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촌닭’이라고 표현한 정찬용 청와대 인사보좌관 내정자.
노당선자는 30여분간의 면담을 마친 뒤 참석자 가운데 유독 한 사람에게 “많이 도와달라”며 높은 관심을 나타냈다. 그로부터 9일 후인 2월6일 노당선자는 당시 ‘광주회동’에서 도움을 청했던 정찬용 광주YMCA 사무총장을 청와대 인사보좌관으로 전격 발탁했다.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에 내정된 문재인 변호사가 노당선자와 20년지기인 반면 정찬용 내정자는 노당선자와 이렇다 할 인연이 없다. 정내정자가 노당선자와 첫 대면한 것은 1996년 광주지역 시민단체인 누리문화재단 이사로 있으면서 15대 총선에서 낙선한 노당선자를 광주YMCA로 초청, 강연회를 열었을 때다. 그 뒤 여러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 한두 번 악수를 나눈 게 전부다.
그런 그가 새 정부 고위 공직자 인사와 관련한 인재풀 관리와 전반적인 인사 시스템 개혁 등 중책을 맡게 된 배경은 뭘까. 그의 주변 사람들은 “시민운동가로 깨끗하고 노당선자가 추구하는 개혁을 무리없이 소화해낼 수 있는 인물이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직설적 말투·밀어붙이는 스타일 등 노당선자와 닮은꼴
20년 가까이 YMCA 활동을 함께해 온 이하영 순천YMCA 사무총장은 “정내정자는 직설적인 말투와 원칙을 중시하고 ‘이거다’ 싶으면 밀어붙이는 스타일 등 노당선자와 비슷한 점이 많다”며 “매년 새해에 자신이 직접 제작한 판화를 지인들에게 나눠주는 등 정도 많은 분”이라고 말했다. 정내정자는 81년 ‘마지막 5·18 수배자’로 불렸던 윤한봉씨의 미국 밀항을 성사시킨 막후 주역으로도 유명하다.
정내정자의 인생 역정을 보면 내정 발표 직후 기자회견에서 자신을 ‘촌닭’이라고 표현한 게 이해된다. 전남 영암 출신인 그는 광주제일고(14회)를 졸업한 뒤 서울대 언어학과에 입학했으나 대학원 1학년 때인 74년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돼 12년형을 선고받고 1년간 수감생활을 했다. 당시 유인태 정무수석 내정자, 민주당 이해찬 장영달 심재권 의원, 이철 전 의원, 이강철 민주당 개혁특위 위원, 김재규 부산민주공원 관장 등 노당선자 주변인물들도 함께 구속됐다.
출소 후 갈 곳을 못 찾던 그는 75년 대안학교인 거창고 교사로 부임했다. 그를 거창으로 끌어준 사람은 바로 경남 샛별중 전성은 교장의 부친인 고 전영창 거창고 교장이었다. 75년부터 79년까지 5년간 교편을 잡았지만 그는 교사 자격증이 없는 무자격 강사였다. 자격문제로 교직을 떠난 그는 82년 9월 거창YMCA 총무를 맡으면서 시민운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든다. 이후 거창 가톨릭농민회 결성을 주도하고 거창 YMCA를 모범적인 사회단체로 이끄는 등 17년 세월을 시골인 거창에서 보냈다.
92년 광주지역 선후배들의 요청으로 귀향해 광주YMCA 간사를 맡은 그는 광주시민운동이 뿌리내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광주지역 시민단체를 한데 묶은 ‘광주시민단체협의회’를 결성하고 2000년 4·13총선 때는 광주 전남 정치개혁 시도민연대 공동대표를 맡아 낙천·낙선운동을 주도하면서 광주의 대표적인 시민운동가로 부상했다. 정내정자의 고교 후배인 정용화 전 5·18기념재단 사무처장은 “평소 일처리가 투명하고 정실(情實)과 연고에 얽매이지 않아 선후배들 사이에 선이 굵은 활동가로 통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에게도 시련이 있었다. 2001년 8월 광주YMCA 주최로 섬진강에서 영호남 어린이 여름캠프를 운영하다 어린이 3명이 익사하는 사고가 발생, 사무총장으로 사고를 수습하면서 보상비 지급, 위령탑 건립 등 문제로 곤욕을 치른 것. 이로 인해 정내정자는 ‘독선적이다’ ‘덕이 부족하다’는 평을 듣기도 했다.
도덕과 참신, 개혁으로 대변되는 노당선자의 인사정책을 시민운동가로 활동해온 정내정자가 어떻게 실현해낼 수 있을지 관심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