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는 모르지만 ‘체력(體力)은 국력’이라는 말은 우리의 삶에 각인돼 있다. 그러나 이 말이 주는 이미지는 세대에 따라 큰 차이가 난다. 군사독재 시절 이 말은 ‘국민총동원령’을 위한 구호였다. 냉전체제에서 체력은 곧 군사력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극한 상황에서 살아남아 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 힘이 곧 체력으로 인식됐다. 반면 요즘 젊은 세대에게 ‘체력은 국력’이라고 하면 밴쿠버 동계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모태범 선수의 굵은 허벅지(26인치)를 먼저 떠올린다. ‘금벅지’ ‘철벅지’들이 한국에 안겨준 메달 수가 곧 ‘체력은 국력’임을 입증했다.
하지만 체력은 군사력도, 금메달 수도 아니다. 오늘날 체력은 개인의 건강과 직접 연결된다. 문제는 체력 증진이나 저하의 결과가 비단 개인에게만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국민 체력의 전반적인 저하는 의료비 지출을 늘리고, 의료비 증가는 노동생산성의 하락을 가져와 국가경쟁력 추락을 부르는 악순환의 시작이다. 그래서 최첨단 시대인 21세기에도 여전히 ‘체력은 국력’인 것이다.
몸매는 착한데 저질체력 수두룩
체력은 말 그대로 ‘우리 몸이 낼 수 있는 힘’을 말한다.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힘으로도 해석된다. 따라서 질병 없이 건강하다고 체력이 좋은 것은 아니다. 체력이 좋으면 건강할 확률이 높지만 그 반대는 성립하지 않는다. 건강검진과 체력측정 항목이 다른 이유도 이 때문이다. 건강검진은 혈액 검사, 방사선 검사로 몸 안 구석구석을 살피지만 체력측정은 인체의 움직임을 통해 근지구력, 스피드, 유연성, 순발력 등을 파악한다. 그래서 체격이 크고 예쁘다고 체력이 좋은 것도 아니다. 요샛말로 ‘몸매가 착한’ 사람 중에 ‘저질체력’인 경우도 많다.
지난 40여 년 동안 한국인의 평균 체격은 나날이 좋아졌다. 꽃미남·짐승남 신드롬이 말해주듯 겉보기는 말쑥해졌다. 20대 초반 남성의 평균 키는 174.1cm로 1965년 163.7cm보다 10cm 이상 커졌다. 그렇다면 체격에 비례해 체력도 좋아지고 있는 것일까. 아쉽게도 결과는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체력이 퇴보하고 있다.
20, 30대 청년층이 점차 약골이 돼간다는 얘기는 어제오늘의 지적이 아니다. 2010년 1월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2009 국민체력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20, 30대의 근지구력과 스피드, 유연성, 순발력 등 체력요소가 2007년보다 전반적으로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2007년도 조사와 비교해 20, 30대에서 제자리멀리뛰기는 16~17cm 감소했고, 윗몸일으키기는 평균 2, 3회 낮아졌으며, 50m 달리기 기록은 0.6~0.8초 느려졌다. 체력저하의 주범은 기초체력운동의 부족. 국민체육진흥공단 체육과학연구원 고병구 책임연구원은 “신체활동 시간이 절대적으로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40대 중반인 사람들만 해도 학창시절 생활환경 자체가 움직여야만 하는 상황이었죠. 그러다 보니 산과 들에서 뛰어놀면서 자연스레 체력을 키웠습니다. 반면 요즘 세대는 앉아서 생활하는 시간이 늘고, 움직임이 없다 보니 과다한 영양이 체내에 쌓여 체력저하라는 악순환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래서 나이가 어릴수록 체격은 좋아지지만 반대로 체력은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교육과학기술부가 2009년 국정감사 자료로 제출한 ‘2000~2008년 학생신체능력검사 결과 보고’를 보면 2008년 초중고 학생의 1, 2급 비율은 33%로 2000년에 비해 8%포인트 감소했다. 반면 최하등급인 4, 5급 비율은 같은 기간 31%에서 42%로 11%포인트나 증가해 체력저하 현상이 뚜렷했다.
‘주간동아’ 기자들의 체력측정 체험
이러한 체력저하 현상을 확인하기 위해 ‘주간동아’ 기자들이 직접 체력측정을 해보기로 했다. 3월 15일 오후 2시 서울 송파구에 자리한 국민체육진흥공단 국민체력센터를 찾았다. 측정 대상은 갓 30대에 들어선 나(손영일 기자)와 20대 김유림 기자, 40대 윤융근 기자였다.
“진짜 윤 선배가 가장 체력이 좋은 거 아니야.”
평소 체력 하나는 자신 있다고 생각한 나는 농담으로 선배에게 이런 말을 건넸다. 방송인 강호동은 “겪어보니 방송은 체력전, 씨름은 심리전”이라며 너스레를 떨었지만, 기자 역시 “취재는 심리전, 기사 작성은 체력전”임을 몸소 느끼고 있었던 터. 간단한 설문을 마친 뒤 옷을 갈아입고 검사를 시작했다. 본격적인 체력검사에 앞서 키·몸무게 등을 측정하고, 심전도 및 폐활량, 체지방 측정을 마쳤다. 예상대로 체격 조건은 모두 우수했다. 180cm대인 나와 윤 기자, 170cm의 김 기자는 키에서 모두 자신의 나이대 평균치 이상이었다. 체중 역시 부족함이 없었다.
웃통을 벗고 심전도 측정을 위해 가슴 10여 곳에 측정 장치를 붙였다. 코와 입은 마스크를 쓴 채, 한쪽 팔에는 혈압을 재기 위해 혈압측정 기기를 부착했다. ‘심폐지구력 하나만은 자신 있다’는 섣부른 자만심에 걷고 또 걸었다. 힘드냐고 묻는 스태프의 말에도 괜찮다고 손사래 쳤지만 10여 분 못 가 백기를 들고 말았다. 가쁜 숨을 내쉬기 무섭게 유연성 측정을 위한 ‘윗몸앞으로굽히기’, 순발력 측정을 위한 ‘제자리높이뛰기’, 민첩성 측정을 위한 ‘사이드스텝’ 등 여러 항목이 연이어 기다리고 있었다. 1시간 30분이 지날 때쯤 고된 ‘기초체력훈련’이 끝나고 검사결과표를 받는 시간이 돌아왔다. 마치 시험 결과를 확인하는 기분이었다.
“손 기자 운동 많이 하셔야겠어요. 윤 기자는 40대 중반임에도 평소 관리를 잘하셨군요. 근력, 유연성, 민첩성 등 모두 훌륭합니다. 김 기자는 그동안 학교와 집만 왔다 갔다 했군요.”
체력성적표는 처참했다. 국민체육진흥공단 국민체력센터 선상규 원장의 설명 하나하나가 폐부를 찔렀다. 나의 경우 지구력 하나만 괜찮을 뿐 근력, 유연성, 민첩성 등 여타 항목에서 저질체력이 그대로 드러났다. 약골체력을 취재하러 왔던 기자가 바로 약골기자였던 것이다. 체력 측정의 승패는 흡연, 음주 등 평소 체력관리 여부에서 갈라졌지만 이 밖에도 큰 차이점이 하나 발견됐다. 윤 기자는 대학입시 때 체력장을 치른 이른바 ‘체력장 세대’인 반면, 나와 김유림 기자는 대학입시 비체력장 세대였던 것. 그 차이를 눈으로 실감할 수 있었다(18쪽 참조).
국민 개개인 체력 증진 방안 찾아야
약골체력은 각종 질병의 원인이 된다. 국민체육진흥공단 체육과학연구원 김양례 박사는 “체력과 건강의 개념이 완벽하게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체력상태가 나쁠수록 각종 질병에 걸릴 확률이 높다”고 설명했다. 신체활동 부족으로 체력이 악화되면 성인병, 고혈압, 당뇨병, 심장 질환 등 각종 생활습관 질환에 쉽게 걸린다. 일부 외국 문헌에는 암까지도 유발한다는 보고가 언급됐다.
따라서 일정 수준의 체력을 유지하면 병원에 갈 확률이 낮아져 그만큼 의료비 부담이 적어진다. 체력저하는 가파른 증가세를 보이는 의료비 지출에 불을 지핀다. 현재 한국의 1인당 의료비 총액은 연 1688달러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2984달러보다 낮지만, 매년 8.7%씩 증가해 다른 회원국의 증가 속도를 넘어서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의료비 지출 규모도 1990년 24억 달러였던 것이 2008년 290억 달러로 무려 10배 이상 뛰었다. 2050년에는 의료비 지출 규모에서 일본을 추월할 것으로 예상된다.
“몸이 아픈 사람이 일을 잘할 수 있겠습니까?”
고병구 책임연구원은 “체력저하와 의료비 증가는 노동생산성 약화의 원인”이라고 말했다. 한국의 노동생산성은 세계 33위 수준에 그친다. 1980년대만 해도 생산성 증가율이 연평균 5.8%에 달했지만 1990년대 들어 4.5%로 한풀 꺾인 데 이어 2000년대 이후 3%로 추락했다. “노동생산성이 약해진 원인이 다양하겠지만, 체력저하도 한몫했다”는 게 고 연구원의 주장. 몸이 아프다 보니 자기 일에 집중할 수도 없고, 몸이 안 좋으니 자기계발보다는 의료비 지출에 더 많은 돈을 쓰게 된다는 논리였다. 국민체력센터 선상규 원장 역시 “창의적 아이디어는 내 몸의 에너지원에서 나온다”는 말로 노동생산성과 체력의 관계를 설명했다.
“최대 산소섭취량을 볼까요? 우리가 음식을 먹고 이것으로 힘을 발휘하려면 영양소를 분해해 에너지를 낼 수 있도록 산소가 필요합니다. 얼마나 빠르게 산소를 섭취할 수 있느냐에 따라 두뇌 활동력도 달라집니다. 창의적 아이디어는 단순히 지식이나 지혜에서 나오는 게 아닙니다. 바로 체력에서 나옵니다.”
정부는 한때 10위권 진입을 눈앞에 둔 국가경쟁력 순위(세계경제포럼·WEF)가 2009년 19위까지 밀리자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한 갖가지 대책을 내놓고 있다. 올 6월에는 경제성장률 5%, 1인당 국민소득 4만 달러 달성을 기본 틀로 한 ‘비전 2020’을 발표할 예정. 하지만 바닥에 떨어진 우리 국민의 체력증진을 위한 장기 대책은 어디에도 없다. 전문가들은 “이런 정부의 장밋빛 시나리오도 체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공염불에 그치고 말 것”이라고 진단한다. 만약 정부가 ‘체력은 국력’이라는 명제를 참으로 받아들인다면 이런 장기적인 국가 비전을 세우기에 앞서 비전을 달성할 수 있도록 국민 개개인의 체력 증진 방안부터 찾아야 할 것이다. 개인이든 국가든, 어떤 경쟁도 체력이 뒷받침될 때 이길 수 있는 확률이 커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체력은 군사력도, 금메달 수도 아니다. 오늘날 체력은 개인의 건강과 직접 연결된다. 문제는 체력 증진이나 저하의 결과가 비단 개인에게만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국민 체력의 전반적인 저하는 의료비 지출을 늘리고, 의료비 증가는 노동생산성의 하락을 가져와 국가경쟁력 추락을 부르는 악순환의 시작이다. 그래서 최첨단 시대인 21세기에도 여전히 ‘체력은 국력’인 것이다.
몸매는 착한데 저질체력 수두룩
체력은 말 그대로 ‘우리 몸이 낼 수 있는 힘’을 말한다.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힘으로도 해석된다. 따라서 질병 없이 건강하다고 체력이 좋은 것은 아니다. 체력이 좋으면 건강할 확률이 높지만 그 반대는 성립하지 않는다. 건강검진과 체력측정 항목이 다른 이유도 이 때문이다. 건강검진은 혈액 검사, 방사선 검사로 몸 안 구석구석을 살피지만 체력측정은 인체의 움직임을 통해 근지구력, 스피드, 유연성, 순발력 등을 파악한다. 그래서 체격이 크고 예쁘다고 체력이 좋은 것도 아니다. 요샛말로 ‘몸매가 착한’ 사람 중에 ‘저질체력’인 경우도 많다.
지난 40여 년 동안 한국인의 평균 체격은 나날이 좋아졌다. 꽃미남·짐승남 신드롬이 말해주듯 겉보기는 말쑥해졌다. 20대 초반 남성의 평균 키는 174.1cm로 1965년 163.7cm보다 10cm 이상 커졌다. 그렇다면 체격에 비례해 체력도 좋아지고 있는 것일까. 아쉽게도 결과는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체력이 퇴보하고 있다.
20, 30대 청년층이 점차 약골이 돼간다는 얘기는 어제오늘의 지적이 아니다. 2010년 1월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2009 국민체력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20, 30대의 근지구력과 스피드, 유연성, 순발력 등 체력요소가 2007년보다 전반적으로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2007년도 조사와 비교해 20, 30대에서 제자리멀리뛰기는 16~17cm 감소했고, 윗몸일으키기는 평균 2, 3회 낮아졌으며, 50m 달리기 기록은 0.6~0.8초 느려졌다. 체력저하의 주범은 기초체력운동의 부족. 국민체육진흥공단 체육과학연구원 고병구 책임연구원은 “신체활동 시간이 절대적으로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40대 중반인 사람들만 해도 학창시절 생활환경 자체가 움직여야만 하는 상황이었죠. 그러다 보니 산과 들에서 뛰어놀면서 자연스레 체력을 키웠습니다. 반면 요즘 세대는 앉아서 생활하는 시간이 늘고, 움직임이 없다 보니 과다한 영양이 체내에 쌓여 체력저하라는 악순환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래서 나이가 어릴수록 체격은 좋아지지만 반대로 체력은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교육과학기술부가 2009년 국정감사 자료로 제출한 ‘2000~2008년 학생신체능력검사 결과 보고’를 보면 2008년 초중고 학생의 1, 2급 비율은 33%로 2000년에 비해 8%포인트 감소했다. 반면 최하등급인 4, 5급 비율은 같은 기간 31%에서 42%로 11%포인트나 증가해 체력저하 현상이 뚜렷했다.
(왼쪽부터) 혈압측정 심전도 검사 족부 검사 사이드스텝
이러한 체력저하 현상을 확인하기 위해 ‘주간동아’ 기자들이 직접 체력측정을 해보기로 했다. 3월 15일 오후 2시 서울 송파구에 자리한 국민체육진흥공단 국민체력센터를 찾았다. 측정 대상은 갓 30대에 들어선 나(손영일 기자)와 20대 김유림 기자, 40대 윤융근 기자였다.
“진짜 윤 선배가 가장 체력이 좋은 거 아니야.”
평소 체력 하나는 자신 있다고 생각한 나는 농담으로 선배에게 이런 말을 건넸다. 방송인 강호동은 “겪어보니 방송은 체력전, 씨름은 심리전”이라며 너스레를 떨었지만, 기자 역시 “취재는 심리전, 기사 작성은 체력전”임을 몸소 느끼고 있었던 터. 간단한 설문을 마친 뒤 옷을 갈아입고 검사를 시작했다. 본격적인 체력검사에 앞서 키·몸무게 등을 측정하고, 심전도 및 폐활량, 체지방 측정을 마쳤다. 예상대로 체격 조건은 모두 우수했다. 180cm대인 나와 윤 기자, 170cm의 김 기자는 키에서 모두 자신의 나이대 평균치 이상이었다. 체중 역시 부족함이 없었다.
웃통을 벗고 심전도 측정을 위해 가슴 10여 곳에 측정 장치를 붙였다. 코와 입은 마스크를 쓴 채, 한쪽 팔에는 혈압을 재기 위해 혈압측정 기기를 부착했다. ‘심폐지구력 하나만은 자신 있다’는 섣부른 자만심에 걷고 또 걸었다. 힘드냐고 묻는 스태프의 말에도 괜찮다고 손사래 쳤지만 10여 분 못 가 백기를 들고 말았다. 가쁜 숨을 내쉬기 무섭게 유연성 측정을 위한 ‘윗몸앞으로굽히기’, 순발력 측정을 위한 ‘제자리높이뛰기’, 민첩성 측정을 위한 ‘사이드스텝’ 등 여러 항목이 연이어 기다리고 있었다. 1시간 30분이 지날 때쯤 고된 ‘기초체력훈련’이 끝나고 검사결과표를 받는 시간이 돌아왔다. 마치 시험 결과를 확인하는 기분이었다.
“손 기자 운동 많이 하셔야겠어요. 윤 기자는 40대 중반임에도 평소 관리를 잘하셨군요. 근력, 유연성, 민첩성 등 모두 훌륭합니다. 김 기자는 그동안 학교와 집만 왔다 갔다 했군요.”
체력성적표는 처참했다. 국민체육진흥공단 국민체력센터 선상규 원장의 설명 하나하나가 폐부를 찔렀다. 나의 경우 지구력 하나만 괜찮을 뿐 근력, 유연성, 민첩성 등 여타 항목에서 저질체력이 그대로 드러났다. 약골체력을 취재하러 왔던 기자가 바로 약골기자였던 것이다. 체력 측정의 승패는 흡연, 음주 등 평소 체력관리 여부에서 갈라졌지만 이 밖에도 큰 차이점이 하나 발견됐다. 윤 기자는 대학입시 때 체력장을 치른 이른바 ‘체력장 세대’인 반면, 나와 김유림 기자는 대학입시 비체력장 세대였던 것. 그 차이를 눈으로 실감할 수 있었다(18쪽 참조).
(왼쪽부터) 윗몸앞으로굽히기 팔굽혀펴기 제자리높이뛰기 근관절 기능검사
국민 개개인 체력 증진 방안 찾아야
약골체력은 각종 질병의 원인이 된다. 국민체육진흥공단 체육과학연구원 김양례 박사는 “체력과 건강의 개념이 완벽하게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체력상태가 나쁠수록 각종 질병에 걸릴 확률이 높다”고 설명했다. 신체활동 부족으로 체력이 악화되면 성인병, 고혈압, 당뇨병, 심장 질환 등 각종 생활습관 질환에 쉽게 걸린다. 일부 외국 문헌에는 암까지도 유발한다는 보고가 언급됐다.
따라서 일정 수준의 체력을 유지하면 병원에 갈 확률이 낮아져 그만큼 의료비 부담이 적어진다. 체력저하는 가파른 증가세를 보이는 의료비 지출에 불을 지핀다. 현재 한국의 1인당 의료비 총액은 연 1688달러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2984달러보다 낮지만, 매년 8.7%씩 증가해 다른 회원국의 증가 속도를 넘어서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의료비 지출 규모도 1990년 24억 달러였던 것이 2008년 290억 달러로 무려 10배 이상 뛰었다. 2050년에는 의료비 지출 규모에서 일본을 추월할 것으로 예상된다.
“몸이 아픈 사람이 일을 잘할 수 있겠습니까?”
고병구 책임연구원은 “체력저하와 의료비 증가는 노동생산성 약화의 원인”이라고 말했다. 한국의 노동생산성은 세계 33위 수준에 그친다. 1980년대만 해도 생산성 증가율이 연평균 5.8%에 달했지만 1990년대 들어 4.5%로 한풀 꺾인 데 이어 2000년대 이후 3%로 추락했다. “노동생산성이 약해진 원인이 다양하겠지만, 체력저하도 한몫했다”는 게 고 연구원의 주장. 몸이 아프다 보니 자기 일에 집중할 수도 없고, 몸이 안 좋으니 자기계발보다는 의료비 지출에 더 많은 돈을 쓰게 된다는 논리였다. 국민체력센터 선상규 원장 역시 “창의적 아이디어는 내 몸의 에너지원에서 나온다”는 말로 노동생산성과 체력의 관계를 설명했다.
“최대 산소섭취량을 볼까요? 우리가 음식을 먹고 이것으로 힘을 발휘하려면 영양소를 분해해 에너지를 낼 수 있도록 산소가 필요합니다. 얼마나 빠르게 산소를 섭취할 수 있느냐에 따라 두뇌 활동력도 달라집니다. 창의적 아이디어는 단순히 지식이나 지혜에서 나오는 게 아닙니다. 바로 체력에서 나옵니다.”
정부는 한때 10위권 진입을 눈앞에 둔 국가경쟁력 순위(세계경제포럼·WEF)가 2009년 19위까지 밀리자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한 갖가지 대책을 내놓고 있다. 올 6월에는 경제성장률 5%, 1인당 국민소득 4만 달러 달성을 기본 틀로 한 ‘비전 2020’을 발표할 예정. 하지만 바닥에 떨어진 우리 국민의 체력증진을 위한 장기 대책은 어디에도 없다. 전문가들은 “이런 정부의 장밋빛 시나리오도 체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공염불에 그치고 말 것”이라고 진단한다. 만약 정부가 ‘체력은 국력’이라는 명제를 참으로 받아들인다면 이런 장기적인 국가 비전을 세우기에 앞서 비전을 달성할 수 있도록 국민 개개인의 체력 증진 방안부터 찾아야 할 것이다. 개인이든 국가든, 어떤 경쟁도 체력이 뒷받침될 때 이길 수 있는 확률이 커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