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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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것 못 만들고 남의 것 수입… 한국은 소설 식민지”

일본 문학 번역가 양억관·김난주 부부

  • 이혜민 기자 behappy@donga.com

    입력2009-09-11 14: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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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것 못 만들고 남의 것 수입… 한국은 소설 식민지”
    양억관(사진 오른쪽), 김난주 부부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일본 문학 번역가다. 김씨는 무라카미 하루키를 비롯해 에쿠니 가오리, 요시모토 바나나 같은 작가들의 감성적인 작품을 주로 번역해 두터운 팬층을 확보하고 있고, 추리소설을 많이 번역한 양씨는 ‘원작의 느낌을 그대로 살리는 일본 소설 번역의 최고권위자’란 평을 듣는다. 두 사람을 만나 그들이 접한 ‘일본 문학의 힘’에 대해 들어봤다.

    일본 문학의 어떤 점에 매력을 느껴 본격적으로 번역하게 됐나.

    ♤양억관 그냥 재미있다.(웃음) 내가 경험하지 못한 상황을 다양하게 만날 수 있어 좋다. 세계 어느 문학보다 콘텐츠가 풍성하다.

    ♧김난주 무라카미 하루키의 ‘일각수의 꿈’을 읽으면서 새로운 세상을 만난 기분이었다. 그때부터 일본 문학에 관심을 갖고 번역을 시작했다. 에쿠니 가오리나 요시모토 바나나 같은 작가들은 있을 법한 얘기를 잘 빚어내 두고두고 떠올리게 한다. 에쿠니 가오리의 ‘반짝반짝 빛나는’을 읽고 나면 문득문득 사랑의 궁극적 형태는 무엇일까 생각하게 된다.

    일본 문학의 어떤 점이 풍성한가.



    ♧ 무엇보다 문화적 기반이 풍성하다. 내가 5년간 10권으로 번역한 ‘겐지 이야기’는 만들어진 지 1000년이 넘었는데도 시대마다 재해석되면서 온갖 종류로 읽힌다.

    ♤ 민화, 전설 같은 문화유산이 많다. 기록도 잘 돼 있고 구전을 전달하는 공동체도 잘 살아 있다. 그래서 다양한 사람의 얘기가 지금껏 존재한다. 무엇보다 이데올로기의 지배를 받지 않아서 그런지, 사람들이 자유로이 얘기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져 있다. 예를 들어, 일본 사회는 일본 극우학자가 한국에 가서 과거 식민지배에 대해 사과해도 용인한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는 한국인이 일본에 가서 한국에 대해 나쁘게 얘기하면 ‘박살난다’. 어느 쪽에 사고의 유연성이 더 생기겠나.

    일본 문화의 유연성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 일본은 ‘문화의 쓰레기통’이라고 불릴 정도로 도교, 유교, 불교 등 온갖 것을 ‘짬뽕’해 받아들이면서도 인정할 건 인정한다. 표현의 자유도 놀랍다. 우리는 문법적으로 틀리면 전부 교정을 보지만, 일본은 작가가 의도한 것이라면 그대로 통과시킨다. 예를 들어 ‘오늘 커피나 한잔 먹어보까’라고 쓴다고 해서 굳이 ‘볼까’로 바꾸지 않는다. 깡패가 싸우는 장면에 ‘씨팔’이라는 말을 써도 우리처럼 ‘제길’로 바꾸지 않는다. 우리도 많이 나아지긴 했지만, 실제 상황을 보여주려면 그 단어가 필요한데도 심의에서 거르는 경우가 많다. 외설 논란을 일으킨 마광수의 ‘즐거운 사라’도 사실 그렇게까지 평가할 이유는 없지 않았나. 일본 작가들은 그보다 훨씬 심한 내용을 써도 아무 문제 없이 자유롭게 활동한다.

    그 얘기를 들으니 우리 문학계가 답답하게 느껴진다.

    ♧ 근대화 역사가 짧으니 발전할 여지는 많다. 우리 문학도 점차 자유로워지고 있다.

    ♤ 문학의 근간이 되는 사회가 아직도 경직돼 있다. 정부에 대한 비판이 자유롭지 않고, 오피니언 리더로 활약해야 할 교수들이 정권과 연관되는 일이 많다. 그런 사회적 환경에서는 유연한 문학이 나오기 어렵다고 본다.

    작품 활동을 하는 데 일본과 우리나라의 환경이 많이 다른가.

    ♤ 일본은 문학 활동에 대한 인프라가 잘돼 있다. 소설가가 200자 원고지 100매를 쓰고도 우리 돈으로 300만, 400만원은 거뜬히 번다. 그러니 많은 사람이 소설 같은 문학작품을 쓰려고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100매 써도 100만원 벌기가 어려우니 다들 돈 되는 영화나 드라마 쪽으로 간다. 좋은 소설이 나오기 어려운 구조다. 게다가 출판사의 처지에서는 당장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에 가능성 있는 국내 신진 작가를 양성하기보다 상품성 있는 외국 작가의 작품을 수입하는 쪽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 우리 문학사회는 우리 것을 못 만들고 남의 것을 가져와 즐기는 소설 식민지다. 비록 우리가 그 선두주자 구실을 하고 있지만.

    한국에서 일본 문학이 사랑받는 까닭이 한마디로 뭔가.

    ♤ 일본과 우리의 문화가 비슷하기 때문이다.

    ♧ 우리 세대는 ‘베르사유 장미’ ‘캔디’ ‘아톰’을 보고 자랐다. 나도 ‘벰 베라 베로’를 감명 깊게 봤다. 반일교육을 받았지만, 문화는 이미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이다.

    일본 문학을 보면 편안하다. 작가가 어깨에 힘주지 않고 쓴 것 같다.

    ♧ 우리 작가 중엔 머릿속에 이데올로기가 강하게 자리잡은 이들이 많다. 작가 본인이 시대의 표상이 되고, 자신의 소설이 사상이나 기치를 담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일본에서 작가는 그저 장인일 뿐이다. 자기 기술을 연마하고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는 뭔가를 만드는 사람일 뿐이니 이데올로기에 연연할 필요가 없다. 그러니 부담 없이 사소한 얘기를 소설로 쓸 수 있는 것이다. 나도 일본 소설을 번역하면서 ‘이렇게 사소한 걸로도 소설을 쓸 수 있구나’ 깜짝깜짝 놀랄 때가 있다.

    일본 소설 중에는 읽을 때는 재미있지만 읽고 나면 ‘뭘 봤지?’라는 생각이 드는 작품도 있다.

    ♧ 그런 생각 자체가 소설에 대단한 뭔가를 요구하는 것이다. 영화가 2시간의 행복을 주는 것처럼 소설을 읽는 동안 행복했다면, 그리고 생의 어느 순간 문득 그 장면이 떠올라 자신을 되돌아보게 된다면 그걸로 족하다. 소설을 읽으면서 열심히 사고하고 뭔가를 받아들이려 애쓰는 건 과거의 문학 수용 태도다.

    번역하면서 특히 재미있었던 작품은 뭔가.

    ♤ 무라카미 류의 ‘코인로커 베이비스’가 좋았다. 굉장한 힘이 담겨 있는 작품이다. 가수 장기하도 죽기 전 심장의 움직임을 묘사한 이 소설이 좋다고 말하더라. 현실이면서 현실이 아닌 상황에 놓인 두 아이의 운명과 사람의 근원적 욕망에 관한 얘기인데, 무척 재미있다. 번역에 오자가 많다고 지적받긴 했지만(웃음), 그래도 그 소설이 좋다.

    ♧ 많은 작품을 하다 보니 한 작품을 콕 집어내기가 어렵다. 가네시로 가즈키의 ‘연애소설’을 눈물 줄줄 흘리며 번역했던 기억이 있다.

    지금까지 몇 권 정도 번역했나.

    ♤ 10년 전에 80여 권까지 세보다가 그만뒀으니 200권은 족히 넘었을 거다. 한 달에 한 권 이상 번역 안 하면 생활이 안 되기 때문에 많이 했다.(웃음) 일본에서 ‘해리 포터’ 시리즈를 번역한 작가는 몇 달간 그 작품에만 몰두할 수 있도록 지원받았다고 하는데, 우리의 환경은 그렇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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