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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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에서 ‘부패의 상징’으로 전락

  • 입력2005-03-17 14:3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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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희망’에서 ‘부패의 상징’으로 전락
    인도네시아가 제2의 필리핀이 될 것인가.’ 그동안 부패 스캔들에 휘말려 온 압둘라만 와히드(60) 인도네시아 대통령이 ‘시민혁명’(피플 파워)으로 쫓겨난 조지프 에스트라다 필리핀 대통령의 전철을 밟고 있다.

    수하르토의 32년 철권통치를 벗어나 인도네시아 역사상 처음으로 민주적 선거를 통해 당선된 그는 15개월 전만 해도 국민에게 새 희망의 상징이었다. 뇌일혈로 잃은 한쪽 눈과 불편한 거동이 가끔 엉뚱한 오해를 불러일으키긴 했지만, 30여년 간 종교계를 이끌던 그는 국민의 존경을 한몸에 받는 원로였다. 맨발의 소탈한 ‘서민대통령’, 그의 모습에서 국민은 민주주의의 기쁨을 맛보았다.

    와히드는 자바섬의 이슬람교 명문 집안 출신으로, 젊은 시절을 이집트와 이라크 등에 유학해 아랍문학과 이슬람 교리를 공부하며 보냈다.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1984년 할아버지가 창설한 인도네시아 이슬람단체인 나둘라툴 울라마(NU)의 회장에 취임하면서 15년간 이 단체를 이끌게 된다. ‘와히드’란 이름이 종교간의 화해와 지역사회운동의 상징이 된 것도 바로 이때부터.

    4000만명의 회원을 가진 최대 종교단체 NU를 이끌던 그는 자바섬의 지역 발전과 농민운동에 기여한 공로로 ‘막사이사이상’을 수상하면서 정계에 진출한다.

    지난 99년 당시 인도네시아는 1967년부터 장기 집권한 수하르토에 의해 부정부패로 얼룩져 있었다. 그는 각종 종교와 정치 분쟁의 탁월한 중재자로 능력을 발휘했고 국민은 그를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대통령으로 취임한 지 불과 1년 만에 잦은 외유와 경제위기에 따른 정부의 무능이 드러나면서 ‘와히드의 신화’는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결국 지난해, 전속 안마사가 45억원의 구호자금을 빼돌린 사건과 브루나이 국왕으로부터 받은 25억원의 기부금 착복사건에 그가 연루된 것으로 드러나면서 비극의 서막이 올랐다. 국회 특별위원회가 지난 석 달 간의 조사 끝에 혐의사실을 인정하며 그에게 해명을 요구하는 공개질의서를 채택함으로써 와히드 탄핵 수순에 돌입한 것.

    대학생과 시민으로 구성된 반정부 시위대도 연일 대통령궁과 국회에서 ‘와히드 하야’를 요구하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지난해 10월부터 시작된 인도네시아 사태의 최대 변수는 군부와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54) 부통령의 움직임이다.

    수하르토 철권 통치의 기반이 된 군부가 ‘국회 결의’를 계기로 와히드에 대한 지지를 철회할 움직임을 보이면서 그의 정치생명 또한 벼랑으로 몰리게 된 것.

    그는 측근인 모하마드 마후드 국방장관을 통해 사태 수습에 나섰지만 육군 지도부가 지난 2일 ‘군은 앞으로 대통령이 아닌 국가와 헌법에 충성할 것’을 다짐하면서 정국은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혼미의 안개 속에 휩싸여 있다.

    제1당인 민주투쟁당(PDIP·153석)과 제2당인 수하르토 전 대통령의 골카르당(120석)이 와히드를 비난하고 있는 상황에서 반정부시위가 더욱 거세질 경우 와히드가 소속된 국민각성당(PKB·51석)과 군부조차 그에게 등을 돌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여기에다 유스릴 마헨드라 법무장관에 이어 메가와티 부통령마저 반(反)와히드 세력으로 돌아선다면 와히드의 몰락은 더욱 가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그는 부패혐의를 전면 부인하며 “전혀 대통령직을 사임할 뜻이 없다”고 맞서고 있다. 오히려 정치권 인사에 대한 대대적 사정을 시사하며 정국 반전을 시도하고 있는 상태다.

    ‘부패의 상징’으로 전락한 와히드의 해명을 인도네시아 국민이 믿어줄 것인가.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지 못한다면 그에게 남는 것은 대통령궁을 떠나는 결단뿐인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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