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런 시각의 변화에는 중국의 약진이라는 오늘의 현실도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즉 지난 세기 몰락했던 중국이 최근 다시 세계 강자의 지위를 되찾고 있는 상황과 무관치 않다는 것이다.
최근 개봉돼 화제를 모았던 영화 ‘영웅’(사진·감독 장이모)은 그런 분위기를 내비친다. ‘영웅’은 진시황 시대를 배경으로 한 무협극이다. 그러나 현란한 칼 솜씨 경연 뒤에는 음미할 만한 메시지가 들어 있다.
전국 7웅이라 불렸던 일곱 나라가 지배하던 전국시대의 중국 대륙. ‘전국(戰國)’이라는 말이 시사하듯 이들 나라는 패권을 놓고 피비린내 나는 싸움을 벌였다. 그 앞의 춘추시대까지 합하면 기원전 8세기에서 3세기 초까지, 무려 500년간이나 지속된 전란기였다. 전쟁이 그렇게 장기화된 것은 뚜렷한 강자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바로 그때 나타난 사람이 진나라의 왕 영정이었다. 영화는 이미 절반이 넘는 중국 대륙을 평정한 그가 나머지 여섯 국가의 암살 표적이 돼 있던 상황에서 출발한다. 영정을 노리는 무서운 자객이 3명 있었다. 영정은 자신의 주위 백 보 안에 그 누구도 가까이 오지 못하도록 하고 이들의 목에 많은 돈과 관직을 현상금으로 내걸었다. 어느 날 지방의 미천한 장수 무명이 정체 모를 세 개의 칠기상자를 가지고 영정을 찾아온다. 그는 자신이 세 자객을 모두 처치했다고 주장하며 그들의 무기를 증거로 제시한다. 그러나 영화가 결말로 치달으면서 자객들이 영정을 죽이는 걸 포기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이들은 왜 폭군을 암살하는 걸 포기했을까. 거기에 이 영화의 메시지가 들어 있는 셈이다. 그 해답은 한 자객의 말에서 찾을 수 있다. “백성들이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은 전쟁을 끝내는 것, 즉 통일이며 그걸 이뤄낼 수 있는 사람은 영정이다.”
이를테면 천하의 안정과 백성의 안정이라는 ‘대의’를 위해 소의를 희생한다는 얘기다. 어찌 보면 낭만적으로 비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건 오랜 전란에 지친 민중의 염원을 반영한 지극히 현실적인 입장이었다. 그 같은 안정에 대한 욕구는 단지 혼란에 지친 민중의 심정을 반영하는 것만은 아니었다. 당시의 경제적 조건이 안정을 원하고 있었다. 전국시대는 시장경제가 본격적으로 발달하면서 상인계급이 커나가던 시기였다. 프랑스 등 근대 유럽의 역사에서도 봤듯이 상인들은 절대왕정과의 유착을 통해 많은 것을 얻는다. ‘중상주의와 절대왕권의 동거’가 그걸 잘 보여준다. 누구든 창칼만 잘 쓰면 무사가 될 수 있게 된 춘추전국시대에 귀족 지배질서가 무너지면서 새로운 주도계층으로 부상한 신흥 상인들은 안정적인 상업활동을 할 수 있는 체제를 필요로 했다. 영정의 후원자인 여불위가 대상인이었다는 것도 그 같은 배경과 연관이 깊다.
공자 이래의 제자백가가 사상의 자유경쟁을 끝내고 ‘법가’라는 학파가 주류를 이루게 된 것도 같은 이치다. 순자의 성악설을 이어받은 이사와 상앙의 법가는 법과 벌을 내세워 중앙집권적인 체제 안정에 필요한 논리를 제공했던 것이다. 이 영화는 시사회를 여는 과정에서도 재미있는 장면을 연출했다. 의미심장한 장면이기도 했다. 지난해 12월 우리의 국회의사당 격인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시사회를 연 것이다. “진시황이 통일을 이뤘기에 지금의 중국이 있다”고 한 사회자의 말은 진시황에 대한 현재 중국의 시각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공산주의 중국에서 인민의 희생을 강요한 폭압적 군주가 영웅으로 평가받고 있다는 건 아이러니다. 긴 잠에서 깨어나고 있는 ‘거인’ 중국의 기세가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