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드맥스 : 분노의 도로’는 ‘매드맥스’를 만들었던 조지 밀러 감독의 복귀작이다. ‘매드맥스’는 1979년 겨우 40만 호주달러로 만든 저예산 영화였다. 좀 더 실감나게 설명하면, 당시 주연 멜 깁슨의 개런티가 고작 21호주달러였다.
신인 감독이 기계와 속도에 대한 자신의 광적인 집착을 풀어낸 영화 ‘매드맥스’는 당시 낯선 에너지의 출현으로 평가받았다. 신인이던 멜 깁슨은 이 영화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고, ‘매드맥스’는 3편까지 이어지며 열광적 마니아를 만들어냈다. 이 영화의 공간적 배경은 한 차례 재앙이 지나간 멸망 이후 지구. 포스트 아포칼립스, 디스토피아 액션의 새로운 이미지가 황량한 마초성으로 충성도 높은 팬덤을 이끈 것이다.
그러나 밀러 감독은 ‘매드맥스’ 시리즈 세 편을 흥행시킨 뒤 돌연 사색적 감독으로 돌아서 ‘로렌조 오일’ 같은 감동적 휴먼 드라마를 연출한다. ‘매드맥스 : 분노의 도로’는 밀러 감독이 그동안 아껴왔던 강박적 애착을 한꺼번에 뿜어낸 작품이라 볼 수 있다. 영화 배경은 역시 멸망 이후다. 그런데 이 시공간적 배경을 친절하게 설명하지 않고, 영화는 시작과 동시에 강렬한 이미지로 관객을 밀어붙인다. 밀러 감독이 새롭게 기획한 디스토피아 세계는 말로 설명할 여지나 여유도 없는 삭막한 공간으로 제시된다.
핵전쟁 이후 황폐화된 지구에는 식량이 없다. 심지어 물도 없고, 기름도 부족하다. 원초적 자원을 가진 자가 권력자가 될 수밖에 없다. 이 상황에서 병든 독재자는 물을 갖고 권력을 지킨다. 그의 권력은 폭력적이다. 흥미로운 것은 그가 지배력을 높이기 위해 일종의 사이비 종교의 제사장 같은 구실을 한다는 점이다.
이처럼 어두운 정복지를 떠나 유토피아를 향해 떠나는 여전사, 영화 ‘매드맥스 : 분노의 도로’는 바로 그 사람의 여정으로 요약된다. 주인공이자 영화 제목에 등장하는 맥스는 이번 편에서 여전사를 도와주는 조력자 구실을 한다. 그러니 시선을 끄는 것도 여전사 역을 맡은 샬리즈 시어런이다. 시어런은 평화롭고 아름다운 세상을 개척하는 강력한 영적 지도자로 스크린에 군림한다. 그의 호소력 있는 연기력은 영화의 품격을 높이고 관객의 공감을 이끈다. 시거니 위버가 ‘에일리언’ 시리즈에서 보여준 여전사 이미지 이상의 설득력을 발휘한다.
또 하나 눈여겨볼 것은 자못 종교적이면서도 집단적이며 강렬한 이 영화의 이미지들이다. 폐품과 다를 바 없는 자동차들을 재조립해 탄생한 영화 속 자동차들은 컴퓨터그래픽이 보여줄 수 없는 직관적 매력을 선사한다. 블루 스크린이 아닌 실제 사막을 달리는 아날로그 액션이 주는 쾌감 역시 마찬가지다. 강렬한 기계음과 추격의 긴장감이 체감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1945년생인 밀러 감독은 올해 우리 나이로 일흔이 넘었다. 그러나 영화 전반에 넘치는 에너지를 보면 물리적 나이를 떠올리는 게 무의미한 듯하다. 진짜 거장은 이렇게 자신을 경신하며 현역으로 남는다는 것, 그 자체로 거장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케 하는 작품이다. 말로 설명하기 힘든 이미지의 폭풍이 관람 내내 지속되는 경험, 자못 오랜만이다.
신인 감독이 기계와 속도에 대한 자신의 광적인 집착을 풀어낸 영화 ‘매드맥스’는 당시 낯선 에너지의 출현으로 평가받았다. 신인이던 멜 깁슨은 이 영화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고, ‘매드맥스’는 3편까지 이어지며 열광적 마니아를 만들어냈다. 이 영화의 공간적 배경은 한 차례 재앙이 지나간 멸망 이후 지구. 포스트 아포칼립스, 디스토피아 액션의 새로운 이미지가 황량한 마초성으로 충성도 높은 팬덤을 이끈 것이다.
그러나 밀러 감독은 ‘매드맥스’ 시리즈 세 편을 흥행시킨 뒤 돌연 사색적 감독으로 돌아서 ‘로렌조 오일’ 같은 감동적 휴먼 드라마를 연출한다. ‘매드맥스 : 분노의 도로’는 밀러 감독이 그동안 아껴왔던 강박적 애착을 한꺼번에 뿜어낸 작품이라 볼 수 있다. 영화 배경은 역시 멸망 이후다. 그런데 이 시공간적 배경을 친절하게 설명하지 않고, 영화는 시작과 동시에 강렬한 이미지로 관객을 밀어붙인다. 밀러 감독이 새롭게 기획한 디스토피아 세계는 말로 설명할 여지나 여유도 없는 삭막한 공간으로 제시된다.
핵전쟁 이후 황폐화된 지구에는 식량이 없다. 심지어 물도 없고, 기름도 부족하다. 원초적 자원을 가진 자가 권력자가 될 수밖에 없다. 이 상황에서 병든 독재자는 물을 갖고 권력을 지킨다. 그의 권력은 폭력적이다. 흥미로운 것은 그가 지배력을 높이기 위해 일종의 사이비 종교의 제사장 같은 구실을 한다는 점이다.
이처럼 어두운 정복지를 떠나 유토피아를 향해 떠나는 여전사, 영화 ‘매드맥스 : 분노의 도로’는 바로 그 사람의 여정으로 요약된다. 주인공이자 영화 제목에 등장하는 맥스는 이번 편에서 여전사를 도와주는 조력자 구실을 한다. 그러니 시선을 끄는 것도 여전사 역을 맡은 샬리즈 시어런이다. 시어런은 평화롭고 아름다운 세상을 개척하는 강력한 영적 지도자로 스크린에 군림한다. 그의 호소력 있는 연기력은 영화의 품격을 높이고 관객의 공감을 이끈다. 시거니 위버가 ‘에일리언’ 시리즈에서 보여준 여전사 이미지 이상의 설득력을 발휘한다.
또 하나 눈여겨볼 것은 자못 종교적이면서도 집단적이며 강렬한 이 영화의 이미지들이다. 폐품과 다를 바 없는 자동차들을 재조립해 탄생한 영화 속 자동차들은 컴퓨터그래픽이 보여줄 수 없는 직관적 매력을 선사한다. 블루 스크린이 아닌 실제 사막을 달리는 아날로그 액션이 주는 쾌감 역시 마찬가지다. 강렬한 기계음과 추격의 긴장감이 체감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1945년생인 밀러 감독은 올해 우리 나이로 일흔이 넘었다. 그러나 영화 전반에 넘치는 에너지를 보면 물리적 나이를 떠올리는 게 무의미한 듯하다. 진짜 거장은 이렇게 자신을 경신하며 현역으로 남는다는 것, 그 자체로 거장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케 하는 작품이다. 말로 설명하기 힘든 이미지의 폭풍이 관람 내내 지속되는 경험, 자못 오랜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