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블리즈가 데뷔 10주년을 기념하는 스페셜 디지털 싱글 ‘닿으면, 너’를 선보였다. [울림엔터테인먼트 제공]
최근 걸그룹의 재결성이 종종 눈에 띈다. 8년 만에 모여 콘서트를 개최한 투애니원(2NE1), 예전에 활동한 곡을 새롭게 가다듬어 완전체로 발표한 피에스타(FIESTAR)는 물론, 내년 재결성을 예고한 여자친구(GFRIEND)도 있다. 한동안 K팝 세계에서 걸그룹은 계약기간 만료 혹은 석연치 않은 이유로 그저 해체하거나, 공식적인 해체 선언 없이 사실상 활동을 종료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변화가 생겼다고 할 만한 시점은 2017년이다. 투애니원은 조금 갑작스러웠지만 고별 싱글을 발표하며 활동을 일단락했다. 원더걸스는 데뷔 10주년 되는 날 고별 싱글을 발매해 활동 10년을 꼬박 채우고 마침표를 찍었다. 소녀시대는 10주년에 정규 앨범을 내고 활발하게 활동했으며, 2022년에도 5년 만에 앨범을 발표했다. 대중적 인기를 바탕으로 단기간 활동하는 것이 종래 걸그룹의 일반론이었다면, 보이그룹에게도 쉽지 않은 10년을 채우거나 이후까지 지속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입증한 셈이다. 최근 걸그룹 재결성은 이 같은 선례의 어깨 위에 서 있다. 또한 아이돌들이 뜨겁게 달구던 시대의 추억과 좀 더 가시적으로 팬덤화한 걸그룹 세계의 변화도 작용한다고 하겠다.
러블리즈만의 특색 고스란히
‘닿으면, 너’는 러블리즈의 가장 사랑받았던 곡들의 특징을 잘 살렸다. 힘차게 내딛다가 리드미컬하게 임팩트를 주는 비트, 달콤한 일렉트로닉 사운드의 예쁜 공간감, 멤버들의 개성적이고 결 고운 음색으로 담아낸 애틋한 멜로디 같은 것들이다. 잃어버릴 듯한, 혹은 이미 잃어버렸을지도 모르는 소중한 대상은 러블리즈가 초기부터 꾸준히 그려온 주제 의식이다. 그러나 마냥 여리지만은 않다. 그리움과 슬픔을 넘어서 어떻게든 붙잡고 되찾으려는 의지의 표현은 이들을 ‘청순파’에 한정 짓지 않게 하는 단단함이다. 더 단순하고 명쾌했다면 상업적 반향이 더욱 컸을지도 모를 일이다. 실제로 러블리즈의 디스코그래피는 그 태도의 우아함과 흥행성 사이 줄다리기로 이어졌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다만 이 같은 아스라함이 러블리즈와 그 음악을 아끼는 이들에게는 더 큰 애착으로 이어졌다고 분명히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또한 공교롭다고 해야 할까. ‘닿으면, 너’는 러블리즈의 익숙한 세계를 그대로 연장하면서도 10주년 귀환과도 꼭 맞아떨어지는 메시지가 됐다. 우연이라기에는 절묘할 정도로.
팬덤은 아티스트를 소비하고 응원하는 데 그치지 않고, 아티스트와 함께 성장하거나 살아나가기도 한다. 활동을 중단했던 아이돌 그룹이 돌아올 때 그 뒤에는 팬덤과 아티스트가 함께 쌓은 추억의 시간이 전제된다. 반가움 외에도, K팝이 다른 어떤 연예 산업보다 끈끈하게 형성하는 팬덤-아티스트 관계의 실체와 그 시간의 무게를 새삼 느끼게 되는 대목이다. 때로 아이돌 산업은 아티스트를 단순한 상품으로 간주하기도 하지만, 활동이 시작되고 팬덤이 형성되는 순간 한 아티스트에게는 그 이상의 의미가 덧입혀진다. 어쩌면 ‘닿으면, 너’와 러블리즈는 그 묵직함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은 상징적 존재가 될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