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층 전시장에 들어서니 솜사탕같이 부드러운 핑크가 벽면에 가득했습니다. 연분홍빛 바탕에 딸기, 사람 얼굴, 목걸이 등이 진분홍·빨강·노랑 같은 따뜻한 색채로 그려져 있는데, 그림을 보고 있으니 문득 발그레한 볼을 하고서 까르르 웃는 다섯 살 난 계집아이가 떠오르더군요. 갑자기 제 옆으로 누군가 다가왔어요. 이 그림을 그린 김광열(48) 작가였죠. 귀엽고 달콤한 작품과 중년 남성인 작가의 이미지는 별로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자분자분 이야기하며 수줍게 웃는데, 그 미소가 무척 작품과 비슷해 보였어요.
김 작가는 동성애자입니다. “늘 나에 대해 숨기고 살았다”던 그는 이번 전시를 통해 자신의 성 정체성을 여실히 드러냈습니다. 작품 속 눈물을 흘리는 여성, 우울한 표정의 남성, 입을 철저히 가린 인물들, 사방이 꽉 막힌 벽에 웅크리고 있는 붉은색 덩어리, 죽은 나방 등에서 동성애자인 작가의 처절한 슬픔과 고립감이 느껴졌습니다.
김 작가는 1991년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건너갔습니다. 더는 자신의 정체성을 속이며 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죠. 가족도 그의 성향에 대해 잘 몰랐는데,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형에게 처음으로 ‘사실’을 털어놓았다고 해요. 전시를 보고 가족이 충격받을까 걱정됐기 때문이죠. “인연을 끊자”며 고래고래 소리 지를 줄 알았던 형이 의외로 담담히 이 사실을 받아들였고, 그런 형의 태도에 김 작가는 마음이 편안해졌다고 합니다. 이 전시가 그에겐 일종의 커밍아웃인 셈이죠.
그래서일까요.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핑크 그림처럼 그의 최근작은 밝고 아름다운 이미지입니다.

이처럼 두 전시는 드러난 모습과 숨겨진 모습이 완전히 다를 수 있음을 알려줍니다. 겉과 속이 다른 두 전시를 보니, 내가 사는 이 도시를 제대로 알고 있는지, 내가 사랑하는 당신의 본질은 과연 어떠한지 궁금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