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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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호의 시네+아트

존 웨인이 영웅이었던 흑인 소년의 성장기

라울 펙의 ‘아이 엠 낫 유어 니그로’

  • | 영화평론가 hans427@daum.net

    입력2018-02-06 15:3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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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제공 · 와이드 릴리즈]

    [사진 제공 · 와이드 릴리즈]

    라울 펙 감독의 ‘아이 엠 낫 유어 니그로(I Am Not Your Negro)’는 1960년대 미국 인권운동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다. 지난해 독일 베를린국제영화제와 미국 아카데미시상식에 초대되며 세계 영화계의 주목을 받았다. 60년대 흑인 지도자 세 명이 차례로 암살된 비극의 역사를 소환한다. 곧 63년 메드가 에버스, 65년 맬컴 엑스, 그리고 68년 마틴 루서 킹의 암살이 중심 내용이다. 라울 펙 감독이 지금 그때를 소환하는 이유는 “역사는 과거가 아니라 현재”라고 믿기 때문이다. 과거는 곧 지금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영화는 작가이자, 인권운동가이며, 세 희생자와 절친했던 제임스 볼드윈(오른쪽 사진 속 선글라스 낀 남성)의 내레이션으로 진행된다(더빙은 새뮤얼 잭슨). 우선 그는 자신이 어떻게 흑인으로 성장했는지부터 털어놓는다. 곧 흑인의 정체성 형성 문제인데, 흥미롭게도 여기에 동원되는 게 수많은 영화다. 

    볼드윈은 어릴 때 엄마와 함께 조앤 크로퍼드가 주연한 뮤지컬 영화 ‘댄스, 풀스, 댄스’(1931)를 보며 여주인공에게 반한 경험부터 말한다. ‘흑인’ 소년 볼드윈에게도 ‘백인’ 스타 크로퍼드의 외모는 ‘보편적’인 아름다움이었다. 서부극 고전 ‘역마차’(1939)를 보며 주인공 존 웨인을 영웅시했고, 그와 맞섰던 ‘인디언’은 존 웨인처럼 적으로 봤다. 말하자면 볼드윈은 영화의 주인공, 곧 백인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봤다. 하지만 얼마 뒤 자신이 존 웨인이 아니라 총에 맞아 죽는 인디언이라 여길 때, 흑인 소년의 정체성에 큰 변화가 왔다. 사춘기의 성장은 인종적 정체성을 인식하며 시작된 셈이다. 


    [사진 제공 · 와이드 릴리즈]

    [사진 제공 · 와이드 릴리즈]

    ‘아이 엠 낫 유어 니그로’는 짐작할 수 있듯 흑인들의 시위, 경찰의 진압 같은 역사적 사건을 차례로 소환한다. 킹 목사가 주도했던 투표권 쟁취 운동인 ‘버밍햄 시위’(1963)와 ‘셀마 - 몽고메리 행진’(1965)에서 흑인들이 경찰의 몽둥이에 두들겨 맞는 장면 등이 대표적이다. 볼드윈도 그 시위에 참여했다. 법에 명시된 투표권을 행사하겠다는 흑인들, 이들을 폭력적으로 방해하는 일부 인종주의 백인, 그리고 무력진압을 과도하게 행사하는 경찰들을 보면 이곳이 세계 ‘일등국가’인가 싶다. 

    문제는 이런 비이성의 차별과 폭력이 과거가 아니라 지금도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왜 그럴까. 라울 펙 감독이 강조하는 건 대중매체, 특히 지배적 가치를 무의식적으로 전달하는 영화의 속성이다. 곧 대중영화에서 흑인은 주로 주변부, 소수, 타자로서 ‘자연스럽게’ 무시되는데, 감독은 이런 상황을 유명 영화의 장면들을 통해 반복적으로 제시한다. 그에 따르면 ‘니그로’(검둥이)라는 표현은 백인이 만들었다. 말하자면 백인에 의해 흑인의 특별한 정체성이 생긴 것이다. 영화 제목은 ‘나는 너희의 검둥이가 아니라, 한 명의 사람이다’로 읽힌다. 더는 객체로서가 아니라 주체로서의 자기 정체성 선언이다. ‘니그로’를 ‘동양인’ 또는 ‘농민’ 같은 다른 정체성으로 대체하면 영화의 의미는 더욱 증폭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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