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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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별 수순 맞은 75년간 동업 고려아연-영풍

거듭된 제3자 유상증자로 갈등 커져… 공동 원료 구매도 중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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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진렬 기자

    display@donga.com

    입력2024-04-24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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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5년간 동업 관계를 이어온 고려아연과 영풍의 결별이 본격화되고 있다. 고려아연이 영풍과 공동으로 진행해온 원료 구매 및 영업활동을 중단한 데 이어, 황산 취급 대행 계약도 종료한 것이다. 양사 우호관계의 상징이던 서린상사마저 갈등의 장으로 변질된 상태다. 고려아연과 영풍은 각각 경영권 침해 및 주주가치 훼손을 빌미로 팽팽히 맞서고 있다.

    경북 봉화에 위치한 영풍 석포제련소 전경. [동아DB]

    경북 봉화에 위치한 영풍 석포제련소 전경. [동아DB]

    고려아연의 판 뒤집기에 영풍 배신감

    고려아연과 영풍 사이에 미묘한 갈등 기류가 형성되기 시작한 시점은 2022년 8월이다(타임라인 참조). 고려아연이 8월 5일 한화H2에너지USA를 상대로 4717억 원 규모의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공시하면서 양사 간 불신이 깊어진 것이다. 특히 영풍은 고려아연 측 결정에 큰 배신감을 느꼈다고 한다. 한 달 전인 7월 1일 영풍이 고려아연에 지분 확대 의사를 전했기 때문이다.

    당시 기획재정부는 익금불산입률 상향 계획을 발표했다. 자회사 지분율이 30%를 넘어가면 익금불산입률도 30%에서 80%로 올라가는 것이 골자다. 익금불산입률이 높을수록 기업이 자회사로부터 받는 배당금에 대한 과세가 완화된다. 영풍 입장에서는 고려아연 지분을 0.65%만 늘리면 세제 혜택이 커질 수 있었다. 영풍 측에 따르면 영풍은 고려아연 지분을 0.65% 늘리는 대신, 비중이 동일한 장형진 영풍 고문 측 지분을 시장에 매각하겠다고 고려아연 측에 전달했고 고려아연도 반대하지 않았다고 한다.

    고려아연 측은 익금불산입률 건에 대해 동의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영풍의 요청은 받았으나 지분 조정 등을 약속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고려아연 관계자는 “세금 절감으로 얻는 경제적 이익을 고려아연의 지분을 늘리는 데 활용할 우려가 컸던 만큼 받아들이기 어려운 요청이었다”고 말했다. 고려아연 측에 따르면 2010년대부터 영풍이 고려아연의 경영에 개입하기 시작하면서 양사 간 신뢰가 훼손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고려아연의 유상증자 발표로 영풍의 계획은 무산됐다. 영풍 관계자는 “고려아연의 유상증자 때문에 세재 혜택을 받으려면 지분을 5% 가량 추가 확보해야 했다”며 “이 경우 익금불산입을 통해 얻는 실익이 사실상 없다고 판단돼 지분 매입 계획을 중단했다”고 말했다. 한 달 사이 판이 뒤집힌 것이다. 이 관계자는 “유상증자 결정이 한 달 사이에 이뤄졌다고 보기 어려운 만큼 이전부터 관련 계획을 준비하고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려아연은 고려아연대로 영풍이 경영권을 침해했다며 불편함을 내비치고 있다. 1949년 장병희·최기호 창업주가 영풍기업사를 공동 설립하고, 1974년 고려아연 역시 공동 설립한 이래 최 씨 일가와 장 씨 일가는 상대방 사업엔 관여하지 않기로 악속했는데, 이 같은 전통이 깨지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고려아연은 영풍이 ‘트로이카 드라이브’에 반대 의사를 내놓고 있다며 불만을 나타냈다. 트로이카 드라이브는 신재생에너지, 이차전지 소재, 리사이클링 사업을 축으로 하는 고려아연의 미래성장엔진 프로젝트다. 고려아연은 이달 대규모 경력직 공개채용을 단행하는 등 관련 프로젝트에 힘을 싣고 있다.

    서린상사서 마지막 다툼 예고

    장형진 영풍 고문(왼쪽)과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영풍 제공, 고려아연 제공]

    장형진 영풍 고문(왼쪽)과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영풍 제공, 고려아연 제공]

    지난해 8월 30일 고려아연이 한 번 더 제3자 유상증자를 발표하면서 두 기업의 관계는 루비콘강을 건넌 상태다. HMG글로벌과 5272억 원 규모의 제3자 배당 유상증자가 결정되면서 영풍 지분이 추가로 희석된 것이다. 이 시점부터 최 씨 일가와 장 씨 일가의 고려아연 지분 관계도 역전됐다. 영풍이 3월 6일 서울중앙지법에 HMG글로벌을 대상으로 한 고려아연의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무효로 해달라는 취지의 신주 발행 무효 소송을 제기한 것도 이와 맥락이 맞닿아 있다. 지분 관계가 역전된 만큼 더는 상황을 두고 볼 수 없게 된 것이다. 영풍은 고려아연이 정관을 위반하면서까지 무리하게 유상증자를 했다는 입장이다.

    고려아연과 영풍의 동업 관계는 정리 수순을 밟고 있다. 양사는 공동 사업 분야를 사실상 모두 정리한 상태다. 고려아연은 4월 13일 영풍과의 황산 취급 대행 계약을 종료하겠다고 밝혔다. 그간 영풍 석포제련소에서 나온 황산을 온산제련소 황산탱크에 보관해주고 있었는데, 자체 생산량의 지속적 증가에 따른 공간 부족으로 계약 연장이 어렵다는 것이다.

    양사 간 마지막 다툼은 서린상사를 무대로 펼쳐질 전망이다. 서린상사는 비철제품 수출 및 원재료 구매를 담당하는 영풍그룹 내 계열사다. 최대주주는 고려아연(66.7%)이고 이사회 역시 고려아연 측 4명과 영풍 측 3명으로 구성돼 있지만, 장형진 영풍 고문의 차남인 장세환 대표가 경영을 맡고 있다. 고려아연은 사내이사 4명을 추가해 이사회를 장악하려 하고 있다. 영풍 측 이사들의 반대로 이사회가 열리지 못하자 법원에 임시 주주총회 소집을 청구한 상태다. 서울중앙지법은 4월 17일 해당 사안에 대한 심리를 개시했다. 법원 심리 결과는 4월 중 나올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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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진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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