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르도의 5대 샤토 중에서도 최고로 꼽히는 라피트 로쉴드.
와인 등급의 우열은 사실 각자 취향에 달려 있는 미세한 차이의 문제지만, 그렇다 해도 여전히 줄을 세우고 싶은 마음은 어떤 애호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독수리 오형제’로 불리는 1등급 와인 다섯은 사실 메도크 지역에 있는 와인끼리 벌인 경쟁의 결과지만, 오늘날 보르도가 세계 와인의 중심으로 올라선 까닭에 지역 와인이 아닌 세계의 와인으로 확장돼 있는 게 현실이다.
그중 라피트가 최고라고 답하는 사람들이 많다. 왜 그럴까. 그 물음에 답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샤토 라피트는 보르도의 포이야크 마을에 있는 포도원으로 메도크를 대표하는 양조장이다. 나폴레옹 3세가 파리 만국박람회에서 자국의 문화적 위용을 드러내려 마련했던 그 유명한 ‘1855년 등급 품평회’에서 당당히 1등급 반열에 꼽힌 와인이다. 마고, 라투르, 오브리옹이 라피트의 뒤를 따랐다.
1787년 기준으로 와인 가격을 줄 세워봐도 위와 같다. 당시 라피트는 마고보다 17%, 라투르보다 40%, 오브리옹보다는 무려 133% 이상 비싸게 거래됐다. 결국 라피트는 18세기부터 지금까지 보르도 전체를 대표하는 최고급 와인이랄 수 있겠다.
라피트는 맛이 참 좋은 와인이다. 매일 먹는 된장찌개나 김치가 질리지 않는 것처럼 라피트는 자주 마셔도 여전히 매력적이다. 갓 담근 와인이라도 라피트는 라투르나 무통보다 훨씬 부드럽고 자연스럽다. 보르도의 전형적인 맛, 즉 클래식 보르도 스타일의 전형으로 꼽히며 특히 제비꽃 향기가 넘실거린다.
1등급 중의 1등급
자신을 드러내려는 강렬함이 전혀 거북하지 않고 자연스럽다. 삼키면 입 안을 가득 메우는 강건함 속에 미묘하게 여린 기운도 자리잡고 있어 시음자에게 복합성이란 특질을 보여준다. 아주 미세한 조직으로 구성된 부드러운 질감 속에 굳게 버티고 있는 심지 같은 단단함이 있어 와인 용어로 ‘피네스’가 가득한 와인이라는 평을 받는다.
중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와인 역시 라피트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이유에서 라피트가 베스트셀러가 된 것인지는 밝히기가 쉽지 않다. 와인 전문가들에게서 합리적인 답변을 이끌어내기도 어렵다.
그렇지만 중국인들은 이미 몇백 년 전부터 라피트가 다른 양조장 와인보다 비싸게 거래됐다는 사실을 중대하게 여긴다. 그래서 1등급 와인 명세에서 가장 먼저 이름이 올라 있지 않느냐고 말한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라피트’라는 소리 자체가 중국인들에게 매력적이라고 한다. 표준 중국어의 음성학적으로 라피트는 무척 쉽고 경쾌한 발음이라는 것이다. 샤토 탈보가 우리나라에서 인기 있는 이유와 일맥상통한다.
현대 와인 경매의 선구자 마이클 브로드번트는 기록에 살고 기록에 죽는 와인경매사다. 1985년은 그에게 평생 잊지 못할 한 해다. 종전의 낙찰가 기록을 갈아치울 수 있는 기회를 잡았던 것이다. 이해 샤토 라피트 한 병이 단일 병 낙찰가 기록으로 가장 비싸게 팔렸기 때문이다. 빈티지는 1787. 브로드번트는 그의 인생에서 라피트 1870년 빈티지의 맛이 최고라고 고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