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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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S·장준하·박태환도 다 고쳤다?

한두 차례 치료를 과대포장…연이은 논란에 책 내용 일부 삭제하기도

  • 김유림 기자 rim@donga.com 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입력2010-10-04 11: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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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YS·장준하·박태환도 다 고쳤다?

    구당이 치료했다고 밝힌 김영삼 대통령, 장준하 선생, 박태환 선수(왼쪽부터). 알고 보니 한두 번 치료한 것을 침소봉대하거나 전혀 치료한 적이 없는 경우도 있었다.

    김영삼 전 대통령, 박정희 전 대통령을 살해한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 광복군 출신 재야 정치인 장준하 선생, 수영 국가대표 박태환 선수….

    구당 김남수 옹이 인터뷰나 자서전 등을 통해 치료했다고 밝힌 인물들이다. 침구사로서 무명에 가깝던 구당이 유명해진 것은 정치·연예계를 넘나들며 다양한 명사(名士)를 치료한 사람이라 알려진 점도 한몫했다(상자기사 참조). 실제 구당의 치료를 받은 노태우 전 대통령 측은 “한두 번 구당의 치료를 받았고 실제로 효과가 좋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주간동아’의 취재 결과, 구당이 치료했다고 밝힌 명사 중 상당수가 “치료 사실이 없거나 한두 번 치료를 받았을 뿐”이라고 밝혔다. 이처럼 치료했는지를 확인하기 어려운 사실을 널리 알리고, 한두 차례 치료한 것을 침소봉대한 경우가 적지 않다. 특히 치료했다고만 알려졌을 뿐 효과는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경우가 많다.

    장준하 선생 큰아들 호권 씨 “구당에게 치료받은 적 없어”

    구당이 치료했다고 밝힌 대표적인 인물이 재야 정치인이었던 고 장준하 씨. 구당은 월간 ‘신동아’ 2005년 5월호 인터뷰에서 “장준하 선생이 세상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치료한 사람이 나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2008년 4월 28일 ‘여의도통신’, 2008년 9월 29일 ‘서울신문’에 실린 인터뷰 등에서도 장씨의 치료 사실을 밝혔다. 저서 ‘나는 침뜸으로 승부한다’(정통침뜸연구소, 2008)에는 더욱 자세하게 실려 있다.



    ‘나를 찾았던 많고 많은 디스크 환자 가운데 잊히지 않는 이로 장준하 선생이 있다. 정치인이면서 언론인인 장준하 선생은 (중략) 장 선생은 디스크가 너무 심해 일어나 앉는 것은 물론이고 말도 크게 못하고 기침도 못하고 웃지도 못했다. 장 선생은 명성에 걸맞지 않게 초라한 집에 살고 있었다. 자택이 제기동 홍파초등학교 앞에 있었는데 지붕 위로 바로 고압 전류선이 지나가는 것을 보고 (중략) 신문을 보다가 장 선생이 산에서 실족사했다는 기사를 접했다. 납득할 수 없음을 넘어 기가 막혔다. (중략) 디스크가 심해 지팡이 없이는 걷지도 못하고 혼자서는 집 밖에 나갈 수도 없으며 낮은 계단도 오르지 못하는 사람이 무슨 수로 울퉁불퉁한 산비탈을 혼자 오른단 말인가! (중략) 장준하 선생이 세상을 떠나기 전 가장 마지막으로 장 선생을 치료한 이는 아마 나일 것이다.’(책 ‘나는 침뜸으로 승부한다’에서)

    하지만 8월 24일 만난 장씨의 큰아들 장호권(64) 씨는 “아버지 장준하 선생은 김씨에게 치료를 받은 적이 없다”고 단호히 말했다. 그는 “김씨는 아버지의 디스크를 치료했다고 했지만 아버지는 디스크가 없었다”고 말했다. 지병으로 협심증은 있었으나 그 밖에 디스크 등 질병은 없었다는 설명이다. 그는 “돌아가시기 직전까지도 새벽 4시에 기상해 냉수목욕을 했던 양반이고 워낙 건강해 등산도 잘했다. 집 밖에 나가지 못할 정도로 허리가 안 좋았다면 장남인 내가 모를 리가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구당은 저서와 인터뷰를 통해 “서울 제기동 홍파초교 앞집에서 돌아가시기 보름 전까지 치료했다”고 주장하지만 장호권 씨에 따르면 장씨 가족은 1968년부터 69년까지 서울 제기동 홍파초교 앞에 살았고, 1970년부터 장준하 선생이 세상을 떠난 75년까지는 서울 상봉동에 살았다. 만약 장씨 사망 보름 전에 김씨가 장씨를 치료했다면 치료 장소는 제기동이 아닌 상봉동이어야 한다. 장호권 씨는 “1970년 전후로 동대문 사는 사람이면 고압선 철탑 아래 집이 우리 집인 걸 다 알았다. 원래 사람이 살기 어려운 집인데 집값이 싸니까 가난한 우리 가족이 머물렀던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대통령 직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이하 의문사위)는 2001년부터 장준하 선생 사망과 관련된 진상조사를 벌였다. 장씨가 12m 아래로 추락, 실족사했는데 시신의 상태가 온전한 점, 시신에서 주삿바늘 자국 3개가 발견된 것 등에 의심을 가진 것. 당시 조사관이었던 고상만 씨는 구당이 평소 저서를 통해 “장씨를 치료했다”고 주장하는 것을 알고 참고인 자격으로 구당을 3차례 조사했다.

    의문사위 조사관 3차례 구당 조사

    고씨는 “조사 결과 김씨가 제기동에서 장씨를 치료했다고 밝힌 시기와 장씨가 제기동에 거주한 시기가 맞지 않았다. 그리고 김씨는 장씨의 부인, 남동생 등을 치료했다고 진술했으나 부인은 조사 과정에서 ‘치료받은 적이 없다’고 직접 밝혔으며, 당시 남동생은 미국에 이민 가 한국에 없었다. 이전에 장씨가 김씨에게 진료받은 적이 있는지는 확인할 수 없으나 모든 내용을 종합해 ‘장준하 선생은 사망 직전 김남수 씨에게 치료받지 않았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그는 2004년 초, 위와 같은 결론을 내린 뒤 동대문구 김씨의 진료실을 찾았던 때를 회상했다.

    “의문사위의 결론을 알려주러 갔는데 그토록 사실 하나하나를 또렷하게 기억하던 양반이 약간 쑥스러운 듯 미소를 지으며 ‘아, 그런가요? 제가 틀렸군요’라고 담담히 사실을 받아들이더군요.”

    처음에는 관련 대응을 하지 않았던 장호권 씨는 김씨가 2008년 TV에 출연해 화제의 인물이 되고 덩달아 장준하 씨 치료 경력까지 화제가 되자 ‘사상계’ 등을 통해 ‘김씨는 장준하 선생을 치료한 적이 없다’고 발표했다. 이에 ‘구당 김남수, 침뜸과의 대화’ 저자인 MBC 이상호 기자는 2009년 12월 9일 인터넷 신문 ‘오마이뉴스’ 댓글을 통해 ‘장준하 선생 건은 치료 당시 코흘리개에 불과하던 아드님이 무엇을 알 수 있었을까요? 구당 선생 측의 항의 서한에 대해 장준하 선생의 아드님께서는 아직 묵묵부답이라고 하는군요’라고 답했다.

    그러자 장호권 씨는 “항의 서한을 받은 적도 없을뿐더러, 내가 1946년생이니 아버지가 돌아가신 1975년이면 서른 살이다. 서른 살 먹은 코흘리개도 있는가? 이상호 기자는 1968년생으로 아는데 당시 코흘리개였던 건 이 기자 아닌가?”라고 반박했다. 한편 2008년판 ‘나는 침뜸으로 승부한다’에 실려 있던 장준하 씨 치료 내용이, 2009년 7월 개정·발행된 책에는 이렇다 할 설명도 없이 슬그머니 빠져 있다. 그 밖의 내용은 그대로인 것과 대비된다.

    김영삼 전 대통령을 치료했다는 것도 구당이 곧잘 하는 얘기다. 저서 ‘침사랑 뜸사랑 아~내 사랑!’(정통침뜸연구소, 2002)에 실린 내용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을 처음 만난 것은 1992년 겨울 제14대 대통령선거 기간이었다. ‘조용히 혼자 와달라’는 비서의 부탁대로 침통만 챙겨들고 김 대통령 후보의 상도동 자택을 찾았다. (중략) 김 대통령 후보는 어깨가 심하게 굳어 있었다. 하루 종일 선거유세를 하며 만나는 이마다 악수했더니 오른쪽 어깨가 떨어져나가는 것처럼 아프다고 했다. (중략) 김 전 대통령과의 인연은 재임 기간 내내 이어졌다. 김 대통령은 수시로 나를 불렀다.’

    저서에서 그는 김 전 대통령을 치료한 인연뿐 아니라 ‘침과 뜸이 사라지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에 대해 이야기’했으며 ‘김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이 당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하던 S의원을 소개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2008년 10월 10일 ‘한겨레신문’과의 인터뷰, 2008년 12월 19일 ‘브레이크뉴스’와의 인터뷰 등에서도 “김영삼 전 대통령을 치료했다”고 말했다.

    YS 측 “대통령을 이름 이용 말라”

    하지만 김 전 대통령의 아들인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 김현철 부소장은 “김씨의 말은 사실과 다르다”고 말했다. 그는 “김 전 대통령이 김씨에게 단 한 번 발목을 치료받은 적이 있는데 이를 부풀려 말하고 있다”고 전했다. 김 전 대통령이 통일민주당 총재로 재임하던 1988년부터 32년간 김 전 대통령의 보좌를 맡고 있는 김기수 전직대통령 비서관 역시 “재임기간 김 전 대통령이 조깅을 하다 다리를 약간 삐끗해 김씨를 불러 딱 이틀간 치료받은 적이 있다. 하지만 선거운동 당시에 만나 어깨를 치료받거나 국회 보사위원장을 소개한 사실은 없다”고 밝혔다. 김 비서관은 “김 전 대통령은 당시 서울대 의대 쪽 주치의가 있었으나 주변에서 ‘발목이 삐었을 때는 침뜸으로 치료해야 더 빠르다’고 말해 단 한 번 ‘경험’한 것이다. 그걸 가지고 전 대통령님을 매명(買名)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덧붙였다.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과의 인연은 더욱 ‘극적’이다. 구당은 저서 ‘침사랑 뜸사랑 아~내 사랑!’에서 ‘1979년 10월 25일, 박정희 서거 전날 김 부장을 치료했다’고 밝혔다.

    ‘그때 나는 김재규 중앙정보부장과 꽤 가까운 사이였다. 간이 좋지 않은 데다 잠을 잘 자지 못하고 밤이면 가려움증이 심해 고생하던 김 부장은 나에게 치료받은 뒤 증세가 한결 호전돼 짬이 나면 늘 나를 찾았다.’

    이 책에서 구당은 이 인연으로 ‘김 부장이 10월 30일 대통령과 만나는 약속을 잡아주었다’고 주장했다. 침뜸을 놓으며 김 부장과 가까워졌고, 1962년 박정희 정권이 들어서면서 갑자기 사라져버린 침구사 제도 부활을 대통령에게 직접 건의할 기회를 만들어달라고 부탁했다는 것.

    ‘10월 26일 (중략) 김재규 부장은 불과 몇 시간 전 평소와 다름없는 얼굴로 나를 찾아와 여느 때와 같이 침을 맞으며 ‘김 선생, 이제 나흘 남았소’라며 박정희 대통령과의 약속을 상기시켜주었다.’

    2005년 5월 ‘신동아’와 인터뷰에서는 ‘김재규에게 갈 때는 거의 자정 넘은 시각에 정보부 차가 날 데리러 와요. 비상등을 켜고 신호를 무시한 채 한 번도 쉬지 않고 달려갑니다’라며 당시 상황도 정확하게 묘사했으며 전날 나눈 대화를 전하며 ‘10·26은 극히 우발적으로 생긴 사건’이라고 전했다.

    이에 대해 당시 김 부장을 변호했던 강신옥 변호사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일축했다. 강 변호사는 “(가족들에게) 물어봤는데 예전에 치료받은 적이 있을 수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전날 만났다는 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김재규는 당시 간이 나빠 서울대 김정용 박사에게 주로 치료를 받았지 김씨에게 치료받았다는 건 말도 안 된다”고 했다.

    10·26 전날 김재규 부장을 만났다고?

    구당이 유명 인사들의 치료 사실을 과대포장하는 것은 비단 과거의 사례에 그치지 않는다.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에서 3관왕 및 최우수선수(MVP)로 뽑히는 등 맹활약을 하던 수영선수 박태환. 그는 2006년 12월 당시 오른쪽 엄지발가락 밑에 있는 사마귀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사마귀를 칼로 절제하면 어렵지 않게 완치할 수 있지만 그렇게 하면 한 달가량 물에 들어가지 못해 훈련에 지장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그 때문에 박 선수는 계속 사마귀 뿌리 부분에 주사를 맞고 고름이 굳으면 그것을 긁어내는 방식으로 응급치료만 해왔다. 하지만 뿌리가 완전히 제거되지 않아 응급치료를 해도 계속해서 사마귀가 자라는 탓에 어려움을 겪었다.

    박 선수의 사정을 언론보도를 통해 접한 구당은 박 선수의 아버지인 박인호 씨에게 전화를 걸어 “한두 번 침뜸 치료를 하면 뿌리를 완전히 제거할 수 있고, 침뜸 치료 후에는 바로 물에 들어갈 수 있다”며 치료를 제의했다. 그해 12월 21일 박 선수는 서울 동대문구 홍릉동 김씨의 침술원에서 20여 분간 침뜸 치료를 받았다. 그 후 이뤄진 구당의 인터뷰에는 “수영선수 박태환도 구당을 찾아가 발바닥 티눈을 뜸으로 제거했다”는 내용이 대대적으로 실렸다.

    하지만 박 선수의 아버지 박인호 씨는 “당시 두세 번 침뜸 치료를 받았으나 (구당의 말과 달리) 사마귀 뿌리를 완전히 제거하진 못했다”고 말했다. 결국 박 선수는 다시 병원으로 돌아가 원래대로 사마귀에 주사를 맞고 긁어내는 방식으로 치료를 받았다. 지금도 사마귀의 크기만 작아졌을 뿐 뿌리는 제거되지 않은 상태다. 박씨는 “구당이 나이도 많고 어려운 사람도 잘 도와주는데 공짜로 태환이를 도와준다니 고마운 마음도 있었다. 또 ‘혹시나’ 하는 마음에 찾아갔던 것인데, 자꾸 우리 애를 데리고 (마치 뿌리를 다 제거해 완치시킨 것처럼) 자기 홍보를 하는 것 같아 마음이 안 좋다”고 말했다.

    구당과 명사들 화려한 인연

    김춘진·이상득 의원…시인 박노해, 문선명 총재도 치료받아


    구당 김남수 옹이 치료했다고 밝힌 인물 중에는 유난히 명사가 많다. 그중 한나라당 김춘진 의원이 있다. 김 의원은 2009년 2월 ‘국민건강증진을 위한 뜸시술의 자율화에 관한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의료법 제한사항을 준수하며 재산상 이익을 받지 않는다면 누구든 자유롭게 뜸 시술을 할 수 있게 하자는 것. 김 의원은 ‘최근 들어 뜸 등 전통적인 한방영역의 치료효과에 관해 과학적으로 입증됐으므로 뜸시술이 자연의술로서 대체의학적 가치, 비용의 경제성 등 그 효용성이 인정된다. 뜸시술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고 의료비를 절감해 국민건강에 이바지하려고 한다’며 제안 이유를 밝혔다.

    대통령의 형 이상득 의원도 구당과 인연을 맺은 명사로 거론된다. 이상득 의원은 2008년 뜸사랑 산하 효행봉사단에게 500만 원을 후원했을 만큼 구당과 남다른 친분을 과시했다. 이상득 의원 측은 “피로가 잘 풀린다며 뜸하고 침을 맞으러 자주 갔었다. 외국 갔다 와서 시간 나면 (국회의원 회관에서) 맞고는 했다”고 말했다.

    ‘오늘은 누가 아픈가, 느린 걸음으로 찾아다니며, 따뜻한 맨손으로 어루만지는 사람.’

    시인 박노해 씨가 2004년 11월 뜸사랑 봉사 20주년을 맞아 구당에게 바친 축시 ‘우리들 나눔의 성자여’의 한 구절이다. 본문에는 ‘그는 첨단 장비를 들지 않았다네/ 가늘고 순한 오래된 침 하나라네/ 그는 비밀스런 영약을 들지 않았다네/ 이 땅의 가장 흔한 마른 쑥 한 톨이라네/ 그는 값비싼 면허장을 들지 않았다네/ 그대 자신이 의사고 병원이라고 임명해준다네//’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감사원장, 재정경제부(이하 재경부) 장관 등을 지낸 경원대학교 경제학과 전윤철 석좌교수 역시 대표적인 구당 예찬론자다. 재임시절 감사원과 재경부에 ‘침·뜸 치료실’을 열어 직원과 일반인에게 개방했을 정도다. 전 교수는 “70년대 중반, 경제기획원(현 재경부) 과장으로 재직하던 당시 테니스를 치다 허리를 다쳤을 때 한국전기공사 모 간부의 소개로 김씨를 만났다. 이후 등산을 하면서 몸이 뻐근할 때, 특히 내가 재경부 장관 시절 국회 침뜸 봉사실을 자주 찾아 진료받았다”고 말했다.

    통일교 문선명 총재는 2008년 구당에게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을 돕는 일에 써달라”며 1억 원 상당의 침, 뜸쑥, 향, 진료대 등 봉사물품을 지원했다. 2008년 10월 ‘오마이뉴스’는 “(2008년) 문 총재 가족이 탄 헬리콥터가 추락해 문 총재 부인이 다쳤을 때 구당 선생의 치료로 크게 개선됐다고 한다”고 보도한 바 있다. 이 밖에도 그동안 언론을 통해 김지하 시인, 조정래 작가, 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 남덕우 전 국무총리, 방송인 송해 등이 구당과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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