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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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소·고발 이전투구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 해외 경쟁업체엔 대형 호재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설계 유출 사건 갈등 재점화… 집안싸움에 멍드는 K-방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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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우정 기자

    friend@donga.com

    입력2024-05-21 09: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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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년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유럽 안보 위기가 고조된 직후 국내 한 방산 기업은 “폴란드 정부가 러시아 위협에 맞서 대규모 무기 구매 계획을 수립했다”는 고급 정보를 입수했다. 해당 기업은 이 사실을 즉시 다른 국내 방산업체들과 공유했다. 해외 경쟁사들보다 한발 앞서 정보를 확보한 덕에 한국 방산업계는 폴란드를 중심으로 큰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폴란드 측 정보를 전달해준 업체 대표에게 방산업계 사장들이 사의를 표하며 식사를 대접했다는 후문도 있다. 업계 관계자가 밝힌 K-방산 신화의 ‘훈훈한’ 뒷이야기다.

    방산 기업들은 치열하게 경쟁하는 라이벌이지만 때론 긴밀한 파트너십으로 ‘윈윈(win-win)’하기도 한다. 그런데 유독 해양 방산 분야에선 국내 양대 기업이 얽히고설킨 구원(舊怨)으로 고소·고발전이 끊이지 않고 있다.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설계 유출 사건을 둘러싼 갈등이 재점화된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 얘기다. 방산업계 안팎에선 “두 국내 기업의 ‘전쟁’이 계속될 경우 해외 군함 수주전에서 자칫 외국 기업이 어부지리를 얻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HD현대중공업 로고(위)와 한화오션 로고. [HD현대중공업, 한화오션 제공]

    HD현대중공업 로고(위)와 한화오션 로고. [HD현대중공업, 한화오션 제공]

    KDDX 설계 유출부터 ‘명예훼손’ 사건까지

    최근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은 ‘명예훼손’ 사건으로 새 갈등 국면을 맞았다. 한화오션이 3월 “KDDX 관련 군사기밀 유출 과정에 HD현대중공업 임원이 개입한 정황이 있다”고 주장했는데, HD현대중공업 측이 허위사실이라며 법적 대응에 나선 것이다. HD현대중공업 직원들은 5월 3일 한화오션 임직원이 “잘못된 수사 기록을 언론에 공개해 명예가 훼손됐다”며 허위사실 적시 및 명예훼손 혐의로 이들을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에 고소했다. 지난해 11월 대법원은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의 KDDX 개념설계도를 불법 유출한 HD현대중공업 직원 9명에 대해 유죄를 확정한 바 있다. 이들 직원이 2012년 10월부터 약 3년간 당시 대우조선해양의 KDDX 관련 자료 등 군사기밀 12건을 불법적으로 취득하고 회사 내부망을 통해 공유하는 등 군사기밀보호법을 위반했다는 게 대법원 판단이다.

    법원 판결로 일단락됐나 싶었던 두 기업 간 분쟁은 올해 들어 다시 불거졌다. 2월 방위사업청이 “대표나 임원의 개입 등 청렴 서약 위반은 없었다”는 이유로 행정지도 처분을 내리면서 HD현대중공업이 KDDX 사업 입찰에 참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에 대해 한화오션은 3월 기자설명회를 열고 HD현대중공업 임원의 개입이 의심된다며 판결문과 재판 증거 목록, 재판 기록을 공개했다. 이때 한화오션은 HD현대중공업 직원이 “군사기밀을 열람·촬영해 활용한 것을 회사 상급자들이 알고 있었다”는 취지로 진술한 피의자 신문조서를 공개하는 등 강공에 나섰다. 그러면서 “KDDX 개념설계도 유출에 HD현대중공업 임원이 개입한 정황을 수사해달라”며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에 고발장을 냈다. 이에 맞서 HD현대중공업 측은 “피의자 신문조서 일부만 의도적으로 발췌해 악의적으로 편집하고 임원이 개입한 것처럼 둔갑시켰다”며 한화오션 관계자들을 고소한 것이다.

    호주·캐나다 등 수십조 원 규모 사업 앞뒀는데…

    HD현대중공업이 건조한 이지스 구축함 정조대왕함. [HD현대중공업 제공]

    HD현대중공업이 건조한 이지스 구축함 정조대왕함. [HD현대중공업 제공]

    KDDX 사업은 2030년까지 7조8000억 원을 들여 6000t급 한국형 차세대 구축함 6척을 건조하는 초대형 프로젝트다. 올해 하반기 입찰 예정인 1번 함 수주를 놓고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이 양강 구도를 이루며 경쟁하고 있다. KDDX 사업은 그 자체로도 규모가 클 뿐 아니라, 글로벌 해양 방산시장에 본격 진출하려는 두 기업으로서는 포기할 수 없는 시금석과도 같은 일감이다. 한국 해양 방산업계 양대 강자인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의 군함 건조 능력은 국내뿐 아니라,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수준이다. HD현대중공업은 1975년 첫 국산 전투함 울산함을 시작으로 이지스 구축함 배치(Batch)-Ⅰ·Ⅱ를 개발한 수상함 명가다. 한화오션은 1981년 방산업체로 지정된 후 해군 구축함의 모든 라인업을 건조한 이력을 갖고 있으며, 특히 잠수함 분야 강자로 꼽힌다.



    문제는 호주, 캐나다 등 해외 대규모 군함 도입 사업을 앞둔 상황에서 두 기업 간 갈등이 커질 경우 자칫 한국 방산의 핸디캡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수상 전투함, 잠수함 등 특수선 분야는 한국 방산의 성장 잠재력이 큰 분야로 평가된다. 최근 세계 각국 해군이 군비 증강에 나서 ‘큰 장’이 선 데다, 척당 금액과 후속 군수지원 규모도 크기 때문이다. 최근 호주는 향후 10년간 111억 호주달러(약 10조 원) 규모의 차기 호위함 11척 구매 계획을 밝혔다. 이 중 선도함을 비롯한 3척을 해외에 발주하고 나머지 8척은 자국에서 기술지원을 받아 건조할 방침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5월 9일 취임 2주년 기자회견에서 정부가 수주 노력을 하고 있다고 언급한 사업이다. 캐나다 해군은 3000t급 신형 잠수함을 최대 12척 발주할 예정으로, 사업 규모가 600억 캐나다달러(약 60조 원)에 달한다. 이 같은 해외 특수선 수주전에서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 모두 물밑 경쟁을 벌이고 있다.

    한국 조선(造船) 기술은 세계 최정상급이고 K-방산도 순풍을 탔다고는 하지만, 해외 군함 수주 결과를 아직까진 낙관하기 이르다. 일본, 독일, 프랑스 등 쟁쟁한 경쟁자가 즐비하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방산 수출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일본은 해외 수주전에서 ‘원팀’을 구성하고 나와 강력한 라이벌로 부상했다. 그간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은 한국 해군이 발주한 수상함, 잠수함을 번갈아 수주하며 건조 능력을 쌓아왔다. 해외 수주전에서도 두 기업이 기본적으로 같은 모델을 변주하는 방식으로 입찰할 공산이 크다. 수주전에서 선의의 경쟁을 넘어서 선을 침범할 경우 두 기업 모두에 부정적 영향을 초래할 수 있다.

    방산 수출 본격화 일본 등 경쟁자 즐비

    한화오션이 건조한 잠수함 도산안창호함. [뉴시스]

    한화오션이 건조한 잠수함 도산안창호함. [뉴시스]

    국내 방산업계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 간 갈등이 원한 수준으로 깊기에 당장 해결은 어렵겠지만, 해외 수주에서 타국 기업에 대형 호재를 주지 않으려면 출구전략을 모색해야 한다”며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해외 경쟁업체 입장에선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이 한국에서 고소·고발전을 계속 벌이는 게 무척이나 고마울 것이다. 외국 정부에 ‘한국 기업들이 이렇게 진흙탕 싸움을 하는데, 믿고 군함 건조를 맡길 수 있겠느냐’는 식으로 접근하면 유력한 두 업체를 밀어낼 수 있지 않겠나. 만에 하나 수주전이 본격화된 상황에서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이 해외 당국이나 언론을 통해 물밑에서 서로 비방한다면 그야말로 함께 망하는 것이다. 그보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두 기업이 과열 경쟁 끝에 어느 한쪽이 초저가로 일감을 따내는 경우다. 자존심 싸움에서 승리한 업체는 사업 결과 오히려 적자를 보고 결과물 품질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한국 방산 이미지 자체가 추락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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