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는 느리지만 탁월한 위치 선정 능력으로 건실한 수비를 자랑하는 이반 캄포(맨 오른쪽).
축구도 마찬가지다. 김병지는 15년 동안 골문을 지키면서 가장 무서웠던 공격수로 김도훈, 라데, 샤샤를 꼽았다. 이들은 탁월한 위치 선정과 예측 불허의 움직임으로 유명하다. 특히 대우(현 부산), 수원, 성남을 두루 거친 샤샤는 경기장 밖에서는 숱한 염문을 뿌렸고 경기장 안에서는 최고의 우승청부업자가 됐다. 그런데 그의 100m 기록은 ‘겨우’ 13초 5. 공격수치고는 상당히 느리다. 축구가 피니시 라인을 향해 달리는 스포츠가 아님을 잘 보여준다.
상대성 강한 스포츠 공격수가 능동적 경기 운영
축구는 상대성이 강한 스포츠다. 수비수는 공격수가 움직이기 전에는 움직이지 않는다. 다시 말해 공격수는 능동적 입장에서 자기 세계를 펼쳐간다. 직선으로 달려가거나 곡선으로 회전하거나 멀찌감치 횡패스를 해버린다. ‘위치 선정’의 주도권도 공격수에게 있다.
레알 마드리드의 라울 곤잘레스는 공격수의 능동성을 높은 수준으로 보여준다. 리그 득점왕 2회, 99년 세계 최다 득점, 스페인 대표팀 사상 최다 득점 선수인 라울은 마치 바둑 9단이 펼치는 포석처럼 정확한 위치 선정을 자랑한다. 날렵한 슈팅은 그가 골이 터질 만한 최적의 위치를 선점했기 때문에 가능한 동작이다.
그리고 34세의 노장 이반 캄포가 있다. 레알 마드리드에서 뛰었고 스페인 국가대표까지 지냈으나 잦은 실수로 슬럼프에 빠지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캄포는 볼턴 원더러스의 수비형 미드필더로 건재하다. 언뜻 보기에 그는 조기축구회 회장 같다. 배도 많이 나왔고 속도도 느리다. 하지만 공을 빨아들이는 자기력을 가진 듯 튼실한 수비력을 보여준다. 그리고 정말 조기축구회 회장처럼 공을 툭, 툭 찬다. 쉽게 차는데 아주 잘 찬다. 축구가 육상이나 격투기와 닮았다면 그는 오래전 은퇴했을 것이다. 하지만 불어난 몸집에 느린 속도로 뛰면서도 캄포는 정확한 위치를 선점해 상대방 공격의 혈맥을 끊는다. 축구이기 때문에 가능한 면모다.
지난 칼럼의 문제. a, b 양국이 중립국 c에서 경기할 때 c국의 국가도 연주할까. 정답은 ‘연주하지 않는다’다. 이번에도 문제가 있다. 축구는 11명이 뛰는 경기로 호흡이 중요하다. 아무리 뛰어난 선수도 동료들과의 관계(경기장 밖의 인간관계가 아니라), 즉 팀의 전술 시스템 속에서 어떻게 유기적인 플레이를 펼쳐나가는지가 중요하다. 프랑스 출신으로 잉글랜드 리그의 최고 공격수였지만 새로 이적한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바로 이 시스템 문제 때문에 침체에 빠진 선수는? 정답은 다음 호 이 지면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