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최민식은 새 영화 ‘꽃피는 봄이 오면’(이하 꽃봄)을 “쉬듯이 찍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영화 홍보와 인터뷰라는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호텔 방을 잡아놓고 3박4일 홍보를 위한 촬영과 인터뷰로 지독스럽게 강행군을 하는 중이었다.
고의는 아니나 ‘적군’이 된 기자들을 맞아 최민식은 담배와 커피, 그리고 그 유명한 ‘사람 좋음’을 무기로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꽃봄’의 선량한 트럼펫 주자 이현우에서 ‘올드보이’의 오대수로 다시 돌아간 건 아닐까 싶었다. 이왕 적이 된 김에 적대적인 질문부터 던져보기로 했다. ‘올드보이’로 칸에서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던 배우가 ‘쉬듯이’ 영화를 찍는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일 대충한다는 말은 절대 아니에요. ‘취화선’이나 ‘올드보이’나 우리 사는 세계와 완전히 다른 세상 얘기잖아요. 너무 자극적이고. 나도 정서적으로 참 힘들었어요. 그래서 이번엔 우리 마음에 맞는 영화를 하고 싶었어요. 배우로서 성실성, 그런 것에는 대충이 없어요. 언제나 최선을 다하지요.”
그의 말처럼 ‘꽃봄’은 참 선량한 영화다. 주인공 현우의 꿈은 오케스트라에서 트럼펫을 연주하는 것이지만, 현실은 음악엔 뜻이 없는 아줌마들을 가르쳐서 생계를 유지하는 학원강사다. 연인 연희가 떠날 때도 그는 잡지 못하고 강원도 탄광촌인 도계의 중학교 관악반 임시 교사직을 지원한다. 학교에서 ‘딴따라’ 취급을 받는 관악부 아이들의 모습에서 현우는 자신을 발견한다.
이 영화에는 사실 ‘극적인’ 요소가 별로 없다. 대회에서 감격적 우승을 하는 것도 아니고, 현우가 시골 약사와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는 것도 아니다.
‘겨울이 가고 봄이 오듯이’ 현우는 자신을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세월이 가면, 사람도 변한다. 그것이 자연의 법칙이다.
“아, 현우 사는 게 이 영화 만든 류장하 감독 얘기예요. 자기는 하고 싶은 예술이 있는데 제도권에선 먹히지 않고. 그래서 홀어머니랑 이런저런 서운한 소리 주고받는 거. 그러니 위장병 걸리는 거죠. 영화 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살죠.”
현우가 트럼페터인 만큼 최민식은 올 1월부터 ‘잡고’ 연습을 했다. 그 순간부터 ‘쉽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고 했다. ‘콩나물’도 못 읽는 그가 절대음감에 손가락 번호를 외워 직접 두 곡을 연주하는데, ‘느끼한 색소폰과 달리 담백하고 멜랑콜릭해서 잘 맞는다’는 자랑이 과장이 아니다. 찌릿찌릿 관객에게 울림이 전해진다.
류장하 감독 처지를 빌려 하는 이야기는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는 동국대 연극영화과를 졸업하고, 1998년 영화 ‘구로 아리랑’으로 데뷔했지만, 드라마 ‘서울의 달’을 통해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다. 그는 어느 드라마에서든 욕심낼 만한 캐릭터였다. 그러나 그때 ‘방송국 바우처나 받아먹고 사는’ 자신이 끔찍해졌고 한순간에 방송국 드라마 일을 접었다.
“한동안 PD들, 국장들에게서 전화가 왔죠. ‘야, 너 정말 안 해? 진짜야?’하기에 그냥 ‘죄송하다’는 말만 했어요. 그땐 대본 받아 이번 회에 내가 빠졌나 들어갔나-출연료를 결정-이것 먼저 보고, 드라마 나가면 시청률이 올랐느니 떨어졌느니 이야기하는 것이 싫었어요. 도대체 대사를 외우면서 내가 왜 이 대사를 외우고 있는지 모르겠더라고요.”
1월부터 트럼펫 연습 … 손가락 번호 외워 두 곡 연주
그는 좋은 배우가 되기 위해 늘 깨어 있으려 했던 20대를 생각했고, ‘고작 이 짓거리 하려고 청춘을 바쳤느냐’고 자문해보곤 미련 없이 안정된 탤런트 생활을 떠났다. 말도 안 되는 개런티를 받고 ‘넘버 3’에 출연했지만, 다행히 흥행과 비평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바로 이거야, 앞으로 이렇게 사는 거야 했어요. 결과는 알 수 없었지만 현장에 있는 게 그렇게 좋을 수 없었어요. 30대 중반의 가장이니, 이기적인 결정이긴 했지만 내가 편해야 가정도 편하다고 합리화했지요. 영화에서 써주지 않으면 중국집 하려고 했어요.”
최민식도 류장하 감독도 도대체 그놈의 예술이 뭔지 세상과 담을 쌓는데, ‘꽃봄’의 현우는 관악부 아이의 할머니 입원비를 마련하느라 나이트클럽에서 반짝이 옷을 입고 나팔을 분다. 너무 쉽게 현실과 ‘타협’하는 것 아닌가? 혹은 너무 쉬운 에피소드가 아닌가?
“예술가들은 원래 그래요. 사람이 우선이죠. 그건 타락도 아니고. 타락이란 건 돈을 벌려고 하거나 지위를 높이려고 예술을 이용하는 거죠.”
‘예술가’이기 때문에 10kg씩 살을 찌웠다가 빼는 것도 좀 쉬운지 물었다.
“어렵죠. 냉장고 문을 수십 번 열었다 닫았다 하고 6시 이후엔 굶는데, 눈이 뒤집힐 정도가 되면 두부 두 조각과 김치를 먹고 견뎌요. 술자리도 못 가고. 어렵지만 배우란 원하는 캐릭터를 몸으로 표현해야 하는 사람이니, 그다지 대단한 일도 아니에요.”
이런 배우를 ‘데리고’ 영화를 찍는 건 신인감독들에게 부담스러울 듯싶었다. 또 최민식은 시나리오 단계에서부터 감독과 함께 토론하는 스타일이고, 대본의 어떤 점이 문제인지 잘 파악하는 연기자로 꼽히며, 애드리브에도 뛰어나다. ‘꽃봄’을 보면 최민식 그 자체인 신이 몇 개 있다. 옛 친구 경수와 횟집에서 소주 마시는 장면 같은 것. 누가 봐도 낙오자인 30대 후반의 사내들이 소주 한 병씩 나눠 마시고 나름대로 깨달은 진리를 떠들어대는 것이다. 최민식은 “아무리 못 나가는 인생이라도 24시간 우울할 순 없는 거다. 상갓집 가서 월드컵 보며 상주와 만세 부르고 좋아하는 거, 그게 인생”이라고 말한다. 그와 함께 작업한 감독들이라면 ‘아차!’ 하는 순간들을 몇 번씩 겪었을 만하다.
최민식은 ‘넘버 3’의 송능한, ‘해피엔드’의 정지우, 그리고 ‘꽃봄’의 류감독처럼 데뷔 감독들과 작업하기도 했고, 스타일리스트 박찬욱 감독과 칸에 갔으며, 노장 임권택 감독의 ‘취화선’에 출연하기도 했다.
“짬밥 차이는 있죠. 말년 병장과 ‘신삥’의 차이는 현장 통솔력에서 분명히 나타나지만, 일단 하기로 하면 영화적 세상이 달라서 부대낀 적은 없어요. 작품의 색깔을 내기 위해 전문가들을 잘 활용할 줄 아는 사람을 좋아해요. 그들이 유능한 감독이죠.”
그와 이야기를 나눌수록, 인터뷰마다 지나칠 정도로 강조된 말처럼 인간적이어서 매력 있는 연기자라기보다 참 현명한 배우라는 인상을 받는다. 감독, 동료배우, 평론가들이 그와 이야기하기를 좋아하는 것도 그런 이유가 더 클 것 같다.
그가 유일하게 하기 싫어하는 이야기가 있는데, 바로 ‘집’안에서의 사생활에 관한 것이다. 그는 ‘칸’에서 검은 드레스를 입은 부인의 모습이 스포츠 신문 1면을 도배하자 기겁을 했다. 그에게 ‘찐한 연애 영화’ 찍자는 감독이 없는 건 이런 성향 때문이 아닐까.
“아휴, 난 배우들이 TV에 나와 집사람이 어떻고, 인테리어가 어떻고, 집구석에서 뭐 해먹고 사는지 시시콜콜 이야기하는 게 제일 싫어요. 신비주의 ‘전략’이 아니라 7000원씩 내고 극장에 오는 사람들에 대한 예의죠. 영화의 캐릭터에 맞춰 완전히 변화한 모습을 보여주는 게 배우의 일이니까요. 영화에 맞춰 변신하고, 또 영화에 투자한 사람들을 위해 배우가 열심히 작품 설명하는 것, 그게 배우가 할 일 아닌가요.”
부인 스포츠지 등장에 기겁… 인간적 매력 갖춘 현명한 배우
잠깐이었지만, 그는 칸에서 타란티노와 폴란스키와 마이클 무어와 ‘화씨9/11’과 ‘올드보이’를 똑같이 놓고 비교, 논쟁한 이야기를 할 때 꽤 흥분했다. 국제영화제에서 수상한다는 것은 바로 그런 맛이더라고 덧붙였다.
“학교에서 강의 때 배웠던 바로 그 폴란스키 감독이 나더러 ‘나도 애니콜 써요’ 하더라니까요.”
영화 제작사에서 들으면 섭섭할지 모르지만, ‘꽃봄’에서 가장 인상 깊은 장면 가운데 하나는 최민식이 양은 냄비에 라면을 끓여 관악부 아이와 후후 불며 나눠 먹는 장면이다. 그것도 여러 번 나온다. 시사회 끝나고 라면집으로 달려간 사람들도 있었다. 라면광고도 찍었으니 오죽했을까만, 그는 워낙 음식을 맛있게 먹는다고 했다. 그건 연기가 아니라 음식 만든 이에 대한 ‘사내자식’의 예의로 어머니에게서 배웠다 했다.
아마 ‘꽃봄’을 본 관객들은 쌀쌀해진 가을 겨울 어느 날 라면을 먹을 때마다 ‘꽃봄’과 그를 떠올리게 될 것이다. 그건 말야, 연기가 아니라 진심이더라, 우물우물 라면을 넘기면서 ‘꽃봄’의 최민식을 그리워하게 될 것이다.
고의는 아니나 ‘적군’이 된 기자들을 맞아 최민식은 담배와 커피, 그리고 그 유명한 ‘사람 좋음’을 무기로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꽃봄’의 선량한 트럼펫 주자 이현우에서 ‘올드보이’의 오대수로 다시 돌아간 건 아닐까 싶었다. 이왕 적이 된 김에 적대적인 질문부터 던져보기로 했다. ‘올드보이’로 칸에서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던 배우가 ‘쉬듯이’ 영화를 찍는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일 대충한다는 말은 절대 아니에요. ‘취화선’이나 ‘올드보이’나 우리 사는 세계와 완전히 다른 세상 얘기잖아요. 너무 자극적이고. 나도 정서적으로 참 힘들었어요. 그래서 이번엔 우리 마음에 맞는 영화를 하고 싶었어요. 배우로서 성실성, 그런 것에는 대충이 없어요. 언제나 최선을 다하지요.”
그의 말처럼 ‘꽃봄’은 참 선량한 영화다. 주인공 현우의 꿈은 오케스트라에서 트럼펫을 연주하는 것이지만, 현실은 음악엔 뜻이 없는 아줌마들을 가르쳐서 생계를 유지하는 학원강사다. 연인 연희가 떠날 때도 그는 잡지 못하고 강원도 탄광촌인 도계의 중학교 관악반 임시 교사직을 지원한다. 학교에서 ‘딴따라’ 취급을 받는 관악부 아이들의 모습에서 현우는 자신을 발견한다.
이 영화에는 사실 ‘극적인’ 요소가 별로 없다. 대회에서 감격적 우승을 하는 것도 아니고, 현우가 시골 약사와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는 것도 아니다.
‘겨울이 가고 봄이 오듯이’ 현우는 자신을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세월이 가면, 사람도 변한다. 그것이 자연의 법칙이다.
“아, 현우 사는 게 이 영화 만든 류장하 감독 얘기예요. 자기는 하고 싶은 예술이 있는데 제도권에선 먹히지 않고. 그래서 홀어머니랑 이런저런 서운한 소리 주고받는 거. 그러니 위장병 걸리는 거죠. 영화 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살죠.”
현우가 트럼페터인 만큼 최민식은 올 1월부터 ‘잡고’ 연습을 했다. 그 순간부터 ‘쉽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고 했다. ‘콩나물’도 못 읽는 그가 절대음감에 손가락 번호를 외워 직접 두 곡을 연주하는데, ‘느끼한 색소폰과 달리 담백하고 멜랑콜릭해서 잘 맞는다’는 자랑이 과장이 아니다. 찌릿찌릿 관객에게 울림이 전해진다.
류장하 감독 처지를 빌려 하는 이야기는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는 동국대 연극영화과를 졸업하고, 1998년 영화 ‘구로 아리랑’으로 데뷔했지만, 드라마 ‘서울의 달’을 통해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다. 그는 어느 드라마에서든 욕심낼 만한 캐릭터였다. 그러나 그때 ‘방송국 바우처나 받아먹고 사는’ 자신이 끔찍해졌고 한순간에 방송국 드라마 일을 접었다.
“한동안 PD들, 국장들에게서 전화가 왔죠. ‘야, 너 정말 안 해? 진짜야?’하기에 그냥 ‘죄송하다’는 말만 했어요. 그땐 대본 받아 이번 회에 내가 빠졌나 들어갔나-출연료를 결정-이것 먼저 보고, 드라마 나가면 시청률이 올랐느니 떨어졌느니 이야기하는 것이 싫었어요. 도대체 대사를 외우면서 내가 왜 이 대사를 외우고 있는지 모르겠더라고요.”
1월부터 트럼펫 연습 … 손가락 번호 외워 두 곡 연주
그는 좋은 배우가 되기 위해 늘 깨어 있으려 했던 20대를 생각했고, ‘고작 이 짓거리 하려고 청춘을 바쳤느냐’고 자문해보곤 미련 없이 안정된 탤런트 생활을 떠났다. 말도 안 되는 개런티를 받고 ‘넘버 3’에 출연했지만, 다행히 흥행과 비평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바로 이거야, 앞으로 이렇게 사는 거야 했어요. 결과는 알 수 없었지만 현장에 있는 게 그렇게 좋을 수 없었어요. 30대 중반의 가장이니, 이기적인 결정이긴 했지만 내가 편해야 가정도 편하다고 합리화했지요. 영화에서 써주지 않으면 중국집 하려고 했어요.”
최민식도 류장하 감독도 도대체 그놈의 예술이 뭔지 세상과 담을 쌓는데, ‘꽃봄’의 현우는 관악부 아이의 할머니 입원비를 마련하느라 나이트클럽에서 반짝이 옷을 입고 나팔을 분다. 너무 쉽게 현실과 ‘타협’하는 것 아닌가? 혹은 너무 쉬운 에피소드가 아닌가?
“예술가들은 원래 그래요. 사람이 우선이죠. 그건 타락도 아니고. 타락이란 건 돈을 벌려고 하거나 지위를 높이려고 예술을 이용하는 거죠.”
‘예술가’이기 때문에 10kg씩 살을 찌웠다가 빼는 것도 좀 쉬운지 물었다.
“어렵죠. 냉장고 문을 수십 번 열었다 닫았다 하고 6시 이후엔 굶는데, 눈이 뒤집힐 정도가 되면 두부 두 조각과 김치를 먹고 견뎌요. 술자리도 못 가고. 어렵지만 배우란 원하는 캐릭터를 몸으로 표현해야 하는 사람이니, 그다지 대단한 일도 아니에요.”
이런 배우를 ‘데리고’ 영화를 찍는 건 신인감독들에게 부담스러울 듯싶었다. 또 최민식은 시나리오 단계에서부터 감독과 함께 토론하는 스타일이고, 대본의 어떤 점이 문제인지 잘 파악하는 연기자로 꼽히며, 애드리브에도 뛰어나다. ‘꽃봄’을 보면 최민식 그 자체인 신이 몇 개 있다. 옛 친구 경수와 횟집에서 소주 마시는 장면 같은 것. 누가 봐도 낙오자인 30대 후반의 사내들이 소주 한 병씩 나눠 마시고 나름대로 깨달은 진리를 떠들어대는 것이다. 최민식은 “아무리 못 나가는 인생이라도 24시간 우울할 순 없는 거다. 상갓집 가서 월드컵 보며 상주와 만세 부르고 좋아하는 거, 그게 인생”이라고 말한다. 그와 함께 작업한 감독들이라면 ‘아차!’ 하는 순간들을 몇 번씩 겪었을 만하다.
최민식은 ‘넘버 3’의 송능한, ‘해피엔드’의 정지우, 그리고 ‘꽃봄’의 류감독처럼 데뷔 감독들과 작업하기도 했고, 스타일리스트 박찬욱 감독과 칸에 갔으며, 노장 임권택 감독의 ‘취화선’에 출연하기도 했다.
“짬밥 차이는 있죠. 말년 병장과 ‘신삥’의 차이는 현장 통솔력에서 분명히 나타나지만, 일단 하기로 하면 영화적 세상이 달라서 부대낀 적은 없어요. 작품의 색깔을 내기 위해 전문가들을 잘 활용할 줄 아는 사람을 좋아해요. 그들이 유능한 감독이죠.”
그와 이야기를 나눌수록, 인터뷰마다 지나칠 정도로 강조된 말처럼 인간적이어서 매력 있는 연기자라기보다 참 현명한 배우라는 인상을 받는다. 감독, 동료배우, 평론가들이 그와 이야기하기를 좋아하는 것도 그런 이유가 더 클 것 같다.
그가 유일하게 하기 싫어하는 이야기가 있는데, 바로 ‘집’안에서의 사생활에 관한 것이다. 그는 ‘칸’에서 검은 드레스를 입은 부인의 모습이 스포츠 신문 1면을 도배하자 기겁을 했다. 그에게 ‘찐한 연애 영화’ 찍자는 감독이 없는 건 이런 성향 때문이 아닐까.
“아휴, 난 배우들이 TV에 나와 집사람이 어떻고, 인테리어가 어떻고, 집구석에서 뭐 해먹고 사는지 시시콜콜 이야기하는 게 제일 싫어요. 신비주의 ‘전략’이 아니라 7000원씩 내고 극장에 오는 사람들에 대한 예의죠. 영화의 캐릭터에 맞춰 완전히 변화한 모습을 보여주는 게 배우의 일이니까요. 영화에 맞춰 변신하고, 또 영화에 투자한 사람들을 위해 배우가 열심히 작품 설명하는 것, 그게 배우가 할 일 아닌가요.”
부인 스포츠지 등장에 기겁… 인간적 매력 갖춘 현명한 배우
잠깐이었지만, 그는 칸에서 타란티노와 폴란스키와 마이클 무어와 ‘화씨9/11’과 ‘올드보이’를 똑같이 놓고 비교, 논쟁한 이야기를 할 때 꽤 흥분했다. 국제영화제에서 수상한다는 것은 바로 그런 맛이더라고 덧붙였다.
“학교에서 강의 때 배웠던 바로 그 폴란스키 감독이 나더러 ‘나도 애니콜 써요’ 하더라니까요.”
영화 제작사에서 들으면 섭섭할지 모르지만, ‘꽃봄’에서 가장 인상 깊은 장면 가운데 하나는 최민식이 양은 냄비에 라면을 끓여 관악부 아이와 후후 불며 나눠 먹는 장면이다. 그것도 여러 번 나온다. 시사회 끝나고 라면집으로 달려간 사람들도 있었다. 라면광고도 찍었으니 오죽했을까만, 그는 워낙 음식을 맛있게 먹는다고 했다. 그건 연기가 아니라 음식 만든 이에 대한 ‘사내자식’의 예의로 어머니에게서 배웠다 했다.
아마 ‘꽃봄’을 본 관객들은 쌀쌀해진 가을 겨울 어느 날 라면을 먹을 때마다 ‘꽃봄’과 그를 떠올리게 될 것이다. 그건 말야, 연기가 아니라 진심이더라, 우물우물 라면을 넘기면서 ‘꽃봄’의 최민식을 그리워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