숨쉬는 도시다. 우리의 경주쯤이라고 할까.
루앙프라방 산책은 사원에서 시작해 사원에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사원이 많다. 사원의 수는 책마다 다른데, 대략 80개쯤 된다고 한다. 숫자로 보면 그다지 많은 것 같지 않지만 걸어보면 안다. 사원들이 얼마나 구석구석에 들어서 있는지. 골목만 돌면 다른 사원이 나타난다. 가끔은 걷고 또 걸어도 제자리걸음을 하는 것처럼 느껴지는데, 비슷하면서 조금씩 다른 사원이 계속 등장하기 때문이다.
사원은 라오스 사람들에게 엄마이자 친구이자 선생님이다. 슬플 때는 따뜻하게 안아주고 대화가 필요할 때는 친구처럼 말을 걸어주는 곳이다. 종교라기보다는 생활이다. 그래서 어쩌면 그들은 누구보다도 순수한 눈빛을 하고 마음을 비우며 살아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B>1</B> 과거 라오스 왕실의 모습을 볼 수 있는 박물관. <B>2</B> 길거리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동자승들. <B>3</B> 루앙프라방 곳곳에 있는 사원. <B>4</B> 마음을 담아 올리는 꽃.
루앙프라방에서의 사원 산책은 왓 시앙통(Wat Xieng Thong)에서 시작했다. 라오스의 수많은 사원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원으로 꼽히는 곳.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구석구석 무척이나 섬세하다. 힌두 신화인 라마야나 신화와 부처의 생애를 표현한 벽화가 사원 벽에 촘촘하게 그려져 있다. 왓 시앙통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생명의 나무’ 벽화다.
붉은 바탕에 여러 색의 동(銅)을 입혀놓았는데, 햇살이 들어오자 여러 색이 한꺼번에 반짝이면서 묘한 분위기를 만든다. 멍하니 벽화를 바라보는데, 노비스(승려 견습생) 한 사람이 다가왔다. 우리나라라면 빅뱅이나 2NE1에 푹 빠져 있을 나이의 그는 사원 가이드를 자청했다. 왓 시앙통에는 뭐가 있고 어떤 역사를 지녔는지 자랑스럽게 설명하는 그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사원을 돌아보는 것이 더욱 즐거워졌다.
라오스의 과거와 현재를 만나는 듯한 느낌이라고나 할까. 사원을 한 바퀴 돌아본 뒤 뜬금없이 그에게 꿈이 뭐냐고 물어봤다. 생뚱맞게도 자동차 영업을 하고 싶단다. 3년간 사원에서 공부도 하고 일도 하면서 고민해봤는데,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은 승려보다는 다른 일인 것 같다며 1년간 더 수행한 뒤 본격적으로 일을 하거나 공부할 생각이라고 한다.
어린 노비스들이 모두 절에 남아 승려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사원이 이렇게 아이들이 자신의 꿈을 찾게 도와주는 역할까지 하는지 몰랐다. 앞으로 무엇을 할지, 어떤 일이 어울릴지 그는 부처님과 하루에도 수십 번 묻고 답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그의 꿈은 더 다부져 보였고, 초롱초롱한 눈이 더욱 빛나는 듯했다.
마음이 절로 낮아지는 곳
왓 시앙통을 뒤로하고 라오스의 국보급 황금불상이 있는 박물관으로 향했다. 하늘을 찌를 듯 높이 솟은 종려나무들을 따라 들어가니 박물관 건물이 나타났다. 박물관 안에서는 라오스 왕가의 침실과 접견실을 볼 수 있는데, 길에서 만난 라오스 사람들만큼이나 박물관에 전시된 유물도 소박하기 이를 데 없었다.
박물관에서 빠뜨리지 말고 봐야 할 것은 순금으로 만들어진 ‘파방’. 2000년 전 스리랑카에서 만들어진 파방은 크메르 제국이 란상 왕조를 세운 파응움에게 선물한 불상으로, ‘루앙프라방’이라는 이름도 ‘파방’에서 나온 것이라고 한다. 그 정도로 중요한 불상이지만, 지금은 철장에 갇혀 안쓰럽게 전시돼 있다. 파방을 안치하기 위한 사원인 ‘호 파방’을 입구에 만들고 있는데, 아직 공사가 덜 끝났기 때문이라고 한다.
박물관 입구에서 길을 건너니 ‘루앙프라방의 심장’ 푸시산으로 오르는 입구가 나왔다. 푸시에 오르기 위해 입장료를 내려고 하는데, 입장료 받는 아저씨가 그냥 올라가란다. “아침에 올라가지 않았느냐”면서. 내가 아침에 올라가는 걸 보고 기억했다는 말 아닌가. 오전에 푸시에 올랐다가 일몰에 맞춰서 다시 한 번 푸시에 오르기 위해 들어간 길이었다. 푸시에 오르는 입장료는 2만 킵, 우리 돈 3000원 정도지만 세심하게 마음을 써준 아저씨가 고마웠다.
푸시산은 야트막한 산이지만 계단이 328개나 이어져 있어 정상까지는 몇 번이나 숨을 골라야 했다. 정상에 오르면 황금색 탑인 탓 촘시(That Chomsi)가 있고, 탓 촘시를 중심으로 루앙프라방의 사방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멀지 않은 곳에 황토색의 메콩 강이 흐르고 빼곡한 숲과 옹기종기 모여 있는 집들. 이런 게 바로 ‘그림 같은 풍경’이리라.
시장에서 사온 꽃을 탑 아래에 바치고 향을 피운다. 하늘은 아름다운 파스텔 톤으로 바뀌고 내려다보이는 집에서는 하나둘 밥 짓는 연기가 향을 피운 것처럼 올라온다. 경건해지는 분위기 속에 나도 모르게 조금씩 마음이 비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때 가슴속에서 ‘아, 바로 이것이었구나. 루앙프라방에 가보라는 이야기는 이런 낮아지는 마음을 만나보라는 것이었구나’라는 울림이 올라왔다. 루앙프라방은 마음의 찌꺼기를 버리는 것이 어렵지도 멀지도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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