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무이파가 서해상을 지나던 8월 8일 오후 2시. 서울 잠원지구 한강 위에 떠 있는 선상 레스토랑 프라디아에서 프로젝트 그룹 ‘더 컬러스’를 만났다. 태풍 영향 탓에 바람이 거세게 불고 비도 간간이 흩뿌렸다. ‘비오는 날의 수채화’를 부른 가수가 참여한 더 컬러스를 만난 이날 서울 풍경은 잿빛 가득한 ‘비오는 날의 수묵화’였다.
‘따로 또 같이’를 표방한 프로젝트 그룹 더 컬러스는 4월에 결성했다. 강인원, 권인하, 이치현, 민혜경 등 1980~90년대에 활발히 활동하던 4명으로 시작했다. 그러나 7월 17일 첫 공연 이후 남자 가수 3명은 고정 멤버로 하고, 여자 가수 1명은 그때그때 게스트로 초청하는 방식으로 바꾸었다. 9월 24일 서울 광장동 악스코리아(AX-Korea)에서 가질 서울콘서트에는 김완선이 합류한다. 서울 공연 이후 더 컬러스는 10월 8일 부산, 10월 23일 대구, 11월 12일 제주 등 전국을 돌며 콘서트를 연다. 무대에 함께 오를 여자 가수는 그때그때 달라진다.
▼ 7월에 첫 공연을 했는데, 호흡을 맞춘 소감이 어떤가.
이치현(이하 이) “관객 동원에는 성공했는데….”
강인원(이하 강) “부족한 점을 느낀 공연이었다.”
권인하(이하 권) “짧은 시간에 하나의 컬러를 만들어내는 데는 무리가 있더라.”
개성 강한 4명의 가수가 완벽한 하모니를 만들기에는 준비 기간이 부족했던 탓일까. 멤버에겐 첫 공연이 썩 만족스럽지 못했나 보다.
이 “서울 공연에서는 3명의 화음을 들려 드리고, 각자의 개성을 살린 무대도 선보이고. 또 관객과 함께할 수 있는 토크쇼도 곁들여서….”
강 “다양한 맛을 볼 수 있도록 한데 어우러진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첫 공연에서 얻은 교훈이 더 컬러스에겐 보약이 됐다. 어떻게 하면 관객과 접점을 찾아갈지 멤버 각자가 치열하게 고민한 흔적을 인터뷰 내내 찾을 수 있었다.
가장 좋은 재료들을 넣은 비빔밥도 참기름과 고추장을 넣어 한데 버무리는 과정을 마치기 전까지는 특유의 맛이 나지 않는다. 더 컬러스의 첫 공연 역시 저마다의 개성을 녹여 하나의 하모니를 만들어내기엔 조금 일렀던 모양이다.
이 “30년 넘게 음악을 해온 만큼 저마다 컬러를 갖고 있는데, 그 컬러를 잘 어우러지게 하는 것이 우리 몫이다. 더 노력해서 순발력 있게 관객과 호흡을 맞춰갈 생각이다.”
권 “지금은 함께하는 과정에서 배우고,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실수를 줄이는 단계다. 하루아침에 득도(得道)하듯이 하모니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니까. 모난 돌이 풍파를 겪으면서 둥글둥글해지듯, 각자의 색깔이 드러난 모난 부분을 부드럽게 하는 중이다. 화합의 새로운 컬러를 만들어내는 과정이랄까.”
강인원·권인하·이치현이 주축
희끗희끗한 머리카락이 비치고 중후한 중년의 멋이 풍기는 그들이지만, 더 컬러스 멤버는 “마음만은 여전히 신인”이라고 했다.
이 “살아오는 동안 저마다 사업도 하고 다른 일도 해봤지만, 우리 모두는 기본적으로 ‘가수’다. 가수는 무대에 섰을 때 가장 큰 행복을 느낀다.”
강 “결혼하고 1년쯤 지나서 사업을 시작했는데, 집사람이 그러더라. ‘나는 가수 강인원하고 결혼했지, 사업가 강인원하고 결혼한 것이 아니다’라고. 더 컬러스를 결성한 뒤 TV에 나오고 무대에도 서니까 집사람이 좋아한다. 다시 가수 강인원을 보게 됐다고. 다섯 살짜리 늦둥이도 ‘비오는 날의 수채화’를 다 외운다. 공연을 본 뒤로는 아버지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권 “함께 모여 호흡을 맞춰가며 노래하는 것은 흥미 있는 작업이다. 뭐랄까. 또 다른 맛이 난다고나 할까.”
1980~90년대 왕성하게 활동했던 이들은 어느 순간 대중의 기억에서 멀어져갔다. 그동안 어떻게 살았을까.
‘이치현과 벗님들’의 이치현은 경기 하남시 미사리에서 라이브 카페를 운영했다고 한다. 미사리 라이브 카페촌의 원조격이라고. 권인하 역시 미사리에서 카페를 잠시 운영하기도 했고 골프채 수입도 해봤단다. 여러 사업을 경험해서인지 권인하는 ‘사업가’ 풍모가 몸에 배 있었다. 강인원은 음악과 사업을 결합한 일을 한다. 또 엔터테인먼트 사업도 함께 하고 있다. ‘www.3355music.com’이 그가 운영하는 인터넷 사이트다.
20년 가까이 다양한 영역을 넘나들며 세월을 견뎌온 50대 초·중반의 남자 가수 3명을 다시 뭉치게 한 힘은 ‘음악’에 대한 열정이다. 젊음이 발산하는 패기 대신 그들에게선 연륜과 경륜에서 나오는 ‘안정감’ ‘무게감’을 느낄 수 있었다.
▼ 각자 하는 일이 다른데, 연습은 어떻게 하나.
이 “밤 12시에 모여 아침 해가 뜰 때까지 연습한 적도 있다.”
권 “나이가 있어서 밤새우는 것이 쉽지는 않은데, 연습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따로 또 같이’ 새로운 음악 만들 것
▼ 서울 공연은 어떻게 준비하나.
강 “콘티를 짜고 있다. ‘삐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 같은 김완선 씨의 대표곡을 우리 3명이 먼저 부르고, 김완선 씨가 오리지널로 부르는 것도 생각해보고…. 그때 그 시절 감정도 되살려야겠지만, 관객에게 뭔가 ‘색다른 공연이구나’라는 느낌을 주고 싶다.”
이 “관객과 함께하는 공연을 만들려고 한다. 기억 속에서 추억을 끄집어내는 촉매제 구실이랄까. (공연은) 우리 스스로도 음악 인생을 이어갈 수 있는 동력을 찾는 시간이다.”
권 “한마디로 우리 공연을 요약하면 ‘희망’이다. 40대 중반을 넘어서면 희망을 버리는 사람이 많다. 젊을 때 꿨던 ‘꿈’이 현실에 치여 사라지는 것이다. ‘현실에 갇혀 초라한 모습만 남았구나’ 이런 생각이 자연스럽게 든다. 그런 사람에게 우리 공연이 처절한 몸부림으로 다가갔으면 좋겠다. ‘꼰대들이 모여서도 뭔가 할 수 있구나’ ‘쟤들도 하는데 우리라고 못할 게 뭐 있냐’ 뭐 그런 희망을 주면 좋겠다.”
강 “에릭 클랩튼과 스팅이 올해 초에 내한공연을 했다. 우리에게는 형님뻘 되는 분들인데, 그 나이에도 세계를 돌면서 공연하는 모습이 감동적이더라. 산타나 공연도 봤는데 오랫동안 갈고 닦아서 더 완숙해진 느낌이었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린 듯하다. 우리도 그 나이가 됐을 때 박수 받는 가수로 남고 싶다.”
강인원이 가요계에 첫발을 내디뎠을 때 만든 팀명이 ‘따로 또 같이’였다. 프로젝트 그룹 더 컬러스 역시 ‘따로 또 같이’의 의미를 담고 있다. 제각각 독특한 음악 색깔을 가진 이들이 하나로 모여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내는 것, 그것이 더 컬러스가 추구하는 음악세계다. 더 컬러스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그들의 음악을 찾아 들어봤다.
세상사람 모두 다 도화지 속에 그려진
마치 풍경처럼 행복하면 좋겠네
욕심 많은 사람들 얼굴 찌푸린 사람들
마치 그림처럼 행복하면 좋겠어
- 강인원, 권인하, 김현식, ‘비오는 날의 수채화’ 중
내 마음에도 사랑은 있어
나는 밤마다 꿈을 꾸네
오늘밤에도 초원에 누워
별을 보며 생각하네
- 이치현과 벗님들, ‘짚시여인’ 중
10대 후반에 들었던 감정이 40대가 돼서도 그대로 살아나는 것을 보면 “마음은 여전히 신인”이라던 더 컬러스 멤버의 얘기가 그들에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세월이 켜켜이 쌓여 잠시 잊고 지냈을 뿐, 그때 그 감정은 몸속 어딘가에 그대로 남아 있다가 ‘노래’를 통해 언제든 되살아난다. 노래하는 가수는 나이를 먹었지만, 그들이 부른 노래에는 세월을 훌쩍 건너뛰어 ‘공감’하게 만드는 마력이 숨어 있다.
‘따로 또 같이’를 표방한 프로젝트 그룹 더 컬러스는 4월에 결성했다. 강인원, 권인하, 이치현, 민혜경 등 1980~90년대에 활발히 활동하던 4명으로 시작했다. 그러나 7월 17일 첫 공연 이후 남자 가수 3명은 고정 멤버로 하고, 여자 가수 1명은 그때그때 게스트로 초청하는 방식으로 바꾸었다. 9월 24일 서울 광장동 악스코리아(AX-Korea)에서 가질 서울콘서트에는 김완선이 합류한다. 서울 공연 이후 더 컬러스는 10월 8일 부산, 10월 23일 대구, 11월 12일 제주 등 전국을 돌며 콘서트를 연다. 무대에 함께 오를 여자 가수는 그때그때 달라진다.
▼ 7월에 첫 공연을 했는데, 호흡을 맞춘 소감이 어떤가.
이치현(이하 이) “관객 동원에는 성공했는데….”
강인원(이하 강) “부족한 점을 느낀 공연이었다.”
권인하(이하 권) “짧은 시간에 하나의 컬러를 만들어내는 데는 무리가 있더라.”
개성 강한 4명의 가수가 완벽한 하모니를 만들기에는 준비 기간이 부족했던 탓일까. 멤버에겐 첫 공연이 썩 만족스럽지 못했나 보다.
이 “서울 공연에서는 3명의 화음을 들려 드리고, 각자의 개성을 살린 무대도 선보이고. 또 관객과 함께할 수 있는 토크쇼도 곁들여서….”
강 “다양한 맛을 볼 수 있도록 한데 어우러진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첫 공연에서 얻은 교훈이 더 컬러스에겐 보약이 됐다. 어떻게 하면 관객과 접점을 찾아갈지 멤버 각자가 치열하게 고민한 흔적을 인터뷰 내내 찾을 수 있었다.
가장 좋은 재료들을 넣은 비빔밥도 참기름과 고추장을 넣어 한데 버무리는 과정을 마치기 전까지는 특유의 맛이 나지 않는다. 더 컬러스의 첫 공연 역시 저마다의 개성을 녹여 하나의 하모니를 만들어내기엔 조금 일렀던 모양이다.
이 “30년 넘게 음악을 해온 만큼 저마다 컬러를 갖고 있는데, 그 컬러를 잘 어우러지게 하는 것이 우리 몫이다. 더 노력해서 순발력 있게 관객과 호흡을 맞춰갈 생각이다.”
권 “지금은 함께하는 과정에서 배우고,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실수를 줄이는 단계다. 하루아침에 득도(得道)하듯이 하모니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니까. 모난 돌이 풍파를 겪으면서 둥글둥글해지듯, 각자의 색깔이 드러난 모난 부분을 부드럽게 하는 중이다. 화합의 새로운 컬러를 만들어내는 과정이랄까.”
강인원·권인하·이치현이 주축
희끗희끗한 머리카락이 비치고 중후한 중년의 멋이 풍기는 그들이지만, 더 컬러스 멤버는 “마음만은 여전히 신인”이라고 했다.
이 “살아오는 동안 저마다 사업도 하고 다른 일도 해봤지만, 우리 모두는 기본적으로 ‘가수’다. 가수는 무대에 섰을 때 가장 큰 행복을 느낀다.”
강 “결혼하고 1년쯤 지나서 사업을 시작했는데, 집사람이 그러더라. ‘나는 가수 강인원하고 결혼했지, 사업가 강인원하고 결혼한 것이 아니다’라고. 더 컬러스를 결성한 뒤 TV에 나오고 무대에도 서니까 집사람이 좋아한다. 다시 가수 강인원을 보게 됐다고. 다섯 살짜리 늦둥이도 ‘비오는 날의 수채화’를 다 외운다. 공연을 본 뒤로는 아버지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권 “함께 모여 호흡을 맞춰가며 노래하는 것은 흥미 있는 작업이다. 뭐랄까. 또 다른 맛이 난다고나 할까.”
1980~90년대 왕성하게 활동했던 이들은 어느 순간 대중의 기억에서 멀어져갔다. 그동안 어떻게 살았을까.
‘이치현과 벗님들’의 이치현은 경기 하남시 미사리에서 라이브 카페를 운영했다고 한다. 미사리 라이브 카페촌의 원조격이라고. 권인하 역시 미사리에서 카페를 잠시 운영하기도 했고 골프채 수입도 해봤단다. 여러 사업을 경험해서인지 권인하는 ‘사업가’ 풍모가 몸에 배 있었다. 강인원은 음악과 사업을 결합한 일을 한다. 또 엔터테인먼트 사업도 함께 하고 있다. ‘www.3355music.com’이 그가 운영하는 인터넷 사이트다.
20년 가까이 다양한 영역을 넘나들며 세월을 견뎌온 50대 초·중반의 남자 가수 3명을 다시 뭉치게 한 힘은 ‘음악’에 대한 열정이다. 젊음이 발산하는 패기 대신 그들에게선 연륜과 경륜에서 나오는 ‘안정감’ ‘무게감’을 느낄 수 있었다.
▼ 각자 하는 일이 다른데, 연습은 어떻게 하나.
이 “밤 12시에 모여 아침 해가 뜰 때까지 연습한 적도 있다.”
권 “나이가 있어서 밤새우는 것이 쉽지는 않은데, 연습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따로 또 같이’ 새로운 음악 만들 것
▼ 서울 공연은 어떻게 준비하나.
강 “콘티를 짜고 있다. ‘삐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 같은 김완선 씨의 대표곡을 우리 3명이 먼저 부르고, 김완선 씨가 오리지널로 부르는 것도 생각해보고…. 그때 그 시절 감정도 되살려야겠지만, 관객에게 뭔가 ‘색다른 공연이구나’라는 느낌을 주고 싶다.”
이 “관객과 함께하는 공연을 만들려고 한다. 기억 속에서 추억을 끄집어내는 촉매제 구실이랄까. (공연은) 우리 스스로도 음악 인생을 이어갈 수 있는 동력을 찾는 시간이다.”
권 “한마디로 우리 공연을 요약하면 ‘희망’이다. 40대 중반을 넘어서면 희망을 버리는 사람이 많다. 젊을 때 꿨던 ‘꿈’이 현실에 치여 사라지는 것이다. ‘현실에 갇혀 초라한 모습만 남았구나’ 이런 생각이 자연스럽게 든다. 그런 사람에게 우리 공연이 처절한 몸부림으로 다가갔으면 좋겠다. ‘꼰대들이 모여서도 뭔가 할 수 있구나’ ‘쟤들도 하는데 우리라고 못할 게 뭐 있냐’ 뭐 그런 희망을 주면 좋겠다.”
강 “에릭 클랩튼과 스팅이 올해 초에 내한공연을 했다. 우리에게는 형님뻘 되는 분들인데, 그 나이에도 세계를 돌면서 공연하는 모습이 감동적이더라. 산타나 공연도 봤는데 오랫동안 갈고 닦아서 더 완숙해진 느낌이었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린 듯하다. 우리도 그 나이가 됐을 때 박수 받는 가수로 남고 싶다.”
강인원이 가요계에 첫발을 내디뎠을 때 만든 팀명이 ‘따로 또 같이’였다. 프로젝트 그룹 더 컬러스 역시 ‘따로 또 같이’의 의미를 담고 있다. 제각각 독특한 음악 색깔을 가진 이들이 하나로 모여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내는 것, 그것이 더 컬러스가 추구하는 음악세계다. 더 컬러스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그들의 음악을 찾아 들어봤다.
세상사람 모두 다 도화지 속에 그려진
마치 풍경처럼 행복하면 좋겠네
욕심 많은 사람들 얼굴 찌푸린 사람들
마치 그림처럼 행복하면 좋겠어
- 강인원, 권인하, 김현식, ‘비오는 날의 수채화’ 중
내 마음에도 사랑은 있어
나는 밤마다 꿈을 꾸네
오늘밤에도 초원에 누워
별을 보며 생각하네
- 이치현과 벗님들, ‘짚시여인’ 중
10대 후반에 들었던 감정이 40대가 돼서도 그대로 살아나는 것을 보면 “마음은 여전히 신인”이라던 더 컬러스 멤버의 얘기가 그들에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세월이 켜켜이 쌓여 잠시 잊고 지냈을 뿐, 그때 그 감정은 몸속 어딘가에 그대로 남아 있다가 ‘노래’를 통해 언제든 되살아난다. 노래하는 가수는 나이를 먹었지만, 그들이 부른 노래에는 세월을 훌쩍 건너뛰어 ‘공감’하게 만드는 마력이 숨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