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 앞 클럽.
이 같은 양적, 질적 성장이 가능했던 이유는 창작력과 함께 뮤지션을 중심으로 한 시스템 및 노하우를 상당히 축적했기 때문이다. 누구나 처음에는 음악을 하고 싶어 한다. 그러다 직접 음악을 하는 것보다, 레코딩 엔지니어나 레이블 운영 같은 지원 업무가 자신의 적성과 더 맞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본격적으로 노하우를 쌓는다. 제대로 된 교육기관 없이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야 하는 처지에서 좌절과 시행착오는 통과의례다. 그런 과정을 거쳐 쌓은 노하우가 뮤지션들의 음악에 생명력 있는 사운드를 안긴다. 힘들게 세상에 나온 음반을 대중에게 알린다. 한때 팬이었던 소년 소녀들이 어엿한 프로페셔널이 돼서 사진과 디자인을 지원해 음악을 그럴싸하게 포장한다. 그 결과 2011년은 축적된 시스템과 창작력이 시너지 효과를 내고 마침내 폭발한 시점이라고 규정해도 손색이 없다.
그렇다고 장밋빛 미래를 꿈꾸기에는 근심이 앞선다. 인프라가 파괴되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한국 언더그라운드 힙합의 대부인 ‘가리온’을 만나 인터뷰했다. 힙합의 신이라 부르는 그들의 활동이 예전 같지 않은 이유를 묻자,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공연할 수 있는 장소가 없다.” 현장이 사라지고 인터넷으로 음악을 생산, 유통하면서 날것의 에너지와 깊이까지 사라져버렸다는 것이다. 1990년대 후반 탄생한 한국 언더그라운드 힙합은 전문 공연장을 통해 역량을 키우고 연대의식을 축적했다. 그러나 힙합 공연의 소비자가 하나 둘 파티로 흡수되면서 어느 클럽에서도 힙합 뮤지션에게 무대를 내주지 않았다. 흥행이 안 된다는 이유에서다. 결국 파티가 아니면 힙합 뮤지션이 설 자리가 없어졌다.
다른 음악도 마찬가지다. 한국에서 음악 창작자를 수용할 수 있는 지역은 홍대가 유일하다. 1990년대 중반 미대생들의 작업실 문화에서 탄생한 홍대 독립 예술 지형이 폭발한 건 음악과 결합하면서부터다. 음악을 하고자 하는 청년이 몰려들어 때로는 경쟁하고, 때로는 작당모의하며 신을 키워왔다. 오늘의 관객이 내일의 뮤지션이 되고, 마케팅이나 홍보보다는 음악과 공연을 통한 입소문으로 이름을 알렸다. 홍대 앞이 자생적 지역 문화로 탈바꿈한 것이다.
그러나 2002년 한일월드컵을 기점으로 유동인구(관광객)가 폭발적으로 유입되면서 홍대 앞도 급격히 변질됐다. 월세가 치솟고, 작고 개성 있는 카페는 기업형 카페에 자리를 내줬다. 무명의 신인이 설 수 있는 무대가 사라진 것이다. 홍대 앞을 찾는 이들 역시 새로운 예술을 만날 수 있는 공연장보다 맛집과 향락의 댄스 클럽으로 몰린다. 필자를 포함해 홍대 앞이 자생적 지역 문화로 탄생하는 것을 지켜본 이들에게 지금 가볼 만한 홍대 앞 가게를 꼽아보라 한다면, 5개가 채 안 된다. 뮤지션들이 망원동이나 연남동 등 주변부로 내몰리고 있다.
더 큰 문제는 라이브 클럽의 위기다. 홍대 앞에는 20여 개의 라이브 클럽이 있지만, 사실상 관객을 제대로 유치할 수 있는 곳은 10개가 되지 않는다. 그나마도 대관이 아니면 월세를 감당하기 어려운 처지다. 손님이 없어서가 아니라 월세가 턱없이 비싸서다(현재 홍대 앞 부동산 시세는 웬만한 강남 지역 이상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 인프라가 파괴된다. 생태계에 비유하자면 척박한 황무지에 풍요를 안겼던 초목과 초식동물이 육식동물, 아니 인간에 의해 내몰리는 것이다. 그래서다. 콘텐츠 황금기인 지금이 백조가 마지막 노래를 하는 때가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드는 이유는. 제아무리 풍요로운 생태계라도 인간이 짓밟기 시작하면 단숨에 사라진다는 걸 우리는 이미 잘 알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