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고기, 수십 년 누명 벗다 

[이윤현의 보건과 건강] ‘美 식생활 지침’ 변경… “설탕과 가공식품 섭취 줄이라”

  • 이윤현 남서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대한검역학회 회장)

    입력2026-01-26 08: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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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가공식품과 당 중심 식단은 비만, 당뇨, 심혈관질환 등을 유발할 수 있다. GETTYIMAGES

    초가공식품과 당 중심 식단은 비만, 당뇨, 심혈관질환 등을 유발할 수 있다. GETTYIMAGES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최근 연방 영양정책을 전면 재검토하며 설탕과 초가공식품을 줄이고 단백질 섭취를 늘리라는 메시지를 내놨다. 특히 눈길을 끈 대목은 붉은 고기 같은 ‘동물성 단백질’의 역할을 재평가한 점이다. 지난 수십 년간 붉은 고기는 심장병과 암의 주범처럼 취급돼왔다. 그런데 미국 정부가 방향을 튼 것이다.

    왜 이런 변화가 시작됐을까. 건강 문제에서 핵심이 고기가 아니라, 초가공식품과 당 중심 식단이라는 사실이 명확해졌기 때문이다. 지난 30년간 서구 사회에서 붉은 고기 섭취는 줄었다. 그런데도 비만과 당뇨, 심혈관질환이 급증했다. 이런 현상을 초래한 것은 설탕과 정제탄수화물, 식물성 기름, 첨가물이 가득한 초가공식품이었다.

    미국과 유럽의 대규모 코호트 연구를 보면 가공육과 초가공식품은 심혈관질환 발병률과 사망률을 높인다. 반면 가공하지 않은 붉은 고기 섭취와 위험 증가의 연관성은 명확하게 확인되지 않았다. 오히려 충분한 단백질 섭취가 비만과 당뇨 위험을 낮춘다는 점을 보여주는 연구 결과가 많다. 

    필요 영양소, ‘진짜 음식’으로 채워야

    한국 연구에서도 초가공식품을 많이 섭취하는 성인은 대사증후군 위험이 뚜렷하게 높았다. 반대로 달걀, 생선, 살코기 같은 양질의 단백질을 충분히 섭취한 사람은 근육량이 유지되고 혈당 변동이 줄어 낙상과 당뇨, 골절 위험이 낮았다. 이는 설탕과 전분이 주인공인 식단의 문제점을 잘 보여준다.

    미국 보건당국 메시지는 “고기를 더 먹으라”가 아니다. “설탕과 초가공식품을 밀어내고 진짜 음식으로 단백질을 채우라”는 쪽에 가깝다. 이 해법은 한국에도 똑같이 적용할 수 있다. 칼로리 공급원을 라면, 빵, 당음료에서 달걀과 생선, 콩, 살코기로 바꾸는 것. 이것이야말로 심장병, 당뇨, 골절과 장기요양을 동시에 줄이는 비용 대비 가장 효과적인 보건정책이다.



    국민건강영양조사에 따르면 한국 국민의 초가공식품 섭취 비중은 이미 20%를 넘어섰다. 반면 단백질 섭취는 특히 노년층에서 권고량에 미달하는 경우가 흔하다. 이런 구조에서는 체중 대비 근육량이 적은 ‘마른 비만’이 증가할 수밖에 없다. 

    이제 우리는 체중과 열량 중심의 낡은 보건정책과 교육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한다. 식단에서 초가공식품 비중, 체중 대비 단백질 섭취량 등을 핵심 지표로 삼고 이를 국민건강보험 재정과 연결해야 한다. 문제는 고기가 아니라 ‘가짜 음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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