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방 정상으로는 처음으로 북한을 방문한 예란 페르손(52) 스웨덴 총리.
29세의 젊은 나이에 국회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한 그는 교육부장관, 재무장관에 이어 지난 96년부터 6년째 총리를 맡는 등 화려한 정치적 경력을 갖고 있다. 교육과 자연환경 보존이 경제성장의 기반이라는 철학을 내세우며 국민에게 변함없는 지지를 얻고 있는 그가 한반도의 평화정착에 관심을 기울이면서 일약 국제적인 지도자로 떠올랐다.
마침 올해 1월부터 스웨덴이 유럽연합(EU) 순번제 상임의장국을 맡으면서 그는 자신감을 바탕으로 한반도 평화구축의 든든한 후원자를 자임하고 나섰다.
페르손 총리는 지난 5월3일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4일에는 김대중 대통령과 각각 만나 한반도 정세 등 공동관심사에 대해 논의했다. 정상회담 성과를 떠나 그의 남북한 방문은 조지 W. 부시 미 행정부의 강경한 대북정책 기류와, 미-중 간 군용기 충돌사고, 대북지원에 대한 국민의 반감 등이 조성한 한반도의 복잡한 정세에 새 바람을 불러일으킨 것으로 보인다.
그는 김국방위원장과의 평양 정상회담에서 △2003년까지 북한의 미사일 발사 유예 △김국방위원장의 서울답방 의사 확인 △북한 내 인권 향상을 위한 비정부기구(NGO) 활동보장 등 가시적인 성과를 얻어냈다.
물론 북한측은 미사일 발사유예를 유지하지만 미사일 수출은 계속하겠다는 껄끄러운 입장도 밝혔다. 그럼에도 김국방위원장은 “미국을 적으로 간주하지 않는다”고 여러 차례 강조함으로써 북한도 미국과의 대화를 원한다는 메시지를 그가 간접적으로 전달한 것이다.
페르손 총리가 짧은 체류기간에 이같은 성과를 얻은 비결은 개인적인 정치적 역량과 스웨덴이 갖는 독특한 국가적 위상의 절묘한 조합이라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스웨덴은 제2차 세계대전중 역내 국가들이 침공당했음에도 끝까지 중립을 관철시킨 나라. 또 전쟁이 끝난 뒤에도 중립을 지키기 위해 상당기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유럽공동체(EC)에 가입하지 않을 정도였다.
이같은 경험은 김국방위원장을 만난 자리에서도 빛을 발했다. 김국방위원장은 “제2차 정상회담 시기는 미국의 대북정책 검토가 끝난 뒤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그는 “정치인이란 자주적인 결정을 내려 주도권을 취해야 한다”며 “정상회담이 좋은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스스로 개최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설득한 것. 주체를 강조하는 국가의 수장에게 주체의 진정한 의미를 훈수한 것이다.
페르손 총리가 이처럼 한반도 문제에 관심을 가진 것은 민주화에 헌신한 김대중 대통령에 대한 존경심에서 비롯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유엔 밀레니엄 정상회의(2000년 9월)와 김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 등을 계기로 가진 한국-스웨덴 정상회담에서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한 스웨덴의 협조와 남북한 방문을 약속하면서 적극적인 외교적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이같은 구상이 쉽지만은 않았다. 지난해 남북정상회담 이후 EU 국가들의 대북수교 움직임이 활발했지만, EU 차원의 대북관계 변화에 거부감을 갖는 국가가 적지 않았기 때문.
그는 이같은 난기류를 특유의 뚝심으로 뚫고 나갔다.
그는 이번 방북의 전제조건으로 북한측에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폭넓은 대화 △‘6·15 공동선언’ 이행 △김국방위원장의 서울답방 이행 △핵 미사일, 인권 테러, 경제개혁에 관한 자유로운 문제 제기 등 네 가지 요구를 관철함으로써 EU 국가를 설득했다.
페르손 총리가 이끈 EU의 대북접촉은 한반도 평화정착에 기여한다는 새로운 실험을 이제 막 시작하고 있다. 비록 EU가 한반도에 사활적인 이해관계를 갖지 않았다는 점에서 성과를 장담할 수 없지만 EU의 적극적인 움직임이 북한의 변화와 인식 전환에 중요한 요인이 될 것이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을 것 같다.
29세의 젊은 나이에 국회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한 그는 교육부장관, 재무장관에 이어 지난 96년부터 6년째 총리를 맡는 등 화려한 정치적 경력을 갖고 있다. 교육과 자연환경 보존이 경제성장의 기반이라는 철학을 내세우며 국민에게 변함없는 지지를 얻고 있는 그가 한반도의 평화정착에 관심을 기울이면서 일약 국제적인 지도자로 떠올랐다.
마침 올해 1월부터 스웨덴이 유럽연합(EU) 순번제 상임의장국을 맡으면서 그는 자신감을 바탕으로 한반도 평화구축의 든든한 후원자를 자임하고 나섰다.
페르손 총리는 지난 5월3일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4일에는 김대중 대통령과 각각 만나 한반도 정세 등 공동관심사에 대해 논의했다. 정상회담 성과를 떠나 그의 남북한 방문은 조지 W. 부시 미 행정부의 강경한 대북정책 기류와, 미-중 간 군용기 충돌사고, 대북지원에 대한 국민의 반감 등이 조성한 한반도의 복잡한 정세에 새 바람을 불러일으킨 것으로 보인다.
그는 김국방위원장과의 평양 정상회담에서 △2003년까지 북한의 미사일 발사 유예 △김국방위원장의 서울답방 의사 확인 △북한 내 인권 향상을 위한 비정부기구(NGO) 활동보장 등 가시적인 성과를 얻어냈다.
물론 북한측은 미사일 발사유예를 유지하지만 미사일 수출은 계속하겠다는 껄끄러운 입장도 밝혔다. 그럼에도 김국방위원장은 “미국을 적으로 간주하지 않는다”고 여러 차례 강조함으로써 북한도 미국과의 대화를 원한다는 메시지를 그가 간접적으로 전달한 것이다.
페르손 총리가 짧은 체류기간에 이같은 성과를 얻은 비결은 개인적인 정치적 역량과 스웨덴이 갖는 독특한 국가적 위상의 절묘한 조합이라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스웨덴은 제2차 세계대전중 역내 국가들이 침공당했음에도 끝까지 중립을 관철시킨 나라. 또 전쟁이 끝난 뒤에도 중립을 지키기 위해 상당기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유럽공동체(EC)에 가입하지 않을 정도였다.
이같은 경험은 김국방위원장을 만난 자리에서도 빛을 발했다. 김국방위원장은 “제2차 정상회담 시기는 미국의 대북정책 검토가 끝난 뒤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그는 “정치인이란 자주적인 결정을 내려 주도권을 취해야 한다”며 “정상회담이 좋은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스스로 개최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설득한 것. 주체를 강조하는 국가의 수장에게 주체의 진정한 의미를 훈수한 것이다.
페르손 총리가 이처럼 한반도 문제에 관심을 가진 것은 민주화에 헌신한 김대중 대통령에 대한 존경심에서 비롯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유엔 밀레니엄 정상회의(2000년 9월)와 김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 등을 계기로 가진 한국-스웨덴 정상회담에서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한 스웨덴의 협조와 남북한 방문을 약속하면서 적극적인 외교적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이같은 구상이 쉽지만은 않았다. 지난해 남북정상회담 이후 EU 국가들의 대북수교 움직임이 활발했지만, EU 차원의 대북관계 변화에 거부감을 갖는 국가가 적지 않았기 때문.
그는 이같은 난기류를 특유의 뚝심으로 뚫고 나갔다.
그는 이번 방북의 전제조건으로 북한측에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폭넓은 대화 △‘6·15 공동선언’ 이행 △김국방위원장의 서울답방 이행 △핵 미사일, 인권 테러, 경제개혁에 관한 자유로운 문제 제기 등 네 가지 요구를 관철함으로써 EU 국가를 설득했다.
페르손 총리가 이끈 EU의 대북접촉은 한반도 평화정착에 기여한다는 새로운 실험을 이제 막 시작하고 있다. 비록 EU가 한반도에 사활적인 이해관계를 갖지 않았다는 점에서 성과를 장담할 수 없지만 EU의 적극적인 움직임이 북한의 변화와 인식 전환에 중요한 요인이 될 것이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