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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클이 남긴 ‘트라우마’, 평정심 찾는 데 부담된다

불의의 태클 사고, 손흥민과 이강인은 심리적 부담 떨쳐야

태클이 남긴 ‘트라우마’, 평정심 찾는 데 부담된다

손흥민(토트넘 홋스퍼)의 태클로 부상을 입은 안드레 고메스(에버턴 FC)의 상태를 동료들이 확인하고 있다. [뉴시스]

손흥민(토트넘 홋스퍼)의 태클로 부상을 입은 안드레 고메스(에버턴 FC)의 상태를 동료들이 확인하고 있다. [뉴시스]

평상시보다 과열됐다. 경기를 관장한 마틴 애킨슨 주심이 통제력을 잃으면서 더욱 심해졌다. 공과 상관없이 부대끼는 선수들이 늘었고, 노골적으로 거친 플레이가 나오기 시작했다. 밑으로 뚝 떨어진 양 팀의 성적은 부담을 더욱 증폭했다. 평소 중상위권을 탐하던 홈팀 에버턴 FC도, 지난해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준우승을 한 토트넘 홋스퍼도 승점 3점이 너무도 절실한 2019/2020 잉글리시프리미어리그 11라운드. 

결국 사고가 터지고 말았다. 선발 출격해 델레 알리의 선제골을 도운 손흥민이 후반 33분 상대 패스를 추격했다. 자신의 수비 범위를 넘어선 터라 발을 쭉 뻗는 태클로 상대팀 안드레 고메스를 방해하려 했다. 의도와 달리 고메스의 오른발이 손흥민의 몸 아래로 말려 들어갔고, 뒤에서 기다리던 서지 오리에와 충돌하면서 완전히 꺾여버렸다. 비정상적으로 휜 발목에 관중은 경악했고, 손흥민의 얼굴도 잿빛이 됐다. 손흥민은 당황스러워하더니 이내 오열했다. 검진 없이 육안으로도 고메스의 골절이 확인될 만큼 상태는 심각했다. 주심이 레드카드로 정정하는 사이, 되레 상대팀 선수들이 다가와 손흥민을 다독였다.


양날의 검 슬라이딩 태클

자신의 태클로 큰 부상을 입은 고메스를 보며 충격에 빠진 손흥민(왼쪽)과 들것에 실려 나가는 고메스. [뉴시스]

자신의 태클로 큰 부상을 입은 고메스를 보며 충격에 빠진 손흥민(왼쪽)과 들것에 실려 나가는 고메스. [뉴시스]

이는 전 세계적으로 이슈가 됐다. 발롱도르 후보 30인에 오를 만큼 인정받은 손흥민과 명문클럽 FC 바르셀로나 출신으로 잉글랜드 무대에서 재기하려던 고메스의 충돌이었다. 더욱이 그 과정이 고스란히 담긴 영상과 너덜너덜해진 발목의 세부 사진이 웹을 통해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여러 축구 지도자와 전문가뿐 아니라, 영국 공영방송 BBC의 패널 등도 해당 사안에 대해 논했다. “끔찍한 장면이지만 고의는 아니었을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하물며 상대팀 주장 셰이머스 콜먼이 경기 뒤 원정팀 라커룸을 찾아 손흥민을 위로했고, 적장 마르코 실바 역시 “나쁜 의도로 그런 태클을 한 것은 아니리라 100% 확신한다”고 부연했다. 

국내에서 태클이 이토록 화두가 된 적이 있을까 싶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달에는 발렌시아 CF 이강인이 슬라이딩 시도 후 퇴장당한 바 있다. 유럽 리그를 누비는 한국 축구의 에이스, 현재와 미래를 책임질 핵심 인물로 꼽혀온 이들이다. 평소 태클을 즐기는 스타일도 아닐뿐더러, 이와는 어느 정도 거리가 있는 포지션이다 보니 의아한 구석도 있었을 테다. 

보통 태클은 ‘최후의 수단’으로 꼽힌다. 도박성이 짙은 만큼 장단점도 극명하다.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태클은 단순히 공 탈취를 넘어 경기 흐름까지 바꿔놓곤 한다. 특정 개인의 허슬 플레이가 팀 전체를 휘감은 기운을 몰라보게 띄운다. 반대로 한번 몸을 날리면 끝이라는 생각도 배제해선 안 된다. 먼저 드러누워서는 달려가는 상대를 2차 제어하는 게 상식적으로 불가능하다. 파울성 플레이가 나올 확률도 무척이나 높다. 카드를 받을 위험은 물론, 그렇게 내준 프리킥이나 페널티킥이 실점으로 연결될 수도 있다. 그렇다 보니 수비수나 수비형 미드필더가 위험 진영에서 상대를 저지하려는 마지막 몸부림 정도로 여길 만하다. 



지난달 이강인에 이어 이번 손흥민까지 조금은 낯설게 느껴진 것도 그 때문. 이들이 태클로 레드카드를 받은 지점은 중앙선을 갓 넘은 아군 진영이었다. 전방 압박 과정에서 그런 장면이 나올 법도 했지만, 보통 지도자들은 이 위치에서 “따라가라”는 말을 많이 한다. 어차피 상대보다 출발점이 뒤거나, 속도 또는 판단력이 떨어졌다면 부지런히 쫓아만 가라는 것이다. 뒤에 머무는 동료가 상대를 지연할 때 함께 옭아맬 여지를 열어두자는 취지다. 태클을 하면 괜히 커버하는 속도만 늦출 우려도 있다.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한 발짝이 만든 참사

이강인(발렌시아 CF)이 산티아고 아리아스(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게 백태클을 시도해 퇴장당하는 모습. [gettyimages]

이강인(발렌시아 CF)이 산티아고 아리아스(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게 백태클을 시도해 퇴장당하는 모습. [gettyimages]

즉 두 선수의 태클은 모두 무리일 수 있었다. 먼저 이강인의 사례. 상대가 이미 한두 발 뻗어 속도를 붙였고, 이를 지켜보는 모두가 추격자 이강인이 늦었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자신이 맡은 진영을 책임지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나, 결국 공을 훔치려던 왼발 축구화 스터드가 상대 정강이를 조준했다. 공 대신 애꿎은 상대팀 선수의 스타킹만 찢어놨다는 건 태클하겠다는 판단이나 실행 타이밍이 모두 늦었다는 방증이다. 

위험한 건 매한가지나, 손흥민의 상황은 그보다 살짝 더 빨랐다. 어떻게 보면 상대적으로 설득력도 있었다. 축구에서 압박을 하는 결정적 조건 가운데 하나는 공이 옆으로 빠졌을 때다. 전 지역이 360도로 오픈된 중원과 달리, 측면은 옆줄로 180도가 막혀 있다. 즉 압박을 가했을 때 상대가 빠져나갈 곳이 제한돼 있다. 속도를 높여 접근하고 때로는 태클로 막기에도 용이하다. 특히 쐐기를 박으려면 추가골이 절실하던 토트넘. 손흥민의 거친 태클이 다소 격앙돼 보이긴 했어도 터부시될 일 또한 아니었다. 다만 그 결과가 불행했다. 미끄러져 깊숙이 들어간 발은 되돌릴 수 없었고, 그 후 오리에와 충돌까지 해 상대 선수의 발목이 부러지고 말았다.


피해 선수만큼 다친 손흥민의 마음

이들의 선택이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다. 유럽 축구는 훨씬 더 빡빡하다. 상대와 경쟁 이전에 팀 내 포지션 경쟁부터 이겨야 한다. 모두가 매 장면 절박하게 쏟아붓는 이유다. 개인적으로는 이를 ‘양질의 경쟁’이라고 보는데, 격렬한 다툼을 통해 개인이 뽑아내는 에너지도 덩달아 뛴다는 것을 확인했다. 국내에서는 훈련이나 연습경기를 할 때 흔히 “안 다치게 해”라는 말을 하지만, 유럽은 훈련장이 더 빡빡한 순간도 있다. 10대 때부터 유럽에서 성장한 손흥민이나 이강인은 이런 환경에 익숙하다. 더 잘하려다 보니 이런 무리한 동작도 나오는 것이다. 상대를 해할 수도 있는 아슬아슬한 경계에서 말이다. 

이제 걱정되는 건 선수 개인의 트라우마다. 축구를 놓고 ‘심리게임’이라는 표현을 많이 쓴다. 세계적 강팀들이 멘털 코치를 두기 시작한 것도 이 때문. 공을 다루는 기술과 이를 구현해내는 피지컬이 축구의 필수요소인 건 맞다. 다만 이 모든 것의 바탕이 되는 정신적인 부분도 나날이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들은 동기를 불어넣는 것은 물론, 위기관리 차원에서 어떻게 극복할지에 대한 솔루션도 제공한다. 중차대한 일을 겪은 선수가 얼마나 확실히, 얼마나 빨리 평상심을 되찾을 수 있느냐 하는 부분에 관여함으로써 커리어 지속 여부를 좌우하기도 한다. 

이강인도 지난달 태클 이후 죄책감에 눈물을 쏟았고, 라커룸에서 울고 있던 그에게 베테랑들이 다가가 위로했다고 한다. 다행히 파울 결과가 그렇게 나쁘지 않았고, 출장 정지가 풀린 뒤 곧장 돌아왔다. 다만 손흥민의 경우엔 심각하다. 이제 갓 프로에 데뷔한 이강인보다 훨씬 더 많이 경험했어도, 꺾인 발목을 눈앞에서 목격한 충격은 당사자가 아닌 마당에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다. 이런 끔찍한 파울은 피해자는 물론, 가해자에게도 꽤 오래 남을 수밖에. 현지 보도에 따르면 토트넘 구단은 현재 전임 심리상담사를 두고 있지 않지만, 손흥민의 트라우마 극복을 위해 별도의 조치를 취할 전망이다. 

결국 시간이 필요한 문제다. 에버턴 측은 “고메스가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쳤고 최소 4개월 정도 회복 기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공식 발표했다. 손흥민은 11월 4일 3경기 출장 정지를 받았지만 이틀 뒤 구단의 항소로 출장 정지가 해제됐다.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나 A매치 출격에는 제한이 없다. 에이스를 마냥 아낄 수도 없는 게 토트넘과 한국 국가대표팀의 속사정. 심리적으로 크게 타격받은 손흥민이 바로 제몫을 해낼 수 있을지는 더 지켜봐야 할 것이다.






주간동아 2019.11.08 1213호 (p70~72)

  • 홍의택 축구칼럼니스트 releasehon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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