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학원총엽합회는 5월 31일 서울 국회의사당 앞에서 학원법 개정안에 반대하는 집회를 열었다.
2월 15일 교육과학기술부(이하 교과부)는 2010년 사교육비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국가 주도하에 전국 1012개 초중고교의 학부모 4만4000여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내용이었다. 2010년 전체 가정의 사교육비는 총 20조8718억 원으로, 전년 21조6259억 원보다 약 1조 원이 줄어든 것. 발표 당시 교과부는 2007년 국가 차원의 사교육비 실태조사를 실시한 이래, 사교육비가 처음으로 줄었다고 강조했다.
이를 두고 언론과 학부모는 ‘숫자놀음’이라는 반응이다. 일례로 실태조사 항목 가운데 방과후학교의 경우, 수강료 지출이 학생 1인당 평균 1000원 늘어났는데도 교과부는 학교에서 이뤄지는 활동이라며 공교육 범주에 포함시켰다.
학원의 이중 장부는 기본 중 기본
교과부의 주장에는 무엇보다 치명적인 부분이 있다. 학원 대부분은 온갖 편법을 동원해 공식적인 수입을 줄인다는 점이다. 교과부가 실시한 이번 조사는 연 2회 지출분, 즉 3~5월과 7~9월분에 국한하지만 학원은 정부 감시망을 피해 편법으로 수강료를 올린다. 예를 들어 대입논술학원은 11월 대학수학능력평가(이하 수능) 직전이나 직후에 ‘수시 대비 파이널 특강’이라는 명목으로 입시생에게 거액의 수강료를 요구한다.
실제 서울 A학원에 다녔던 정모(21) 양은 “2년 전까지만 해도 수능 직후부터 수시 특기자 전형일까지 15일 동안 하는 논·구술 수강료가 250만~270만 원에 달했다”고 전했다. 학원 관계자는 “작년, 재작년 수강료는 모른다. 공개할 수 없다”는 말만 반복했다. 이 학원의 2011년 7월 기준 논술 수강료는 4회당 35만 원, 구술은 1회당 10만 원이다. 일반적으로 강의를 8회로 짜는 점을 고려한다면 논·구술의 수강료는 150만 원 선이다. 결국 올해도 11월 수능이 끝나면 이른바 ‘물수능’을 걱정하는 학부모를 대상으로 학원들이 얼마를 요구할지는 학원이나 학부모의 양심선언이 없는 한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상황이다.
문제는 이런 초단타 고액과외를 하는 학원은 교과부의 조사기간을 피해 비싼 수강료를 받기 때문에 사교육비 실태조사에서 누락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사교육비 실태조사 자료를 작성한 통계청 담당자는 “그러한 추이를 고의로 제외한 것은 아니다. 방법상 사교육비 지출 통계치를 내기 위해 ‘일반적인’ 학생과 학부모를 대상으로 설문을 실시했다”고 해명했다.
더욱이 학원이 교육청에 신고한 수강료와 실제 학부모에게 징수하는 수강료가 달라 정부 통계가 맞을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2008학년도에는 내신 등급제를 상대평가로 실시하면서 입시생과 학부모는 대학별 고사에 마지막 희망을 걸 수밖에 없었다. 학생들은 서울 강남구 대치동 유명 B논술학원으로 몰렸다. 2007년 B학원 수강료는 1회 13만 원으로, 8회 완성반(104만 원)에 등록하면서 현금으로 결제할 경우 4만 원을 할인받아 100만 원을 냈다. 학원장 명의의 통장으로 입금하거나 현금으로 받는 방법으로 수입을 축소해 신고했던 것. 대치동 대형 논술 학원에선 세무조사에 대비해 가짜 출석부를 만들어놓는 경우도 빈번하다. 급작스러운 세무조사에 대한 대응방안이다.
이런 부작용을 막기 위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6월 28일 교과부가 제출한 학원법 개정안을 통과시켰고, 이 안은 곧바로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됐다. 10월부터 시행되는 개정안에 따르면, 교습비 영수증을 발급 하지 않거나 강의료는 그대로 두고 기타비용을 올려받아 편법으로 수강료를 올리는 불법 교습 행위를 하다 적발되면 최고 300만 원의 과태료를 내야 하며, 일명 ‘학파라치제’로 불리는 불법 사교육 신고센터와 신고포상금제도 강화했다.
하지만 ‘주간동아’ 확인 결과, 카드결제 거부나 현금할인 등 세금 신고액을 줄이기 위한 학원들의 수강료 변칙처리 수법은 여전히 성행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학부모 최모(51) 씨는 얼마 전 대치동 소재 C토플학원에서 현금결제를 권유받았다. 카드로 결제하면 80만 원이지만, 현금으로 결제하면 74만 원까지 할인해준다는 것이었다. 특히 학원법은 눈에 쉽게 보이는 영세 보습학원만 단속하려 들지 외국어 특기자, 재외국민 전형에 대비하는 학원의 수강료 인상은 저지하지 않는다. 100만 원대에 달하는 금액을 청구하는 특기자 전문 어학원은 꾸준히 수강료를 올리면서도, 현금결제 를 유도해 세금 신고액을 줄이고 있다.
2009년 6월 26일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 주최로 ‘사교육과 전쟁’ 토론회가 열렸다.
학원 강사가 ‘보따리 장사’를 하는 보습학원의 경우, 수강료는 카드결제가 가능하지만 교재비는 현금으로 받는 실정이다. 각 학원은 그 이유로 “교재를 만들어 오는 강사가 세금을 탈루하기 위해 현금만 받으려 하기 때문”이라고 변명한다. 교재비도 학원비에 포함되기 때문에 결론적으로 학원이 공개적으로 카드결제를 거부하는 셈. 실제 교재비를 현금으로만 받는 서울 D학원은 “교재비는 E 강사가 바로 가져가서 현금으로 받을 수밖에 없다. 자세한 교재비는 강사의 조교에게 문의하라”고 말했다.
학원과 강사가 수강료 외에 교재비를 현금으로 챙기는 행위는 개정된 학원법 중 ‘교재비, 모의고사비 등 모든 경비는 학원비에 포함해 학부모에게 청구해야 한다’고 못 박고 있는 규제조항을 위반한 것이다.
정부와 대학별 입학정책 변화를 수강료 인상의 기회로 삼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서울의 프랜차이즈 F어학원의 경우, 올여름부터 수강정책이 바뀌었다며 지금껏 선택수강이 가능했던 영역별 특강을 의무화했다. 정규반 시간에 더해 수업시간을 일주일에 70분 늘리는 대신, 수강료를 15만5000원을 더 올린 것. 이 어학원을 꾸준히 다닌 학생 처지에선 수업시간이 많다거나 교습비가 비싸졌다는 이유로 학원을 그만둘 수도 없다. 정규반을 수강하지 않으면 ‘레벨 업’에 불리한 까닭이다.
수능 문제에 EBS 방송 교재를 포함한다는 정부 발표에 일부 보습학원이 한 달에 20만 원짜리 EBS 문학특강을 개설한 것도 그 범주에 속한다. 대학별로 입학사정관제도를 도입한다고 하자 일부 보습학원은 ‘입학사정관제 대비 학부모 자기소개서 쓰기 강좌’를 개설해 수강료를 챙긴다. 대치동의 한 보습학원 관계자는 “대학별 입학정책에 따라, 교과부 입시제도에 따라 학원이 살아남기 위한 방법일 뿐이다. 사교육 시장에서 틈새를 노리려면 매번 새로운 특강을 개설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이처럼 학원들은 각종 편법을 동원해 정부가 만든 규제를 비웃고 있다. 개정 학원법이 ‘허울 좋은 법률’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세금 신고명세서를 교묘히 조작하면서 학생과 학부모를 우롱하는 세태, 과연 교과부는 모르고 있는 것일까. 내년에도 교과부가 원인과 결과가 뒤바뀐 사교육비 통계조사 결과를 내놓을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