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이브가 세계시장을 겨냥해 만든 걸그룹 캣츠아이. 멤버 라라(왼쪽에서 두 번째)가 3월 24일 팬덤 플랫폼에서 자신이 성소수자임을 선언했다. 동아DB
이전에도 성소수자 정체성을 공개한 K팝 아티스트는 있었다. 라이오네시스, 홀랜드, 큐아이엑스(QI.X) 등이다. 그러나 이들은 대부분 비교적 소규모 자본으로 기획됐고, 활동 무대 또한 지상파 음악방송 등 소위 ‘주류 K팝’ 세계와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 라라는 굴지의 대형 기획사 소속 현업 아이돌로서 처음 커밍아웃한 사례라 하겠다.
K팝 세계화에 기여한 성소수자 커뮤니티
K팝과 성소수자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K팝이 세계시장에서 성장하는 데 전 세계 성소수자 커뮤니티가 크게 기여한 것은 기정사실이다. 크리에이티브를 담당하는 이들 중에도 성소수자는 얼마든지 있다. K팝이 활용하는 음악이나 안무 요소 중에는 성소수자 문화로서 뿌리 깊은 전통을 자랑하는 것이 많다. 팬들이 즐기는 멤버 간 관계성도 성 다양성의 확장된 맥락에 위치한다. 그러나 공식적으로는 어떤 아티스트도 성소수자가 아니다. 이 문제를 거론하는 것조차 금기시된다. K팝이 종종 성소수자들을 ‘낚아’ 잇속만 챙긴다(‘퀴어베이팅’)는 비판을 받는 이유다.
사실 캣츠아이를 비롯한 ‘현지화 그룹’은 이미 K팝의 다양성에 기여하기 시작했다. 동아시아계 얼굴이라는 표준에서 벗어난 다양한 외형의 외국인을, 조금 넓은 의미에서 K팝 안으로 끌어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봐도 K팝 같기만 한 콘텐츠에, 어떻게 봐도 동아시아인이 아닌 인물이 한꺼번에 등장하는 것을 보는 일은 어떤 돌이킬 수 없는 ‘체험’을 제공한다. 거기에 성정체성의 다양성마저 더해진다니, K팝의 다양성과 포용이 큰 걸음을 내딛는 순간이다. 라라의 용기 있는 선언에 축하와 감사를 보낸다.
원한다면 “캣츠아이는 K팝이 아니다”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멤버 대부분이 외국인이고, 외국 기업이 합작했으며, 가사 또한 영어니까. 하지만 일본에서는 캣츠아이가 지난해 12월 31일 특별방송에 초청받아 무대에 섰다. K팝의 ‘순수성’에 대한 관심이 조금은 덜한 곳에서는 이들이 K팝 아티스트와 별 차이 없이 받아들여지는 셈이다. 결국 K팝을 바라보는 창문의 넓이에 따라 K팝 세계의 다양성이 양극화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넓은 창에서는 다양성이 커질 가능성이 있고, 좁은 창 안쪽은 쉽게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편협’한 시선이 아니길 바라기에는 K팝이 이미 멀리 온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