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황소개구리와 청개구리
유네스코는 ‘세계 사멸위기 언어 지도’ 보고서에서 세계 각지에서 소수민족의 언어와 문화유산이 사멸위기를 맞고 있다고 경고했다. 한편 민간기구 월드워치연구소는 현재 전 세계에 존재하는 6800여 개 언어 중 절반이 21세기 안에 사라질 것으로 내다봤다. 2주일마다 1개의 언어가 사라지는 셈이다. 이러한 언어 소멸의 원인으로는 전쟁, 대량학살, 치명적 자연재해 등을 들 수 있지만 무엇보다 영어, 중국어의 확산을 빼놓을 수 없다. 국어 (상) 1단원 ‘황소개구리와 우리말’에서 동물행동학 박사인 최재천 선생은 각 지역의 고유한 언어를 잠식하고 있는 영어의 위세를 외래종인 황소개구리가 토종 청개구리의 터전을 빼앗고, 미국산 블루길이 토종 물고기들의 물길을 빼앗는 것에 비유해 우리말의 소중함을 지적하고 있다.
2. 조지 오웰, ‘1984년’
언어는 의사소통의 주요 수단으로 인간은 언어를 통해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전달한다. 뿐만 아니라 언어는 이성적 사고의 도구이기도 하다. 인간은 언어를 매개로 사고를 확장 발전시킨다. 가령 어린아이는 ‘사과’라는 단어를 통해 빨갛고 먹음직스러운 과일이라는 사과의 개념을 머릿속에 떠올린다. 부모들은 자유, 평등, 인권이라는 단어로써 자식들에게 인간의 존엄성과 고귀함, 불의에 맞서는 용기를 가르친다. 언어 없이는 인간은 사고할 수도, 고민할 수도 없다. 그렇다면 언어의 통제와 말살은 어떤 결과를 가져올까? 조지 오웰은 ‘1984년’이라는 작품에서 언어의 통제를 통한 완벽한 독재혁명을 꿈꾸는 인물을 보여준다.
낱말들을 파괴하는 일은 근사한 일이다. 물론 엄청난 양의 동사와 형용사들을 없앨 수 있지만, 명사도 수백 개의 어휘를 제거할 수 있다. 단지 동의어만이 아니다. 반의어도 역시 그러하다. 예를 들어 ‘good’이란 단어를 보자. ‘good’이란 단어가 있다면 ‘bad’란 단어가 왜 필요하단 말인가? ‘ungood’이면 충분하다. 아니, 훨씬 낫다. 왜냐하면 ‘bad’보다 ‘ungood’이 ‘good’의 정확한 반대말이기 때문이다. 만약 당신이 ‘good’보다 더 강한 묘사를 원할 때, ‘excellent’나 ‘splendid’ 등과 같은 모호하고 불필요한 모든 낱말들이 무슨 의미를 갖는단 말인가? ‘plusgood’이나 ‘doubleplusgood’이면 그 의미를 충분히 나타낼 수 있는 것을…. ‘newspeak(새로운 사회의 공식 언어)’의 궁극적인 목표가 사고의 영역을 좁히고자 하는 데 있다는 사실을 당신은 아직도 모르겠는가.
독재에 저항하는 사상범을 없애기 위해서는 그들이 꿈꾸는 자유니 평등이니 하는 사상을 말살해야 한다. 그러려면 그 같은 사고를 할 수 있고 표현할 수 있는 언어를 없애는 것이 가장 현명하다는 게 위의 작품에 등장하는 독재자의 생각이다. 언어의 수를 줄이면 인간의 사고가 축소돼 사람들은 더 단순해질 것이고, 자유와 평등 같은 ‘불온한 단어’들을 없애면 사람들은 더 이상 자유와 평등을 추구하며 독재에 저항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들은 언어가 얼마나 중요한지 안다. 그리고 왜 많은 지식인들이 목숨을 걸고 사상의 자유와 함께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를 위해 투쟁했는지도 안다.
3. 효율성과 정체성
이와 같이 언어가 인간의 사고와 밀접하게 관련돼 있기 때문에 수많은 민족과 공동체의 언어는 다양한 문화적 특성과 민족적 정체성, 세계관, 정서, 전통 등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예컨대 영어인 ‘red’로는 우리말의 ‘빨갛다, 시뻘겋다, 새빨갛다, 붉다, 불그스름하다, 불그스레하다, 불그죽죽하다’의 미묘한 색깔 차이는 물론 한국어를 사용하는 언어공동체의 색감에 대한 정서를 충분히 표현할 수 없다. 나바호족은 각 달을 그 달의 자연적 특징에 따라 달리 부른다. 11월은 ‘미풍의 달’, 2월은 ‘새끼 독수리의 달’, 4월은 ‘여린 새순의 달’이라 이름 붙였다. 현대 도시인들의 1월, 4월이라는 단어로는 미묘한 자연의 변화와 특징을 인식하고 자연과 교감하는 나바호족의 세계관이나 정서를 절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세계화 시대에 국가 간, 민족 간의 교류와 소통은 매우 중요하며 피할 수 없는 현상이다. 그러한 소통에서 지배적인 영어를 공용어로 하여 전 세계인들이 언어의 장벽 없이 소통하고 교류한다면 인적, 물적 교류가 확산돼 효율성이 증가하고 생산성이 높아질 것이다. 그러나 언어의 가치를 가늠하는 데는 효율성뿐만 아니라 다양한 언어공동체의 정체성, 문화, 전통의 보호와 전수도 고려돼야 한다. 다시 황소개구리와 청개구리를 생각해보자. 황소개구리의 유입으로 청개구리의 삶의 터전이 파괴되는 것은 단순히 우리가 더는 청개구리의 울음소리를 듣지 못하게 됐다는 아쉬움으로 끝나지 않는다. 황소개구리가 종 다양성을 훼손해 생태계를 파괴하듯이 외국어의 무분별한 유입은 우리의 언어와 그 안에 담긴 우리의 정체성, 전통, 문화까지도 뒤흔들 것이기 때문이다.
유네스코는 ‘세계 사멸위기 언어 지도’ 보고서에서 세계 각지에서 소수민족의 언어와 문화유산이 사멸위기를 맞고 있다고 경고했다. 한편 민간기구 월드워치연구소는 현재 전 세계에 존재하는 6800여 개 언어 중 절반이 21세기 안에 사라질 것으로 내다봤다. 2주일마다 1개의 언어가 사라지는 셈이다. 이러한 언어 소멸의 원인으로는 전쟁, 대량학살, 치명적 자연재해 등을 들 수 있지만 무엇보다 영어, 중국어의 확산을 빼놓을 수 없다. 국어 (상) 1단원 ‘황소개구리와 우리말’에서 동물행동학 박사인 최재천 선생은 각 지역의 고유한 언어를 잠식하고 있는 영어의 위세를 외래종인 황소개구리가 토종 청개구리의 터전을 빼앗고, 미국산 블루길이 토종 물고기들의 물길을 빼앗는 것에 비유해 우리말의 소중함을 지적하고 있다.
2. 조지 오웰, ‘1984년’
언어는 의사소통의 주요 수단으로 인간은 언어를 통해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전달한다. 뿐만 아니라 언어는 이성적 사고의 도구이기도 하다. 인간은 언어를 매개로 사고를 확장 발전시킨다. 가령 어린아이는 ‘사과’라는 단어를 통해 빨갛고 먹음직스러운 과일이라는 사과의 개념을 머릿속에 떠올린다. 부모들은 자유, 평등, 인권이라는 단어로써 자식들에게 인간의 존엄성과 고귀함, 불의에 맞서는 용기를 가르친다. 언어 없이는 인간은 사고할 수도, 고민할 수도 없다. 그렇다면 언어의 통제와 말살은 어떤 결과를 가져올까? 조지 오웰은 ‘1984년’이라는 작품에서 언어의 통제를 통한 완벽한 독재혁명을 꿈꾸는 인물을 보여준다.
낱말들을 파괴하는 일은 근사한 일이다. 물론 엄청난 양의 동사와 형용사들을 없앨 수 있지만, 명사도 수백 개의 어휘를 제거할 수 있다. 단지 동의어만이 아니다. 반의어도 역시 그러하다. 예를 들어 ‘good’이란 단어를 보자. ‘good’이란 단어가 있다면 ‘bad’란 단어가 왜 필요하단 말인가? ‘ungood’이면 충분하다. 아니, 훨씬 낫다. 왜냐하면 ‘bad’보다 ‘ungood’이 ‘good’의 정확한 반대말이기 때문이다. 만약 당신이 ‘good’보다 더 강한 묘사를 원할 때, ‘excellent’나 ‘splendid’ 등과 같은 모호하고 불필요한 모든 낱말들이 무슨 의미를 갖는단 말인가? ‘plusgood’이나 ‘doubleplusgood’이면 그 의미를 충분히 나타낼 수 있는 것을…. ‘newspeak(새로운 사회의 공식 언어)’의 궁극적인 목표가 사고의 영역을 좁히고자 하는 데 있다는 사실을 당신은 아직도 모르겠는가.
독재에 저항하는 사상범을 없애기 위해서는 그들이 꿈꾸는 자유니 평등이니 하는 사상을 말살해야 한다. 그러려면 그 같은 사고를 할 수 있고 표현할 수 있는 언어를 없애는 것이 가장 현명하다는 게 위의 작품에 등장하는 독재자의 생각이다. 언어의 수를 줄이면 인간의 사고가 축소돼 사람들은 더 단순해질 것이고, 자유와 평등 같은 ‘불온한 단어’들을 없애면 사람들은 더 이상 자유와 평등을 추구하며 독재에 저항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들은 언어가 얼마나 중요한지 안다. 그리고 왜 많은 지식인들이 목숨을 걸고 사상의 자유와 함께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를 위해 투쟁했는지도 안다.
3. 효율성과 정체성
이와 같이 언어가 인간의 사고와 밀접하게 관련돼 있기 때문에 수많은 민족과 공동체의 언어는 다양한 문화적 특성과 민족적 정체성, 세계관, 정서, 전통 등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예컨대 영어인 ‘red’로는 우리말의 ‘빨갛다, 시뻘겋다, 새빨갛다, 붉다, 불그스름하다, 불그스레하다, 불그죽죽하다’의 미묘한 색깔 차이는 물론 한국어를 사용하는 언어공동체의 색감에 대한 정서를 충분히 표현할 수 없다. 나바호족은 각 달을 그 달의 자연적 특징에 따라 달리 부른다. 11월은 ‘미풍의 달’, 2월은 ‘새끼 독수리의 달’, 4월은 ‘여린 새순의 달’이라 이름 붙였다. 현대 도시인들의 1월, 4월이라는 단어로는 미묘한 자연의 변화와 특징을 인식하고 자연과 교감하는 나바호족의 세계관이나 정서를 절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세계화 시대에 국가 간, 민족 간의 교류와 소통은 매우 중요하며 피할 수 없는 현상이다. 그러한 소통에서 지배적인 영어를 공용어로 하여 전 세계인들이 언어의 장벽 없이 소통하고 교류한다면 인적, 물적 교류가 확산돼 효율성이 증가하고 생산성이 높아질 것이다. 그러나 언어의 가치를 가늠하는 데는 효율성뿐만 아니라 다양한 언어공동체의 정체성, 문화, 전통의 보호와 전수도 고려돼야 한다. 다시 황소개구리와 청개구리를 생각해보자. 황소개구리의 유입으로 청개구리의 삶의 터전이 파괴되는 것은 단순히 우리가 더는 청개구리의 울음소리를 듣지 못하게 됐다는 아쉬움으로 끝나지 않는다. 황소개구리가 종 다양성을 훼손해 생태계를 파괴하듯이 외국어의 무분별한 유입은 우리의 언어와 그 안에 담긴 우리의 정체성, 전통, 문화까지도 뒤흔들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