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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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런과 삼진 사이는 0.25초

과학의 눈으로 본 야구 … 방망이 에너지 공에 전달 ‘스위트스폿’ 등 타이밍 예술

  • 전동혁 동아사이언스 기자 jermes@donga.com

    입력2009-10-16 12: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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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홈런과 삼진 사이는 0.25초
    ‘야구는 투수놀음’이란 말이 있다. 실제로 2009년 프로야구 시즌 막판까지 페넌트레이스 1, 2위를 다툰 KIA 타이거즈와 SK 와이번스는 각각 막강한 선발진과 훌륭한 불펜을 가동한 든든한 투수진으로 상대팀 타자들을 압도했다. 뛰어난 투수들이 공통적으로 가진 강점은 바로 타자의 ‘타이밍’을 뺏는 것이다.

    시속 150km의 공이 투수판을 떠나 홈까지 18.44m를 날아가는 데 걸리는 시간은 0.44초다. 타자는 그 시간 중 0.025초 동안 공의 궤적을 보고 칠 것인지 말 것인지를 결정하고, 근육에 방망이를 휘두르라는 신호를 전달하는 데 0.015초를 쓴다.

    타자가 힘과 속도를 실어 스윙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약 0.15초이니 판단에 앞서 공을 볼 수 있는 시간은 나머지 0.25초에 불과하다. 그래서 공의 속도나 움직임에 약간만 변화를 줘도 타자에게 주어진 0.25초라는 ‘타이밍’을 뺏을 수 있다.

    투수가 타자의 타이밍을 뺏기 위해 던지는 구질에는 체인지업, 커브, 슬라이더 같은 변화구가 있다. 이 가운데 공에 힘을 적게 전달해 속도를 늦추는 체인지업과 달리 커브나 슬라이더는 직구와 다른 방향의 회전을 공에 걸어 속도와 움직임을 변화시킨다.

    공을 어깨 위에서 던지는 오버핸드 투수의 직구는 일반적으로 공의 윗부분이 진행 방향의 반대(투수 쪽)로 회전한다. 이런 회전이 걸린 공은 진행 방향의 위와 뒷부분의 압력이 낮아져 잘 가라앉지 않고 속도를 거의 유지한 채 날아간다. 반면 커브나 슬라이더 같은 변화구는 공의 윗부분에 진행 방향으로 도는 회전(타자 쪽)을 걸어주거나 좌우 방향의 회전을 더한다.



    직구보다 느린 공은 회전에 따라 압력이 낮아지는 쪽으로 크게 휘어 타자가 쉽게 치지 못하게 된다. 회전 방향에 따라 공이 휘는 현상은 1852년 독일 물리학자 구스타프 마그누스가 실험을 통해 발견한 것으로 ‘마그누스 효과’라 부른다. 일부 투수는 직구처럼 빠르게 날아가며 움직임이 변하는 공을 던지기도 한다. 그중 하나가 공이 홈플레이트 근처에서 솟아오르는 것처럼 보이는 라이징 패스트볼이다.

    투수가 던진 빠른 직구에 1분당 1600회 정도의 역회전이 걸리면 공이 떠오르는 현상이 일어난다. 라이징 패스트볼이 떠오르는 정도는 최대 18cm로 30~50cm에 달하는 변화구보다 훨씬 적다. 하지만 지름이 6.3cm인 야구방망이를 사용하는 타자가 이를 맞추기는 쉽지 않다. 게다가 타자가 공을 때리는 위치를 마지막으로 계산한 뒤 실제로 치기까지 걸리는 0.25초 동안 7~8cm가 떠오르기 때문에 타자가 ‘갑자기 솟아올랐다’고 느끼는 것이 무리가 아니다.

    1분에 1600회 역회전 걸리면 ‘라이징 패스트볼’

    미처 예측하지 못한 변화구나 빠른 직구로 타자를 돌려세우는 삼진이 투구의 묘미라면, 구질을 예측한 정확한 타이밍으로 공을 때려 담장을 넘기는 홈런은 그야말로 타격의 꽃이다. 큰 덩치와 강력한 힘으로 공을 받아쳐 홈런을 만드는 타자도 있지만, 상대적으로 왜소한 몸으로 홈런을 쳐내는 타자도 있다. 이들은 야구방망이의 ‘스위트스폿’에 공을 제대로 맞히기 때문이다.

    스위트스폿이란 공을 쳤을 때 가장 멀리 날아가는 야구방망이의 한 지점이다. 이렇게 공을 멀리 보낼 수 있는 이유는 그곳이 에너지를 있는 그대로 전달할 수 있는 지점이기 때문이다. 야구공과 부딪힌 방망이엔 위아래로 여러 개의 진동이 일어난다. 그런데 스위트스폿에선 진동이 상쇄되기 때문에 방망이의 에너지가 진동으로 소모되지 않고 공에 그대로 전달되는 것이다.

    그래서 스위트스폿에 공이 맞으면 방망이에서 낮고 경쾌한 소리가 난다. 배트 전체가 활처럼 휘었다가 펴지면서 단 하나의 진동을 하므로 크고 오래 울리는 소리가 나는 것이다. 반면 빗맞은 타구는 배트가 2~4부분으로 나뉘어 진동하므로 파장이 짧은 소리가 서로 뭉쳐 크기가 작고 오래 울리지도 않는다. 야구선수나 해설자가 소리만 듣고도 ‘잘 맞은 타구’라는 것을 알 수 있는 이유다.

    홈런과 삼진 사이는 0.25초
    스위트스폿에 제대로 맞은 공은 방망이가 부러져도 홈런이 되기도 한다. 지난 6월4일 KIA 타이거즈 김상현 선수는 배트가 부러졌지만 홈런을 만들어냈다.

    당시 두산 외야수는 배트가 부러지는 것을 보고 앞으로 다가왔지만 공은 담장을 넘었다. 연세대 물리학과 이삼현 교수는 “공이 맞는 배트 앞부분에 균열이 있었다면, 스위트스폿에 공이 닿을 때 앞부분이 수축돼 부러지지 않고 힘을 온전히 전달한 뒤 배트가 반대로 진동하며 균열이 벌어져 부러졌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올 시즌 KIA 타이거즈는 최희섭-김상현 선수로 이어지는 ‘CK포’로 재미를 톡톡히 봤다. 상대 투수가 4번 타자인 최희섭을 고의사구로 거르더라도 그 뒤에 버틴 김상현이 종종 홈런을 쳐낸 것이다. 상대팀에 따라 변화무쌍한 타선을 자랑하는 SK 와이번스나 발 빠른 테이블세터진과 정확한 타격, 장타력을 갖춘 중심타선으로 무장한 두산 베어스도 투수로서는 상대하기 싫은 타선이다.

    타선이 가진 중요성 때문에 미국에서는 가장 이상적인 타선에 대한 연구를 하기도 했다. 2002년 미국 뉴저지기술대 브루스 부키엇 교수는 메이저리그 야구 경기를 1989년 시즌부터 조사한 뒤 팀에서 가장 잘 치는 타자를 2번 타순에 세우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미국 산업응용수학회에서 발표하기도 했다. 3번 타순보다 타격 기회가 더 많이 돌아오며 1번 타자가 발이 빠를 경우 아웃카운트를 소모하지 않고도 득점할 수 있는 기회가 많기 때문이다.

    부키엇 교수는 최악의 타자도 9번이 아니라 7, 8번 타순에 세우는 것이 낫다고 충고하기도 했다. 9번 다음에 강타자가 많은 상위타선으로 연결되는 1번 타순이 곧바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물론 타선에 대한 연구는 보내기 번트 같은 ‘작전 야구’를 자주 구사하지 않는 미국 야구에나 맞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

    뜬 공 잘 잡으려면 전후좌우 움직여야

    팀이 포스트시즌이나 한국시리즈 같은 단기전에서 이기는 데 빼놓을 수 없는 요소는 수비다. 두산과 롯데의 포스트시즌 4차전에서 양 팀은 같은 수의 안타를 치고도 두산이 9대 5로 이겼다. 롯데는 중요한 순간마다 저지른 3개의 실책이 패배의 빌미가 됐다. 반면 두산의 외야 수비진은 탄탄했다. 이종욱, 정수빈 선수는 안타성 타구를 빠른 발로 쫓아가 몸을 날려 잡아냈고, 김현수 선수도 놀라운 집중력으로 다이빙 캐치를 여러 차례 성공시켰다.

    야구의 수비에 대한 연구도 오랜 기간 진행돼왔다. 미국 웨스턴온타리오대 연구팀이 ‘뜬 공 잘 잡는 법’을 연구한 결과가 올해 ‘휴먼 무브먼트 사이언스’ 4월호에 실렸다. 연구팀은 공이 배트에 맞아 떠오르는 순간 앞이나 뒤로 조금씩 움직이면 낙하지점을 계산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밝혔다.

    야구공은 크기가 작고 외야수와 멀리 떨어진 곳에서 날아오기 때문에 가만히 서 있으면 공의 속도와 움직임을 예측하기 어렵다. 하지만 조금씩 앞이나 뒤로 움직이면 바라보는 위치가 달라지기 때문에 공의 속도를 가늠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조금씩 뒤로 물러나는데도 공이 계속 위로 올라가는 것처럼 보이면 그 공은 더 뒤로 날아갈 확률이 높은 것이다. 반대로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데 공이 떨어지거나 멈춘 것처럼 보이면 더 앞으로 다가가야 잡을 수 있다.

    좌우로 이동하는 것도 공을 쫓아가는 데 도움이 된다. 사람은 두 눈에 보이는 영상의 미세한 차이를 통해 입체감을 느끼는데, 먼 거리의 물체는 눈 사이의 간격이 좁아 거의 차이가 없다. 하지만 몸 전체가 좌우로 움직이면 입체감을 더 많이 느낄 수 있어 공의 움직임을 파악하기 쉽다. 내야수를 곤란하게 만드는 ‘강습타구’에 대한 연구도 계속되고 있다.

    땅에 강하게 튀는 공은 움직임을 예측하기 어렵다. 더군다나 배트에 맞아 땅으로 향하는 공은 윗부분이 진행 방향으로 회전한다. 그래서 공이 땅에 닿는 순간 접근하는 각도보다 낮은 높이로 빠르게 구르듯 튀어오른다. 따라서 일반적인 바운드를 예상하고 글러브를 대면 공이 아래로 지나가는 ‘알까기’가 나온다. 게다가 강습타구 속도는 초속 30m가 넘는다. 내야수가 공의 궤적을 정확히 예측하고 글러브를 대는 데 0.2초 정도 걸리기 때문에 6m 이내에서 공이 빠르게 바운드되면 잡기가 쉽지 않다.

    또 공은 천연 잔디, 인조 잔디, 부드러운 흙, 단단한 흙에 튈 때의 변화가 각각 다르기 때문에 내야수는 땅의 재질도 염두에 둬야 한다. 미국 예일대 물리학과 로버트 어대어 교수는 “강한 땅볼은 공이 땅에 닿는 순간이나 닿기 직전에 잡을 수 있도록 글러브를 갖다 대는 타이밍이 중요하다”고 설명한다.

    실제로 야구선수들은 공의 바운드를 계산해 공이 땅에 튀는 그 순간(숏바운드)에 잡는 연습을 많이 한다. 물론 과학적 데이터를 바탕으로 훈련한 것은 아니겠지만, ‘스타 선수’는 어릴 때부터 이러한 과학적 현상을 몸으로 경험하며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어왔기에 가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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