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8일 서울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열린 톰 요크의 첫 단독 내한공연. [사진 제공 · 라이브엑스]
본래 후지록은 2017년까지 열린 지산밸리록페스티벌(밸리록)과 제휴 관계를 맺고 있었다. 이 페스티벌은 후지록과 같은 기간에 열렸기에 금요일 후지록에 선 팀 가운데 일부는 일요일 밸리록에, 금요일 밸리록에 선 팀 가운데 일부는 일요일 후지록에 서는 식으로 라인업을 공유하곤 했다. 라디오헤드, 뮤즈, 프란츠 퍼디넌드, 매시브 어택 등 매년 여름을 설레게 했던 이름들이 이런 식으로 한국 관객을 만났다.
하지만 밸리록은 주최사인 CJ ENM이 손을 떼면서 2018년부터 열리지 않았다. 그리고 춘추전국시대가 시작됐다. 단독 콘서트, 아니면 다른 페스티벌로 후지록 라인업의 내한이 분산됐다. 지난 주말 후지록에 참가한 후 한국을 찾은 아티스트들이 있었다. 일부는 천국의 시간을, 일부는 지옥의 시간을 맛봐야 했다.
환상적이던 올림픽홀 공연
2019 후지록페스티벌 현장 사진. [사진 제공 · 후지록페스티벌]
라디오헤드는 2016년 ‘A Moon Shaped Pool’을 끝으로 휴식기에 들어갔다. 이후 톰 요크는 2014년 솔로 앨범 ‘Tomorrow’s Modern Boxes’에서 따온 팀 이름으로 솔로 활동을 시작했고, 올해는 영화 ‘서스페리아’의 OST를 맡는 한편 또 하나의 솔로 앨범 ‘ANIMA’를 발표했다. 그리고 영화감독 폴 토머스 앤더슨과 함께 15분짜리 음악영화 ‘아니마’를 만들기도 했다. 톰 요크는 그동안 ‘Anima’를 포함해 석 장의 솔로 앨범을 냈다. 프로젝트 밴드인 아톰스 포 피스로도 한 장의 앨범이 있다.
이 작업들을 통해 톰 요크는 라디오헤드와는 사뭇 다른 음악을 추구해왔다. 일렉트로닉을 기반으로 지극히 몽환적이면서도 지적인 사운드를 만들었다. 따라 부를 수 있는 노래가 거의 없을 만큼 멜로디는 해체되기 일쑤였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오히려 더욱 섬세해지는 톰 요크의 목소리는 음악 감상의 축을 ‘멜로디와 리듬’이 아닌 ‘사운드와 텍스처’ 중심으로 바꾸는 게 가능함을 입증했다. 물론 그런 음악을 추구하는 아티스트는 많지만, 대부분 아방가르드 영역에 속해 있다. 반면 톰 요크는 전위를 대중성과 연결했다. 라디오헤드가 그랬던 것처럼 톰 요크 또한 ‘아름답지 않은 것’을 ‘아름다운 것’의 세계로 편입시켰다.
이 몽환적 아름다움은 솔로 공연에서도 이어졌다. 백업 멤버 두 명과 함께 7시 정각에 무대에 오른 톰 요크는 2시간가량 말 그대로 꿈과 같은 공연을 펼쳤다. ‘Tomorrow’s Modern Boxes’ 수록곡인 ‘Interference’로 시작해 ‘서스페리아’ OST 수록곡 ‘Suspirium’으로 끝날 때까지 총 21곡을 연주했다. 26일 후지록에서는 15곡이 전부였다.
음악계의 대표적 환경론자인 그는 공연에서도 화려함과는 거리가 먼 무대 세팅을 통해 이산화탄소 배출을 최소화하겠다는 의지를 실천했다. 그렇다고 무대가 초라했다는 얘기가 아니다. 뒤편을 가득 채운 LED(발광다이오드) 스크린을 적극 활용해 단출한 조명 장비로 인한 허전함을 최소화했고, 이 스크린에 흐르는 영상은 꿈을 그대로 시각화한 듯 보였다.
복잡한 비트와 물결치는 전자음향 위에서 톰 요크는 기타와 베이스, 키보드를 번갈아 연주하며 황홀하게 노래했다. 이런 공연은 ‘재미’와는 거리가 멀다. 순수미술 전시회, 현대무용 공연이나 음악회에 가는 마음으로 임해야 한다. 몸과 마음을 차분히 하면서 몰두하고 느껴야 한다. 무대 위에서 쏟아지는 소리와 영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자 집중해야 한다.
그렇게 두 시간가량이 지나면, 뛰어노는 공연 못지않은 체력 소모를 느끼게 된다. 마약 없는 환각에 취하게 된다. 스마트폰으로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찍는 관객들이 때로는 별처럼, 때로는 숲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보는 이의 의식을 우주로 만들어버린다. 음악이 만들어낼 수 있는, 지고의 아름다움이 거기 있었다. 음향 상태도 무척이나 좋았다. 습습한 일요일, 만약 페스티벌에서 봤다면 이 감흥의 농도는 상당히 옅었을 것이다.
그 시각 영종도에선…
7월 28일 홀리데이랜드 페스티벌에서 자신의 뜻과 무관하게 공연이 취소됐다며 호텔 로비에서 무료 공연을 펼친 영국 가수 앤 마리. [앤 마리 인스타그램]
올해도 제임스 블레이크, 앤 마리, 허(H.E.R.) 등의 아티스트로 라인업을 꾸렸다. 개최 소식이 알려졌을 때 많은 관계자가 반신반의, 아니 짙은 의구심을 드러냈다. 그만큼 운영에 대한 불신이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올해는 참사라 해도 좋았다.
이틀간 벌어진 일들만 나열해보자. 개최를 하루 앞두고 허의 공연이 취소됐다. 특별한 이유도 밝혀지지 않았다. 주최 측은 급하게 허 대신 국내 아티스트인 페노메코를 올릴 것처럼 말했지만, 이는 페노메코와 어떤 상의도 없이 벌어진 일이었다. 급히 힙합듀오 XXX가 대신 공연했다. 미국 힙합 아티스트 조지(Joji)의 공연이 예정 시간보다 15분 단축된 건 뒤에 벌어질 일에 비하면 지극히 사소한 것이었다.
둘째 날인 7월 28일, 인천은 비가 내렸다. 현장은 진흙탕이 됐다. 이날 열 팀이 공연 예정이었는데, 그중 네 팀의 공연이 당일 취소됐다. 오프닝을 맡았던 DJ 라이트는 무대 정비로, 빈지노는 공연 지연으로 인해 취소됐다. 빈지노 공연 취소 소식은 그의 인스타그램에서 발표됐다. 그리고 오후 9시쯤, 메인 스테이지의 마지막과 그 전 시간을 장식할 예정이던 대니얼 시저와 앤 마리의 공연이 취소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주최 측은 아티스트의 요청에 따른 것이라고 했지만, 앤 마리는 안전상 이유로 주최 측이 요청한 것이었다며 소셜미디어를 통해 직접 알렸다. 진실이야 누가 알겠느냐만, 앤 마리가 한국 팬을 위해 호텔 로비를 직접 섭외해 무료공연을 펼쳤다는 훈훈한 소식을 감안하면 쉽게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페스티벌은 시장을 교란한다. 페스티벌에 대한 기대치를 낮추게 하고, 해외 아티스트에게는 국내 공연시장에 대한 신뢰도를 떨어뜨린다. 과거 내한공연의 불모지였던 한국이 거장은 물론, 신진 뮤지션들의 단골 공연국이 된 이유 가운데 하나는 오랜 시간 쌓아온 국내 공연 기획의 신뢰도 덕분이었다. 홀리데이랜드페스티벌 주최 측은 황금 같은 휴가철에 페스티벌을 찾은 관객에게도, 한국 팬들을 만나려고 설레어 있던 뮤지션들에게도 지옥의 주말을 선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