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부장검사의 뇌물수수 사건, 초임검사의 성추문 사건이 엉뚱하게 검찰총장과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의 대립을 불러왔다. 한상대 전 검찰총장은 자체적으로 만든 검찰 개혁안을 들고 상황 돌파를 시도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대검 중수부) 폐지가 담긴 한 총장의 구상에 검찰 조직 전체가 반발하는 형국이었다.
2012년 11월 28일 한 총장이 최재경 대검 중수부장에 대한 감찰 사실을 언론에 알리면서 이번 사건은 파국으로 치달았다. 대검 간부들이 한 총장을 찾아가 용퇴를 건의했고, 지휘권을 가진 법무부도 한 총장을 버렸다. 구석에 몰린 한 총장은 11월 30일 검찰을 떠났다. 퇴임 직후 한 전 총장은 지인들을 만난 자리에서 “(11월 28일을 전후해) 한 이틀 정도 내 눈에 뭐가 씌었던 것 같다”며 후회한 것으로 전해진다.
총장이 물러나고 총장에 맞섰던 최 중수부장이 전주지검장으로 사실상 좌천되면서 일단 사건은 일단락됐지만, 앙금은 여전히 남아 있다.
한 전 총장 “내 눈에 뭐가 씌었다”
한 전 총장과 최 전 중수부장은 이명박 정부로부터 가장 많은 혜택을 받고 승승장구하던, 검찰 내에서 각각 고려대와 TK(대구·경북) 인맥을 대표한 인물이다. 한 전 총장은 법무부 검찰국장, 서울고검장, 서울중앙지검장을 거쳐 총장에 올랐다. 남들은 하나도 하기 어렵다는 자리를 그는 이명박 정부 내내 섭렵했다. 최 전 중수부장도 동기들이 지방을 전전할 때 대검 수사기획관, 서울중앙지검 3차장, 법무부 기조실장 등을 거쳐 대검 중수부장에 올랐다.
그래서일까. 일부 검찰 관계자는 이번 사건의 본질을 이명박 검찰에서 두 축이던 범TK 세력과 고려대 간 싸움으로 본다. 겉으로는 개인적 갈등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세력 간 피 튀는 전쟁이었다는 것이다. 한 검찰 간부는 “이 정부에서 가장 많은 혜택을 받은 두 조직이 부딪쳤다. 한편으론 아이러니지만 또 다른 측면에선 필연적 사고였다”고 말했다.
알려진 바와 같이, 이명박 검찰에서 TK 세력과 고려대 출신이 약진했다. 현 정부 첫 법무장관이던 경북고 출신 김경한 전 장관은 TK 검찰의 중심 인물이었다. 그는 무엇보다 인사에서 막강한 권한을 행사했다. 김 전 장관은 2008년 3월 이후 세 번의 인사에서 드러내놓고 ‘TK 중심 인사’를 단행해 검사들의 전공을 모두 바꿔놨다는 비판까지 받았다. 대통령실 민정수석비서관을 지내다 법무부 장관으로 자리를 옮긴 권재진 장관도 경북고 출신이다.
고려대 출신도 승승장구했다. 장관(이귀남)과 총장(한상대)도 배출했다. 특히 한 전 총장은 2011년 8월 취임 직후 서울중앙지검장, 대검 대변인, 공안기획관, 범죄정보기획관 등 검찰 핵심 보직을 고려대 출신으로 채워 코드 인사 논란을 불렀다.
그러나 처음부터 고려대는 TK 적수가 되지 못했다. 최재경 중수부장에 대한 감찰 사실이 공개된 2012년 11월 28일 밤, 권재진 법무부 장관은 일선 검찰에 특별지시를 내렸다. 권 장관은 최 중수부장 감찰에 대해 “검찰에서 진행하는 감찰 또는 수사는 적법 절차에 따라 수행하라”고 말했고, 한 총장이 발표하겠다고 한 검찰 개혁안에 대해서는 “검찰 개혁과 관련된 논의는 충분히 시간을 두고 다양한 국민의 목소리와 안팎의 의견을 수렴해 심도 있고 신중하게 다뤄야 한다”고 밝혔다. 사실상 한 총장의 검찰 개혁안 발표를 막아서면서 최 중수부장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완전히 실패한 이명박 검찰
이를 두고 한 검찰 고위 간부는 “TK 출신 장관이 TK 손을 들어줬다”고 평가했다. 또 다른 현직 검찰 간부는 “장관이 한 총장을 희생양으로 삼았다. 자기에게 올 화살을 총장에게 돌렸다. 특별지시는 한 총장에게 보내는 경고였다”고 해석했다. 한 총장 처지를 옹호하고 나선 한 검찰 간부는 “한 총장은 자신이 약자라고 생각했다. TK를 중심으로 한 세력이 자신을 몰아낸다고 생각했다. TK 출신 전직 검찰 간부들까지 사퇴를 요구하면서 한 총장을 몰아세웠다. 그 순간만큼은 한 총장이 쥐, 최 중수부장(TK 세력)이 고양이였다. 최 중수부장에 대한 감찰 사실 공개는 한 총장이 택할 수 있는 마지막 공격 방법이었다. 그러나 좋은 선택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을 TK와 고려대 간 싸움으로 보면 안 된다는 의견도 많다. 그보다는 한 전 총장이 조직에서 신망을 얻지 못한 게 사건 본질이라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주로 최 전 중수부장을 옹호하는 쪽에서 나온다. 실제 한 총장의 퇴진을 요구하고 나섰던 대검 간부들, 한 전 총장에 맞선 그룹 대변인을 자처한 윤석열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도 TK 출신이 아니었다.
이와 관련해 한 특수부 출신 검사는 “외부 압력에 밀려 대검 중수부 폐지를 결정하고, 후배 검사에 대한 감찰 사실을 언론에 공표하면서 한 전 총장은 지도력을 상실했다. 그것이 이번 사건의 본질이다. 이번 사건을 TK와 고려대 간 싸움으로 보는 논리에는 최 중수부장을 욕보이려는 의도가 깔렸다”고 말했다. 한 현직 부장검사도 “대선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검찰총장이 개혁안을 발표하고 사표를 낸다고 했다. 총장이 나서서 대검 중수부를 폐지하겠다고 했다. 이는 절대 진정성 있는 행동이 아니었다. 새 정부에서도 총장을 계속하겠다는 욕심일 뿐이었다”고 말했다.
다른 시각도 있다. 사실 한 총장이 발표하려 했던 개혁안은 새로운 게 아니어서 공격 빌미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한 총장은 2012년 11월 22일 이미 대검 중수부 폐지를 언급하고 여론을 수렴 중이었다. 또 검찰 내에서도 “중수부 폐지는 더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목소리가 높은 것이 사실이다. 한 검찰 고위 간부는 “빼앗길 상황이라면 (대검 중수부를) 먼저 내주자는 여론도 많다. 기능만 살릴 수 있다면 형식은 관계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미 기울어진 세력 싸움에서 이런 주장은 빛을 발하지 못했다.
사건 초기 일부 언론은 이번 사건의 본질을 특수부 대 비특수부 갈등으로 보기도 했다. 특수부 검사들이 모인 중수부 폐지와 관련한 갈등이니 그렇게 보는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한 총장은 서울중앙지검장 시절부터 특수부 검사들과 크고 작은 갈등을 빚었다. 그는 특수부 검사들을 신뢰하지 않았다. 총장 취임 당시에는 특수부를 열등생으로 표현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한 전 총장을 잘 아는 한 검찰 간부는 “한 총장은 특수부 검사들을 ‘항상 사고만 치는 녀석들’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번 검란(檢亂)을 두고 상당수 법조인은 이명박 검찰의 실패를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라고 입을 모은다. 한 전 총장을 옹호하든, 총장에 맞선 최 전 중수부장을 옹호하든 마찬가지다. 이명박 정부의 인사 실패가 문제 원인이 됐다는 것이다. 검찰 고위직을 지낸 한 변호사는 “TK와 고려대가 조직을 망쳤다. 양쪽 모두 겸손하지 못했다. 한 전 총장과 최 전 중수부장 모두 조직에 부담을 주지 말고 책임 있는 자세를 보였어야 했다”며 아쉬워했다.
또 다른 검찰 출신 변호사는 “TK와 고려대 출신 검사들이 이명박 대통령의 내곡동 사저 땅 사건과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 한명숙 전 총리 뇌물수수 사건 등 그동안 문제가 됐던 사건을 대부분 맡았다. 결국 국민 눈에는 ‘○ 묻은 개가 ○ 묻은 개 나가라’며 싸우는 꼴불견을 연출했다. 능력과 자질을 기준으로 인사를 했다면 생기지 않았을 문제다”라고 말했다.
2012년 11월 28일 한 총장이 최재경 대검 중수부장에 대한 감찰 사실을 언론에 알리면서 이번 사건은 파국으로 치달았다. 대검 간부들이 한 총장을 찾아가 용퇴를 건의했고, 지휘권을 가진 법무부도 한 총장을 버렸다. 구석에 몰린 한 총장은 11월 30일 검찰을 떠났다. 퇴임 직후 한 전 총장은 지인들을 만난 자리에서 “(11월 28일을 전후해) 한 이틀 정도 내 눈에 뭐가 씌었던 것 같다”며 후회한 것으로 전해진다.
총장이 물러나고 총장에 맞섰던 최 중수부장이 전주지검장으로 사실상 좌천되면서 일단 사건은 일단락됐지만, 앙금은 여전히 남아 있다.
한 전 총장 “내 눈에 뭐가 씌었다”
한 전 총장과 최 전 중수부장은 이명박 정부로부터 가장 많은 혜택을 받고 승승장구하던, 검찰 내에서 각각 고려대와 TK(대구·경북) 인맥을 대표한 인물이다. 한 전 총장은 법무부 검찰국장, 서울고검장, 서울중앙지검장을 거쳐 총장에 올랐다. 남들은 하나도 하기 어렵다는 자리를 그는 이명박 정부 내내 섭렵했다. 최 전 중수부장도 동기들이 지방을 전전할 때 대검 수사기획관, 서울중앙지검 3차장, 법무부 기조실장 등을 거쳐 대검 중수부장에 올랐다.
그래서일까. 일부 검찰 관계자는 이번 사건의 본질을 이명박 검찰에서 두 축이던 범TK 세력과 고려대 간 싸움으로 본다. 겉으로는 개인적 갈등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세력 간 피 튀는 전쟁이었다는 것이다. 한 검찰 간부는 “이 정부에서 가장 많은 혜택을 받은 두 조직이 부딪쳤다. 한편으론 아이러니지만 또 다른 측면에선 필연적 사고였다”고 말했다.
알려진 바와 같이, 이명박 검찰에서 TK 세력과 고려대 출신이 약진했다. 현 정부 첫 법무장관이던 경북고 출신 김경한 전 장관은 TK 검찰의 중심 인물이었다. 그는 무엇보다 인사에서 막강한 권한을 행사했다. 김 전 장관은 2008년 3월 이후 세 번의 인사에서 드러내놓고 ‘TK 중심 인사’를 단행해 검사들의 전공을 모두 바꿔놨다는 비판까지 받았다. 대통령실 민정수석비서관을 지내다 법무부 장관으로 자리를 옮긴 권재진 장관도 경북고 출신이다.
고려대 출신도 승승장구했다. 장관(이귀남)과 총장(한상대)도 배출했다. 특히 한 전 총장은 2011년 8월 취임 직후 서울중앙지검장, 대검 대변인, 공안기획관, 범죄정보기획관 등 검찰 핵심 보직을 고려대 출신으로 채워 코드 인사 논란을 불렀다.
그러나 처음부터 고려대는 TK 적수가 되지 못했다. 최재경 중수부장에 대한 감찰 사실이 공개된 2012년 11월 28일 밤, 권재진 법무부 장관은 일선 검찰에 특별지시를 내렸다. 권 장관은 최 중수부장 감찰에 대해 “검찰에서 진행하는 감찰 또는 수사는 적법 절차에 따라 수행하라”고 말했고, 한 총장이 발표하겠다고 한 검찰 개혁안에 대해서는 “검찰 개혁과 관련된 논의는 충분히 시간을 두고 다양한 국민의 목소리와 안팎의 의견을 수렴해 심도 있고 신중하게 다뤄야 한다”고 밝혔다. 사실상 한 총장의 검찰 개혁안 발표를 막아서면서 최 중수부장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최재경 전 대검 중수부장.
이를 두고 한 검찰 고위 간부는 “TK 출신 장관이 TK 손을 들어줬다”고 평가했다. 또 다른 현직 검찰 간부는 “장관이 한 총장을 희생양으로 삼았다. 자기에게 올 화살을 총장에게 돌렸다. 특별지시는 한 총장에게 보내는 경고였다”고 해석했다. 한 총장 처지를 옹호하고 나선 한 검찰 간부는 “한 총장은 자신이 약자라고 생각했다. TK를 중심으로 한 세력이 자신을 몰아낸다고 생각했다. TK 출신 전직 검찰 간부들까지 사퇴를 요구하면서 한 총장을 몰아세웠다. 그 순간만큼은 한 총장이 쥐, 최 중수부장(TK 세력)이 고양이였다. 최 중수부장에 대한 감찰 사실 공개는 한 총장이 택할 수 있는 마지막 공격 방법이었다. 그러나 좋은 선택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을 TK와 고려대 간 싸움으로 보면 안 된다는 의견도 많다. 그보다는 한 전 총장이 조직에서 신망을 얻지 못한 게 사건 본질이라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주로 최 전 중수부장을 옹호하는 쪽에서 나온다. 실제 한 총장의 퇴진을 요구하고 나섰던 대검 간부들, 한 전 총장에 맞선 그룹 대변인을 자처한 윤석열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도 TK 출신이 아니었다.
이와 관련해 한 특수부 출신 검사는 “외부 압력에 밀려 대검 중수부 폐지를 결정하고, 후배 검사에 대한 감찰 사실을 언론에 공표하면서 한 전 총장은 지도력을 상실했다. 그것이 이번 사건의 본질이다. 이번 사건을 TK와 고려대 간 싸움으로 보는 논리에는 최 중수부장을 욕보이려는 의도가 깔렸다”고 말했다. 한 현직 부장검사도 “대선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검찰총장이 개혁안을 발표하고 사표를 낸다고 했다. 총장이 나서서 대검 중수부를 폐지하겠다고 했다. 이는 절대 진정성 있는 행동이 아니었다. 새 정부에서도 총장을 계속하겠다는 욕심일 뿐이었다”고 말했다.
다른 시각도 있다. 사실 한 총장이 발표하려 했던 개혁안은 새로운 게 아니어서 공격 빌미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한 총장은 2012년 11월 22일 이미 대검 중수부 폐지를 언급하고 여론을 수렴 중이었다. 또 검찰 내에서도 “중수부 폐지는 더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목소리가 높은 것이 사실이다. 한 검찰 고위 간부는 “빼앗길 상황이라면 (대검 중수부를) 먼저 내주자는 여론도 많다. 기능만 살릴 수 있다면 형식은 관계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미 기울어진 세력 싸움에서 이런 주장은 빛을 발하지 못했다.
사건 초기 일부 언론은 이번 사건의 본질을 특수부 대 비특수부 갈등으로 보기도 했다. 특수부 검사들이 모인 중수부 폐지와 관련한 갈등이니 그렇게 보는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한 총장은 서울중앙지검장 시절부터 특수부 검사들과 크고 작은 갈등을 빚었다. 그는 특수부 검사들을 신뢰하지 않았다. 총장 취임 당시에는 특수부를 열등생으로 표현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한 전 총장을 잘 아는 한 검찰 간부는 “한 총장은 특수부 검사들을 ‘항상 사고만 치는 녀석들’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번 검란(檢亂)을 두고 상당수 법조인은 이명박 검찰의 실패를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라고 입을 모은다. 한 전 총장을 옹호하든, 총장에 맞선 최 전 중수부장을 옹호하든 마찬가지다. 이명박 정부의 인사 실패가 문제 원인이 됐다는 것이다. 검찰 고위직을 지낸 한 변호사는 “TK와 고려대가 조직을 망쳤다. 양쪽 모두 겸손하지 못했다. 한 전 총장과 최 전 중수부장 모두 조직에 부담을 주지 말고 책임 있는 자세를 보였어야 했다”며 아쉬워했다.
또 다른 검찰 출신 변호사는 “TK와 고려대 출신 검사들이 이명박 대통령의 내곡동 사저 땅 사건과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 한명숙 전 총리 뇌물수수 사건 등 그동안 문제가 됐던 사건을 대부분 맡았다. 결국 국민 눈에는 ‘○ 묻은 개가 ○ 묻은 개 나가라’며 싸우는 꼴불견을 연출했다. 능력과 자질을 기준으로 인사를 했다면 생기지 않았을 문제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