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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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소설, 묻지마 선인세

  • 이지은 기자 smiley@donga.com

    입력2009-09-11 10: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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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쿠다 히데오의 소설 ‘남쪽으로 튀어!’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일본 소설입니다. 이 작품은 사춘기 소년의 눈을 통해 ‘우리나라와 꼭 닮은’ 일본 현대사회의 부조리를 담고 있는데요, 그렇다고 전혀 심각하진 않습니다. 소소한 일상에서, 또는 폭소가 터지게 하는(소설을 보면서 데굴데굴 구르며 웃었던 건 실로 오랜만이었습니다) 상황에서 그저 면도칼에 베인 듯 따갑게 느껴질 뿐입니다. 이 작품은 ‘공중그네’와 함께 작가의 이름을 널리 알렸죠.

    이번에 ‘일본 스토리의 힘’을 주제로 한 커버스토리를 취재하면서 ‘남쪽으로 튀어!’의 선인세가 얼마인지 알게 됐습니다. 최근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 ‘1Q84’의 선인세가 10억원이 넘네, 어쩌네 하는 말이 나오니까 더 궁금할 것 같은데요. 여러분, 놀라지 마세요. 우리나라 돈으로 ‘고작’ 500만원 정도였습니다. 물론 지금의 오쿠다 히데오는 ‘몸값’이 많이 올랐지만(실제로 10배 넘게 올랐어요), 이 책이 발간된 2006년 당시엔 그 정도 비용이면 그의 작품을 들여올 수 있었던 거죠.

    일본 소설의 선인세 거품 논란은 출판계의 뜨거운 감자입니다. 꽤나 이름이 알려진 1급 작가의 경우 500만 엔(약 6750만원)은 줘야 작품을 들여올 수 있다고 해요. 무라카미 하루키 같은 ‘특급’ 작가는 ‘부르는 게 값’이고요. 또 언제부턴가 유명 작가의 경우 ‘모든 작품’을 들여오는 풍토가 되다 보니, 선인세로 일본에 지불하는 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습니다.

    그렇다고 이 작품들이 모두 판매가 잘 되느냐?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게 출판업계 관계자들의 얘기입니다. 선인세가 높은 만큼 일정량 이상이 판매돼야 하는데, 실제로는 선인세만큼도 팔기 어렵다고 해요. 아무리 유명 작가라 해도 작품성이 떨어지는 작품도 분명 있고, 이런 작품은 아무리 비싸게 들여와도 독자가 외면할 수밖에 없는 거죠.

    일본 소설, 묻지마 선인세
    취재 중 만난 한 관계자는 “콘텐츠의 수준과 상관없이 유명 작가라면 무작정 들여오려는 국내 출판사들, 그리고 출판사 간 무리한 경쟁을 유도해 가격을 높이려는 출판 에이전시가 일본 소설 선인세 거품을 키웠다”고 강조했습니다.



    일본 문화를 취재하면서 가장 부러웠던 건 신진이든, 중견이든 다양한 작가들이 세분화한 자신만의 분야에서 활발히 활동할 수 있는 시스템이었어요. 그리고 그들의 작품을 사서 읽는 수많은 독자였죠. 일본 소설 선인세 거품을 줄이는 건 출판업계뿐 아니라 우리 소설을 사서 읽어줄 독자들의 몫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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