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미지와 표현 방식에 집중하는 현대 미술은 가끔 관객을 황당하게 만드는 반면, 촬영 대상이 명확한 사진은 누구나 즉각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물론 개중에는 언뜻 보기에 사진인지 회화인지 구별하기 힘든 작품들도 있지만 말이다.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리는 배병우 사진전(7월6~8월18일)과 가나아트센터, 토탈미술관에서 동시에 열리는 ‘지금, 사진은’(7월12~8월4일)의 전시작들은 사진이라기보다는 그림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경향은 동양화와 서양화를 보듯 뚜렷하게 구분된다.
배병우의 작품들은 일련의 수묵 담채화다. 산과 바다, 돌과 하늘이라는 네 가지 자연 주제를 촬영한 그의 사진들은 극도로 조용하고 그윽하다. 그동안 소나무를 촬영한 사진으로 명성을 얻은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의도적으로 소나무 사진을 배제했다. 대형 사진들을 세로로 인화한 후 나란히 건 연작은 8폭 병풍을 연상시킨다.
100여 점에 이르는 출품작들은 대부분 흑백이다. 사진 속의 빛은 아주 미묘하게 움직인다. 작가는 일출과 일몰을 전후한 어스름을 택해 사진을 촬영했다. 바위와 산 같은 사물은 셔터를 3시간 이상 열어두는 장시간 노출로 퍼지는 듯 부드러운 느낌을 강조했다. 흑백의 톤은 투명하고도 깊다.

배병우의 전시가 먹의 농담을 강조한 동양화라면 ‘지금, 사진은’전은 화려한 채색화의 페스티벌이다. 구본창, 김수자 등 국내 작가와 바네사 비크로프트, 안드레아스 거스키, 엘거 에서 등 해외 작가 18명의 근작 100여 점이 등장한 이 전시는 현대 사진의 트렌드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주로 풍경, 민속 등 특정한 주제에 몰두하는 국내 작가들에 비해 해외 작가들은 한층 다양한 기법을 실험하고 있다는 점도 알 수 있다.

이것도 사진인가 싶은 작품들이 주로 등장한 ‘아우라’의 작업들은 흥미롭고도 새롭다. 예를 들면, 로버트 실버스는 작은 조각 사진들을 컴퓨터로 합성해 다이애나비, 마릴린 먼로 등 유명 인사들의 초상을 모자이크 방식으로 재현했다. 예술과 기술의 중간에 위치한 실버스의 사진은 ‘라이프’지 표지를 장식하기도 했다. 흑백사진 위에 유화로 색채를 덧입힌 튠 훅스의 작품들은 르네 마그리트의 초현실주의 회화를 연상시킨다.

19세기 말, 사진이 등장하자 화가들은 더 이상 실물과 똑같이 그리기를 포기했다. 화가 마티스는 초상화에서 팔의 비율이 맞지 않는다고 불평하는 여인에게 이렇게 말했다. “부인, 이것은 팔이 아닙니다. 이것은 그림입니다.” 사진의 탄생은 현대 미술의 등장을 촉발시켰다. 그로부터 한 세기가 조금 지난 지금, 사진은 다시 회화의 분위기로 되돌아가고 있다. 참으로 기묘한 순환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