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평양 휘젓고 다닌 중국 해군
미 해군 항공모함 조지 워싱턴함. [미 해군 제공]
서태평양에서 미국 항모 전단이 사라진 가운데, 그 공백을 채워야 할 강습상륙함 전단은 한미연합훈련으로 모두 한반도 근해로 이동했다. 이에 중국은 그야말로 폭주하기 시작했다. 중국 해군은 현재 보유한 항모 3척을 모두 바다로 내보냈다. 남중국해에는 산둥(CV-17), 서해에는 랴오닝(CV-16)이 떴고, 최신형 푸젠(CV-18) 항모도 한 달 사이 두 차례 시운전과 함께 함재기 훈련을 시작했다. 중국 해군은 대만 해역에서 대형 상륙함은 물론, 민간 선박까지 동원한 대규모 상륙훈련을 벌였고, 필리핀 해역에선 한 달 사이 7차례나 필리핀 측과 충돌을 일으켰다.
항모 전력은 초강대국 미국의 힘을 상징한다. 존재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억제력을 발휘한다. 미국이 적잖은 어려움과 비용을 감수하면서까지 서태평양에 항상 항모를 1척 이상 배치해온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지금 미국은 서태평양에 한 달 이상 항모를 배치하지 않고 있다. 이미 한반도 근해에 왔어야 할 조지 워싱턴함은 대체 미 본토에서 무엇을 하기에 출항이 미뤄지는 것일까.
사진 속 ‘VFA-195’ 의미
8월 20일(현지 시간) 스티븐 쾰러 미 해군 태평양함대 사령관(왼쪽 두번째)이 네바다주 팰런 해군항공기지를 찾아 제5항공모함항공단(CVW-5) 소속 F/A-18E 슈퍼호넷 전투기를 배경으로 장병들과 기념사진을 찍었다. 원 안에 ‘VFA-195’ (제195해군전투 공격비행대)라는 글자가 보인다. [미 해군 제공]
사진에 등장한 F/A-18E 전투기 동체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VFA-195’라는 글자가 적혀 있다. VFA-195는 제195해군전투공격비행대의 약칭으로, 이 부대는 미 해군 설명대로 CVW-5 소속이다. CVW-5는 F/A-18E/F 전투기를 운용하는 3개 전투공격비행대와 F-35C 전투기를 운용하는 1개 전투공격비행대로 구성된다. 이들 전력의 주둔지는 일본 이와쿠니 해병항공기지다. 다시 말해 원래 일본에 있어야 할 전투기가 최근 미국 본토로 복귀한 로널드 레이건함에 실려 팰런 기지로 이동해 왔다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팰런 기지가 어떤 임무를 주로 수행하는 곳인지도 중요하다. 이 기지는 2022년 개봉해 인기를 끈 톰 크루즈 주연 영화 ‘탑건: 매버릭’의 배경이다. 해군 타격 및 공중전 센터, 일명 ‘톱건스쿨(Top Gun School)’이 있는 곳이다. 톱건스쿨은 미 해군 항공전투개발센터 산하 조직으로, 영화에서 잘 묘사된 것처럼 전투 조종사가 작전 투입에 앞서 실전과도 같은 훈련과 신무기 운용 교육을 받는 곳이다. 이곳에는 한국군 육군과학화전투훈련단(KCTC)의 최정예 대항군 ‘전갈부대’와 같은 역할을 하는 제13가상적기비행대(VFC-13)는 물론, 민간군사기업 베테랑 파일럿도 상주해 있다. 적성국 방공장비와 전략 표적을 본뜬 실감 나는 모의 폭격 훈련장도 있어 실전 같은 훈련이 가능하다.
미 해군이 이번에 공개한 사진에서 또 주목해야 할 부분은 F/A-18E 전투기에 장착된 무장이다. 이 전투기에는 8월 환태평양군사훈련(RIMPAC)에서 첫 공개된 최신형 미사일 AIM-174B 2발이 달려 있었다. 만능 미사일로 불리는 일명 ‘공중 발사형 SM-6’다. SM-6는 기존 SM-2를 보강하기 위한 장거리함대공미사일로 개발됐다. 사거리는 370㎞에 달하며 항공기·순항미사일·드론 같은 통상적인 공중 표적은 물론, 전술탄도미사일이나 군함, 지상 표적도 공격할 수 있다. 기존 SM-2와 달리 능동유도장치를 갖춘 SM-6는 발사 후 알아서 표적을 찾아가기 때문에 여러 개 표적과 동시에 교전할 수 있다. 데이터링크를 통해 중간에 목표물을 변경하는 것도 가능하다. 현재 개발이 마무리된 개량형 모델의 경우 탄도미사일과 극초음속 미사일에 대한 대응 능력을 보강했고 사거리도 늘렸다.
미국은 만능 미사일 SM-6를 전천후로 활용할 전망이다. 해군의 경우 수상전투함 Mk.41 수직발사기에서 사용하는 게 기본이다. 육군은 다영역임무부대(MDTF)의 핵심 전력인 중거리능력(MRC) 포대에서 SM-6를 집중 운용하기 시작했다. 해군항공대가 F/A-18E에 SM-6를 통합함에 따라 공군도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특히 미 공군과 해군항공대는 SM-6에 큰 기대를 갖고 있다. 그간 이렇다 할 장거리공대공미사일이 없어 고충이 많았기 때문이다. SM-6 사거리는 현재 주력 중거리공대공미사일인 AIM-120 계열보다 압도적으로 길다.
‘협동교전능력’ 갖춘 강력한 미사일
미국 해군 함정에서 SM-6 미사일이 발사되고 있다. [미 해군 제공]
AIM-174B 사거리는 전투기 레이더의 최대 탐지 거리보다 길다. 따라서 이 미사일을 제대로 운용하려면 CEC가 필수다. 다른 군함·전투기·조기경보기가 수집한 표적 정보를 바탕으로 표적 조준 및 유도가 이뤄져야 한다는 얘기다. AIM-174B의 ‘눈’이 돼줄 미군 자산은 이지스함 레이더나 F-35 전투기 등 다양하다. 최근 미 우주군 작전담당 부사령관인 마이클 게틀린 대장이 밝힌 것처럼 향후 미국은 우주 위성에 센서와 데이터링크 장비를 달아 공중 이동표적 조준·지정(AMTI) 임무에 투입할 예정이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지구상 모든 비행 물체를 탐지·추적해 수백㎞ 밖에서 AIM-174B로 요격할 수도 있다. VFA-195 소속 전투기들은 팰런 기지에서 이처럼 강력한 신형 무기 운용 교육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이들 전력은 9월 중에 출항할 조지 워싱턴 항모에 실려 일본 이와쿠니 기지로 복귀할 예정이다. 또한 VFA-195 조종사들은 교관으로서 일본에 있는 나머지 2개 슈퍼호넷 비행대 동료들에게 신무기 운용법을 교육시킬 것이다.
조지 워싱턴함은 제7함대 전진배치 항모 최초로 F-35C 스텔스 전투기도 운용할 예정이다. F-35C는 우수한 스텔스 능력을 이용해 중국 연안 가까운 곳까지 침투할 수 있다. 다양한 센서로 중국 전투기와 미사일을 탐지·추적하고, 이렇게 확보한 표적 정보를 후방 수백㎞ 밖에 있는 F/A-18E/F 전투기들에 전달할 수도 있다. 일본 요코스카는 중국 DF-21D 대함탄도미사일 사정권 밖이다. 유사시 이곳 해역의 조지 워싱턴 항모에서 출격한 F/A-18E/F 전투기들은 제주 인근까지 날아가 중국 산둥성 칭다오나 상하이 상공의 전투기·미사일을 요격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조지 워싱턴함이 항모 전단에 소속된 이지스함은 물론, 자체 항공 전력만으로 북한 탄도미사일 대량 공세를 막아낼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처럼 가공할 위력의 최신형 장거리공대공미사일로 무장한 함재기를 가득 실은 조지 워싱턴 항모가 한반도 인근으로 온다. 조지 워싱턴 항모는 9월 중 출항해 늦어도 10월 이전에는 한반도 주변에서 작전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새로 전개되는 미 항모가 북한과 중국을 상대로 더 강력한 억제력을 발휘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