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참가 자체가 기적으로 여겨지는 1954년 스위스월드컵에서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은 헝가리에 0:9로 패했다.
돌이켜보면 1954년은 6·25전쟁이 끝난 지 불과 1년 후다. 전쟁으로 초토화된 한반도의 상황은 너무나 끔찍했다. 국민총생산(GNP)이 70달러에 불과하던 시절, 한국 선수들은 비행기를 여러 번 갈아타고 무려 56시간이나 걸려 스위스월드컵에 참가했다. 장시간의 여정에 지친 몸으로, 그것도 경기 전날 겨우 도착해 적응 훈련도 없이 경기를 뛰었다. 유니폼 상의에 번호를 핀으로 고정시키면서까지 어렵게 뛰었다.
참가 사실 자체가 기적처럼 여겨지는 상황에서 맞닥뜨린 상대는 당시 세계 최강을 자랑하는 ‘매직 마자르’팀 헝가리였다. 결과는 0:9. 비참한 스코어였다. 유럽 선수들을 기술적, 체력적으로 당해낼 수 없었다. 그 당시엔 평가전이고 뭐고 없을 때니 선수들도 얼마나 기가 찼을까.
그렇지만 과연 누가 이 결과를 비난할 수 있을까 싶다. 하루하루 생존이 절실한 나라였으니 축구선수들에 대한 지원과 배려는 꿈도 못 꾸는 상황이었다. 선수들은 오로지 가슴에 새겨진 태극기를 보며 비장한 각오로 뛸 뿐이었다. 우리 선수들은 경기 후 FIFA에서 받은 출전료 8400달러를 전액 국고로 귀속시켜도 누가 하나 불평하지 않았다. 그저 조국의 명예를 드높이지 못하고 참패한 것에 미안해하고 죄송스러워했다.
우리는 1954년 스위스월드컵에 외롭게 출전한 태극용사를 영웅으로 불러야 한다. 당시 출전했던 축구계 대선배들이 하나둘씩 세상을 떠나기에 하루빨리 그들을 재조명하는 움직임이 있어야 한다. 그들은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주춧돌이다. 한국이 월드컵 본선에 8차례 연속 진출하고, 2002년 한일월드컵 4강과 2010년 남아공월드컵 16강에 오를 수 있었던 원동력은 다름 아닌 선배들의 땀과 눈물이다.
축구 선배들이 스위스월드컵 3경기에서 몇 골 차로 졌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우리가 봐야 할 것은 바로 그들의 열정이다. 그들은 이념의 소용돌이와 동족상잔의 비극에 시달린 직후 심적으로 부담스러운 상황에서 태극 마크가 새겨진 왼쪽 가슴을 보며 최선을 다했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한국 축구를 잘 들여다보지 않는 한 0:9의 소중함을 앞으로도 잘 모를 것이다. 2002년 한일월드컵 16강에서 보란 듯이 깨지고서도 헛소리다.
* 황승경 단장은 이탈리아 노베 방송국에서 축구 전문 리포터로 활약한 축구 마니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