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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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중인격 완벽 소화 연기파 배우로 신고식

  • 하재봉 영화평론가

    입력2007-09-12 17: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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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중인격 완벽 소화 연기파 배우로 신고식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은 김선아의 장점을 극대화해 시청자들에게 전달하기도 했지만 또 한 사람, 가수로만 알고 있던 려원을 정려원으로 만든 드라마이기도 했다. 여성 그룹 ‘샤크라’의 멤버로 노래를 시작한 려원은 아침 드라마 등에서 조금씩 연기자 훈련을 하다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 그 가능성을 확실히 보여주었다. 이제는 아무도 그가 려원이던 시절을 생각하지 않는다. 그가 처음으로 도전한 영화 ‘두 얼굴의 여친’은 가수에서 연기자로 전업에 성공한 정려원의 연기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TV 스타들이 영화에 도전했다가 고배를 마신 경우는 많다. 두 매체는 비슷한 것 같지만 많이 다르다. 사소한 일상에 의존하는 TV 연기는 시청자와 거리가 가깝다. 하지만 영화는 거대한 스크린을 압도하는 흡인력 없이는 관객을 붙잡기 힘들다. 정려원은 ‘두 얼굴의 여친’에서 가슴 아픈 상처 때문에 다중인격을 갖게 된 여성으로 나온다. 한 인물 안에서 두 개의 캐릭터를 소화해야 하는 쉽지 않은 연기를 인상 깊게 함으로써 향후 한국영화에서 여성 연기자의 선택 폭을 넓혀놓았다.

    샤크라 멤버 출신·짧은 시간에 변신 성공

    올해 26살(1981년생)인 정려원이 연예활동을 시작한 지는 7년, 연기자로서 활동한 것은 3년 남짓이다. 1992년 가족을 따라 호주로 이민 간 그는 대학 1학년을 다니다가 “눈이 보고 싶어서” 한국에 왔다. 정려원은 압구정동 길거리에서 DDR(리듬 액션게임)를 하다 연예 매니저 눈에 들어 ‘샤크라’ 멤버가 됐다. 하지만 가수 생활이 그에게 딱 맞았던 것은 아니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남자 출연자들을 유혹하는 춤을 춰야 할 때는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나 하는 자책감이 들었다. 그런데 드라마를 찍으면서 가슴이 콩닥콩닥 뛸 정도로 좋았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은 연기라는 것을 그때 알았다.”



    가수 려원에서 연기자 정려원으로 이름과 분야를 바꾼 그는 2005년 ‘내 이름은 김삼순’으로 스타가 됐다가 ‘가을 소나기’에서는 저조한 시청률 때문에 상심해야 했다. 그 후 ‘안녕, 프란체스카’ ‘넌 어느 별에서 왔니’에 연이어 출연하며 연기자로서 자리잡게 됐다. 가수로서 쌓은 인지도를 이용한다는 비판과 어색한 연기가 도마에 오르기도 했지만, 비교적 짧은 시간에 연기자로의 변신에 성공했다.

    정려원이 ‘두 얼굴의 여친’에 출연하게 된 것은 상대역 봉태규 덕분이었다. 봉태규는 일본 청춘스타 야오이 유우와 흡사한 이미지를 갖고 있는 정려원과 연기를 해보고 싶다고 여러 차례 말했다. ‘두 얼굴의 여친’에서 대학을 7년째 다니고 연애 한번 못해본 순진남 ‘구창’ 역에 먼저 캐스팅된 봉태규는 상대역 ‘아니’의 캐스팅에 정려원을 추천했고, 그가 쉽게 결정을 내리지 않자 직접 찾아가 설득했다. 정려원은 이미 ‘넌 어느 별에서 왔니’에서 1인2역을 한 바 있다. 그러나 호주의 세련된 도시 여자 혜수와 시골 처녀 복실의 1인2역과는 다르게 ‘두 얼굴의 여친’은 한 인물 안에 두 캐릭터가 있다.

    “여러 편의 시나리오가 들어왔지만, 다중인격 캐릭터는 스크린 데뷔작으로 하기엔 모험이었다. 그래서 거절했는데 봉태규 씨가 끈질기게 설득했다. 내가 이 영화에 출연하게 된 것은 순전히 봉태규 씨 때문이다. 봉태규 씨는 자신도 개성적인데 상대역까지 개성적이면 영화가 망한다고 생각했다. ‘아니’와 ‘하니’라는 전혀 다른 캐릭터가 한 몸에 있는 여주인공은 무조건 예뻐야 한다는 것이다. 봉태규 씨 눈에는 내가 가장 예뻐 보였나보다.”

    다중인격 완벽 소화 연기파 배우로 신고식

    영화 데뷔작 ‘두 얼굴의 여친’에서 정려원은 가슴 아픈 상처 때문에 다중인격을 갖게 된 인물로 등장한다.

    ‘두 얼굴의 여친’ 촬영장에서 정려원은 해피 바이러스 구실을 했다. 화이트데이에는 자신의 촬영이 없는데도 촬영 현장을 방문해 스태프에게 사탕을 돌렸다. 독실한 신자인 정려원은 촬영 막바지에 부활절이 돌아오자 직접 꾸민 달걀을 선물했고, 촬영 마지막 날에는 스태프 한 명 한 명에게 직접 쓴 카드를 전달했다. 자신의 첫 영화에 그만큼 애정이 있었다는 증거다.

    “처음 시나리오를 거절하고 나서도 여운이 남는 작품이었다. 영화 데뷔작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많은 부담이 됐고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하지만 이 작품을 하지 않으면 나중에 후회할 것 같았다. 그때 봉태규 씨가 자신을 믿어달라며 나를 설득했다.”

    봉태규 정려원 커플이 예상외의 파괴력을 보여주는 ‘두 얼굴의 여친’은 연애 한번 못해본 소심남이며 찌질이인 구창이 예전 남자친구와의 상처로 인한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해 두 개의 캐릭터를 갖게 된 여자를 만나면서 벌어지는 해프닝과 사랑을 그린 코믹 멜로다. 정려원은 아니와 하니라는 상반된 캐릭터를 연기한다. 보통 때는 순진하고 여린 모습이지만 화가 나면 자신도 모르게 헐크처럼 변한다. 아니 안에서 하니라는 캐릭터가 불쑥 튀어나오는 것이다. 터프하고 욕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으며 발차기까지 하는 하니를, 아니는 모른다. 잠깐 졸다 깨어난 것처럼, 자신이 하니로 변신했다는 사실을 까마득하게 모르는 것이다.

    두 개의 캐릭터를 오가는 정려원의 연기는 인상적이다. 작은 얼굴에 부드러운 외양의 그가 갑자기 거친 모습으로 변하는 것은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정려원은 자신의 이미지와 닮은 아니 역을 할 때보다 오히려 터프한 하니 역을 할 때 더 좋은 연기를 보여준다. 어쩌면 그것이 그의 진짜 모습이 아닐까 생각될 정도다.

    “나 자신과의 싸움이 가장 힘들었다. 군중 속의 고독처럼 우울증을 경험한 적도 있다. 나는 털털하고 애교 없는 성격이어서 하니가 쉬울 줄 알았는데, 거침없이 욕설을 하고 발차기를 하는 연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자유자재 성격 바꾸기 … 벌써부터 러브콜 쏟아져

    정려원은 생각이 많은 배우다. 그의 말은 즉흥적으로 아무 생각 없이 나오는 게 아니라, 자신의 인생과 연기에 대해 오랜 시간 고민하고 생각한 사람에게서만 나올 수 있는 말이다. 한 사람의 배우가 되기 위해서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혹은 존재하지 않는 수많은 캐릭터의 내면 깊숙이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자신을 열고 변신해야 한다”는 것이다.

    순진녀에서 터프녀로의 변신을 자유자재로 하는 ‘두 얼굴의 여친’ 속 정려원을 보면, 성공적인 연기가 우연한 결과가 아니라 끊임없는 노력의 산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변신의 폭이 크면 클수록 연기는 어렵고 대중이 느끼는 쾌감은 극대화된다. 일반 시사 후 기습적인 무대인사를 한 정려원 봉태규 두 배우에게 관객들은 열광적으로 환호했다. 그만큼 영화에 대한 만족도가 높았다는 뜻이다. 시사 전에 무대인사를 했다면 절대 그처럼 열렬한 반응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두 얼굴의 여친’으로 성공적인 스크린 데뷔를 마친 정려원에게는 벌써부터 러브콜이 쏟아진다. 이제 그가 자신만의 아우라를 살린 연기를 통해 한국영화 여배우 계보에 단단히 자리잡게 될 것인지, 정려원에게 기대를 거는 이들이 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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