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틋한 사랑을 나누는 연인 사이로 열연한 정우성(오른쪽)과 가오위안위안.
허진호 감독의 다섯 번째 작품 제목인 ‘호우시절’, 즉 ‘좋은 비는 때를 알고 내린다’는 두보(杜甫)의 시구에는 그의 작품세계를 이루는 두 축이 농축돼 있다. 그것은 ‘계절에 빗댄 인생에 대한 은유’처럼 변함없이 순환하는 허 감독의 세계와 ‘사랑의 시간성’에 관한 그의 상념일 것이다.
영화의 첫 장면. 중국 공항에 내린 동하(정우성 분)는 손목시계의 시침을 거꾸로 돌린다. 그리고 거꾸로 돌린 시간만큼 사랑의 기억을 되돌려보려 하지만, 그 기억 속에는 현격한 사랑의 시차만 존재한다.
두보초당에서 만난 메이(가오위안위안 분)는 미국 유학시절 두 사람이 사귀었던 기억도, 자전거를 탔던 능력도 원래부터 없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동하는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을 입증하려고 노력한다.
허 감독의 세상에서 사랑이 이뤄지지 않는 이유는 주인공의 성격 차이나 부모의 반대나 신분 차, 국경의 문제 같은 것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사랑에 몸을 담은 인간의 감정 자체가 가변차선 같은 것이며 계절처럼 오고 가기 때문이다. 허 감독은 변함없이 사랑의 시간과 기억에 대한 문제를 파헤치고, 그의 모든 주인공은 터미널이나 정류장, 공항에서 만나고 헤어진다. 오고 가고 지나치는 인연 속에서 사랑을 선택한 순간이 바로 때이고, 사랑은 변질된다기보다 변화한다고 믿는 이가 바로 그다.
이 같은 공통성 위에 ‘호우시절’은 허 감독의 전작들보다 더 화사하고, 역동적이고, 가는 붓으로 터치한 듯 더 세밀하다. 메이의 비밀과 그림자는 영화의 종착역에 가서야 드러나고, 영화는 동하의 감각과 감정에 몰입하는 기존 멜로의 궤적을 충실히 따라간다. 또한 사진기사나 음향기사, 조명기사처럼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것을 담아내던 남자 주인공들도 출장비에 밥값을 몰래 올려 적는 평범한 회사원으로 변모한다.
무엇보다도 동하와 메이의 골목길 데이트에 스테디 캠이 등장하고, 하룻밤을 함께 포개고 싶은 두 사람의 흔들리는 마음을 핸드헬드(사람이 카메라를 직접 들고 찍는 기법)로 잡아낸다. 카메라의 움직임이 미세한 마음의 움직임과 거의 동일하게 흘러가던 허 감독의 세상에선 ‘지진’ 같은 일이다.
그래서 ‘호우시절’은 관객들이 데뷔작 ‘8월의 크리스마스’를 찍던 청년시절의 허 감독은 이제 가버렸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더 후하게 점수를 매길 수 있는 영화가 아닐까 싶다. 강릉이 고향인 여자(‘봄날은 간다’)와 중국 쓰촨이 고향인 여자, 똑같은 대나무 밭, 허허로운 바람소리의 허 감독 영화 세상에 무엇이 달라졌느냐고 투덜거리기보다 미세한 변화의 행간을 읽어야 행복해질 수 있다.
영화를 보고 나니 “꽃이 펴서 봄이 오는지, 봄이 와서 꽃이 피는지”라는 영화 속 대사처럼 ‘사랑이 와서 행복한 때가 되는지, 행복한 때가 돼서 사랑이 오는 것인지’ 모르겠다. 어쩌면 일상의 영역에선 인간이 사랑의 시간을 선택하지만, 운명의 영역에선 사랑의 시간이 인간을 선택하는 것이 아닐까.
이런 면에서 ‘호우시절’은 사랑이 다시 찾아오는 것에 관한 짧은 에세이, 연한 연둣빛으로 물든 피천득의 에세이 ‘인연’을 읽었을 때와 비슷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더 솔직한 속내를 말하라면, 가족과 한옥이 사라진 ‘호우시절’은 산뜻하지만 연애의 기억과 상처를 시간의 압침으로 꾹 눌러버린 것 같은 전작의 강렬함이 덜하다고 할밖에. 전작들의 날카로운 경험을 지우며 ‘호우시절’은 감미롭지만 다소 밋밋하게 기억의 미뢰를 스쳐 지나간다. 역시 크림 한 수저, 설탕 한 수저 더 들어간다고 해서 영화가 더 맛있어지는 건 아닌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