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 향을 느끼는 모습.
와인에 대한 책이나 기사를 읽다 보면 이런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와인에 관심이 없는 사람은 고개를 갸우뚱하기 일쑤다. 와인을 만들 때 과일이나 초콜릿, 가죽을 넣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와인에서 그런 향이 난다는 걸까. 오늘은 이 이해할 수 없는 의문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자.
와인 향은 제조 과정 전반에 걸쳐 만들어진다. 발효 과정에서만 200개 넘는 아로마 화합물이 만들어지니 와인에는 셀 수 없이 다양한 향이 존재하는 셈이다. 하지만 인간이 와인에서 느낄 수 있는 향은 매우 제한적이다. 전문가는 연습과 경험을 토대로 섬세한 향도 집어내지만 초보자는 향을 구분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그렇다고 포기할 일은 아니다. 음악도 자주 듣다 보면 귀가 열리듯 와인도 자주 접할수록 점점 더 많은 향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와인 향은 1차, 2차, 3차 아로마로 나뉜다. 1차 아로마는 포도가 품종별로 내뿜는 고유한 향으로 꽃, 과일, 허브 같은 향이 주를 이룬다. 예를 들어 카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 품종의 대표 향은 블랙커런트(blackcurrant), 샤르도네(Chardonnay)는 레몬이다. 하지만 같은 품종의 포도라 해도 추운 지방에서는 시원하고 날카로운 향을, 더운 지방에서는 농익고 달큼한 향을 더 많이 만들어낸다. 같은 샤르도네 와인이라도 프랑스 샤블리(Chablis)산에는 라임과 풋사과향이 많고 호주산에는 멜론, 파인애플 같은 열대과일향이 많은 게 바로 그 때문이다.
2차 아로마는 와인을 발효하고 오크통에서 숙성할 때 생긴다. 포도의 당이 알코올로 변하는 일반 발효가 끝나면 곧바로 젖산 발효가 시작되는데, 이는 와인의 말산이 젖산으로 바뀌면서 와인이 부드러워지는 과정이다. 화이트 와인에서 크림이나 버터 같은 향이 느껴진다면 그 와인은 젖산 발효를 거친 와인이다. 하지만 소비뇽 블랑(Sauvignon Blanc)이나 리슬링(Riesling)처럼 상큼한 향을 강조하는 와인은 일부러 젖산 발효를 피하는 경우도 많다.
와인에는 포도 품종 자체, 발효, 숙성 등 와인 제조 과정 전반에 걸쳐 만들어진 향이 농축돼 있다.
3차 아로마는 긴 시간 병 숙성을 거치면서 생긴다. 레드 와인에서는 가죽, 담배, 버섯, 화이트 와인에서는 꿀, 시리얼, 휘발유 같은 향이 만들어진다. 우수한 와인일수록 1차, 2차, 3차 아로마가 균형 있게 발달해 복합적인 향미를 자랑한다.
와인 향은 두 번에 걸쳐 맡는 것이 좋다. 먼저 와인을 따른 뒤 잔을 돌리기 전 향을 맡으면 그 와인의 가장 풍부한 향을 느낄 수 있다. 그다음 잔을 돌려 다시 향을 맡으면 좀 더 세밀한 향이 느껴진다. 와인 테이스팅은 혼자 하는 것보다 여럿이 모여 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품종이 다르거나 지역이 다른 와인을 놓고 비교 테이스팅을 하면 향을 더 쉽게 구분하고 익힐 수 있기 때문이다. 각자 한 병씩 사 오면 비용 부담이 줄 뿐 아니라 향에 대해 토론도 하는 즐거운 시간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