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수요 둔화로 이차전지 시장이 어려움을 겪는 상황이지만 관련 기업들은 투자를 멈추지 않고 있다. K-배터리 3사는 올해 하반기 수요 회복에 대비해 미국 내 공장 증설을 이어가고 있으며, 소재 기업들도 차입 규모를 확대하며 투자를 단행 중이다. 또 이차전지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업체들의 코스닥 상장 준비 소식도 들려온다. 증권가에서는 이르면 하반기부터 이차전지 기업들의 수익성이 개선될 것으로 전망한다.
“리튬 가격 하락과 전기차 시장 수요 둔화 우려가 이차전지 관련 기업들의 실적을 악화하는 주요 원인인데, 일단 리튬 가격이 최근 바닥을 찍고 올라와 상승 추세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또 전기차 시장 성장률은 둔화됐지만 글로벌 배터리 사용량은 전년 동기 대비 27% 성장했습니다. 따라서 하반기 이차전지, 양극재 기업부터 실적 회복에 들어가 내년에는 모든 기업이 좋아질 것이라 봅니다. 물론 현재도 매출과 영업이익이 꺾이지 않고 성장세를 기록 중인 기업들도 존재하고요.”
경제 유튜브 채널 ‘김지훈의 훈훈한 주식’을 운영하는 김지훈 대표는 “이차전지 관련 기업들이 지금까지의 양적 성장에서 벗어나 질적 성장 단계에 접어들면서 종목 간 차별화가 일어나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기업들이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고 말했다. 김 대표를 4월 15일 만나 새롭게 주목해야 할 이차전지 기업들에 관해 물었다. 김 대표는 이차전지 기업 투자에 부담을 느낀다면 성장 산업이면서 저평가된 로봇 관련주에 관심을 가져볼 것을 제안했다.
경제 유튜브 채널 ‘김지훈의 훈훈한 주식’을 운영하고 있는 김지훈 대표. [지호영 기자]
실리콘 음극재 선두 주자 대주전자재료
양적 성장에서 질적 성장 단계로 접어든 이차전지 산업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나.“지난해까지는 다양한 전기차가 쏟아져 소비자들의 불만이 분산됐다면 성장세가 주춤한 현재는 충방전에 대한 불만이 가장 많다. 그동안 배터리의 에너지밀도나 용량을 높여 주행거리를 늘리는 부분은 상당 부분 개선됐지만 충전 인프라가 기대만큼 빨리 확대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전기차업체들도 질적 성장의 포커스를 충전에 맞추게 됐다. 충전 인프라가 빨리 늘어날 수 없다면 전기차 자체 충전 성능을 높이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어떤 시도들이 이뤄지고 있나.
“이차전지는 양극재, 음극재, 전해액, 분리막으로 구성된다. 그동안 음극재는 양극재에 가려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했는데, 최근 차세대 음극재로 불리는 실리콘 음극재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실리콘 음극재를 사용하면 기존 흑연 음극재에 비해 배터리의 에너지밀도를 4~10배 높이고 충전시간을 대폭 단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실리콘은 소량만 사용해도 흑연보다 뛰어난 성능을 발휘하기에 남는 공간에 양극재를 더 넣을 수 있다는 장점도 지닌다. 다만 가격이 ㎏당 60달러 (약 8만3160원)로 흑연의 2배에 달하다 보니 포르쉐 같은 고급 차종에만 채택돼 포르쉐가 잘 팔리면 부각됐다가 안 팔리면 묻히는 상황이 반복됐는데, 양극재 분야에서 더는 기술 진보가 진행되지 않다 보니 실리콘 음극재가 주목받고 있다. 최근에는 실리콘 음극재 사업을 해오던 포스코(포스코실리콘솔루션)와 대주전자재료 외에도 SK(SKC·SK머티리얼즈), 롯데(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 등), 엘앤에프 같은 대기업들이 뛰어들고 있다. 이들 기업은 최소 5000억 원부터 1조 원까지 투자할 계획인데, 성장 가능성이 없다면 대규모 투자를 할 이유가 없다.”
그중 주목해야 할 기업을 꼽는다면.
“국내에서는 압도적 1위, 글로벌에서는 3위인 대주전자재료다(그래프1 참조). 대주전자재료가 생산하는 실리콘 음극재는 포르쉐 타이칸에 들어가는데 최근 포르쉐 타이칸이 페이스리프트를 하면서 실리콘 음극재 사용량을 기존 3%에서 10%로 3배 이상 늘렸다. 가만히 앉아 판매량이 3배 이상 증가한 셈이다. 또 최근 대주전자재료의 실리콘 음극재가 SK온을 통해 현대 아이오닉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아이오닉은 하이엔드 차종인 포르쉐와 달리 볼륨화된 차종인 만큼, 이는 굉장한 상징적 의미를 갖는다. 원래 대주전자재료는 적층세라믹콘덴서(MLCC)에 들어가는 전도성 페이스트 부품 매출 비중이 컸는데 지난해부터 실리콘 음극재 매출 비중이 15%로 늘었고 올해 35%, 내년 55%로 증가할 예정이다. 또 자체 기술력으로 생산비용을 30%가량 낮춘 데 이어 3년 안에 ㎏당 30달러(약 4만1560원) 시대를 열겠다고 한 만큼 기대를 받을 수밖에 없다. 현재 실리콘 음극재 시장은 전체 음극재 시장의 1% 정도에 불과하지만 2030년 10%까지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나노신소재, 피엔티도 주목해야
실리콘 음극재와 함께 커지고 있는 시장은.“실리콘 음극재는 특유의 부풀어 오르는 성질 때문에 CNT(탄소나노튜브) 도전재를 함께 사용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기본 반도체·태양광·디스플레이 소재 생산에 이차전지 소재인 CNT 도전재 사업까지 전개하는 나노신소재도 주목하면 좋겠다. 나노신소재는 한 달 전 양극재와 음극재 기업 주가가 많이 빠질 때도 대주전자재료와 함께 오히려 주가가 상승하는 좋은 퍼포먼스를 보여줬다. 지금은 주가가 조금 내려오기는 했지만 당장 1분기부터 실적이 잘 나올 것으로 예상돼 다른 이차전지 기업 주가와는 차별화된 모습을 보일 것이다.”
이차전지 산업 흐름과 관련해 부각되는 기업은 더 없나.
“최근 LFP(리튬인산철) 배터리 시장 진출을 선언한 피엔티다. 피엔티는 국내 1위 이차전지 전극공정(양극재와 음극재를 각각 알루미늄, 동박 극판에 붙이는 공정) 장비 업체로서 기술력을 갖췄을 뿐 아니라, 국내 배터리 3사인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을 모두 고객사로 갖고 있다. 전극공정은 배터리 기업들이 미국이나 유럽 완성차업체로부터 수주를 받으면 가장 먼저 들어가야 하는 생산 첫 단계라 사업 안정성이 높다. 그 덕분에 피엔티는 지난해 다른 이차전지 관련 회사들의 매출과 영업이익이 감소할 때도 매출 5454억 원, 영업이익 770억 원이라는 견조한 실적을 자랑했다. 더욱이 올해 1월까지 받은 수주 물량만 2조 원어치가 넘고 배터리를 직접 생산하겠다고 나선 완성차업체도 늘어나고 있는 만큼 마진 구조는 더 좋아질 것으로 보인다.”
현재 상장된 로봇 기업은 대부분 매출이 미미하고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그럼에도 로봇 기업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현재 LG와 삼성은 물론 두산, HD현대, 한화, SK 등 웬만한 대기업은 로봇 관련 분야에 엄청나게 투자하고 있다. 로봇은 인공지능(AI), 이차전지, 반도체, 제약바이오 등과 융복합이 잘되는 산업 중 하나다. 미국 보스턴컨설팅그룹에 따르면 로봇 시장은 2030년쯤 약 350조~400조 원 규모로 성장할 예정이다. 정부도 3월 로봇 산업에 3조 원 이상 투자 계획을 발표하면서 2030년까지 핵심 부품 국산화율을 80%까지 올리겠다고 했다. 또 첨단 로봇 100만 대 이상 공급, 핵심 인력 1만5000명 양성, 로봇 전문 기업 150개 이상 육성 계획도 밝혔다.”
한국 협동로봇과 의료용 로봇 기술력 뒤지지 않아
한국의 로봇 산업 수준은 어느 정도인가.“로봇 관련 매출, 기술력, 연구개발, 인력 전반에 걸쳐 중국·미국·일본·독일·한국 등 5개국이 전체 시장의 85%를 점유하고 있다. 이 나라들을 제외하면 신규 진입이 사실상 어렵다는 뜻이다. 한국의 경우 최고 기술력이 필요한 휴머노이드 로봇 분야는 상당히 부진하지만 협동로봇이나 의료용 로봇, 웨어러블 로봇 분야에서는 다른 나라들과 기술력 차이가 크지 않다. 조만간 일부 기업은 숫자(매출)로 성장성을 보여줄 것이다.”
현재 상장된 로봇 기업 가운데 주목하는 기업은.
“두산로보틱스다(그래프2 참조). 시가총액이 5조 원에 육박해 주가가 비싸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잠재력, 성장성, 기술력, 나아갈 방향성 등 면에서 가장 매력적인 기업이다. 로봇 시장은 궁극적으로는 휴머노이드 로봇으로 가겠지만 그때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테고, 당장 필요하고 많이 쓰이는 것은 협동로봇이다. 두산로보틱스는 연평균 35%씩 성장하는 협동로봇 시장에서 글로벌 4위다. 3위인 대만 테크맨로봇과 시장 침투율이 0.9%p밖에 차이가 안 난다. 현재 연 3200대를 생산하는 두산로보틱스는 2027년까지 시장 침투율을 20%까지 높이겠다는 계획인데, 현 글로벌 협동로봇 시장 규모가 6만 대이니 3년 동안 4배 성장시키겠다는 얘기다. 또 두산로보틱스는 제품군이 13개로 다양해 확장 가능성이 크다. 또 북미와 유럽에서 매출이 60% 이상씩 성장하고 있다. 다만 지난해 단기간에 주가가 폭등해 비싼 것이 흠이었는데, 올해 들어 이에 대한 부담감으로 40%가량 빠졌다.”
“작지만 알찬 강소기업 큐렉소다. 의료용 로봇 분야에서 국내 압도적 1위 기업으로, 인공관절 수술 로봇을 연 80대씩 팔고 있다. 한국야쿠르트가 모기업으로, 식음료 유통 매출이 연 300억 원가량 나오는 가운데 로봇 매출이 급격히 오르고 있는 상태다. 상당한 기술력을 갖췄으며, 그동안 해외에서 들여왔던 부품 가운데 로봇 팔을 국내 상장기업인 뉴로메카로부터 독점 공급받기로 하면서 제조 원가가 50% 절감될 예정이라고 한다. 또 올해 상반기 미국 진출, 2025년 일본 진출 모멘텀을 갖고 있어 성장 가능성이 크다. 큐렉소도 두산로보틱스와 마찬가지로 지난해 대비 주가가 많이 빠져 눈여겨봐도 좋겠다.”
이한경 기자
hklee9@donga.com
안녕하세요. 주간동아 이한경 기자입니다. 관심 분야인 거시경제, 부동산, 재테크 등에 관한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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