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튜브 채널 ‘로봇손’ 운영자가 인공지능(AI) 도구를 사용해 만든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 손으로 그림을 직접 그리지 않고도 얇은 머리칼과 화려한 옷 장식을 섬세하게 구현했다. 유튜브 채널 ‘로봇손’ 캡처
AI 프로그램으로 애니메이션을 제작해 업로드하는 유튜브 채널 ‘로봇손’ 운영자 A 씨가 4월 9일 기자에게 소개한 콘텐츠 제작 과정이다. A 씨는 “AI 덕분에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필요한 애니메이션 제작 작업을 한 명이 압축적으로 할 수 있게 됐다”며 AI 효율성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림과 영상을 생성하는 AI가 빠르게 발전하면서 그림을 직접 그리지 않고도 웹툰이나 애니메이션을 만들어 연재하는 콘텐츠 창작자가 늘고 있다. 업계에서는 AI를 사용해 콘텐츠를 더욱 효율적으로 제작할 수 있어 좋다는 반응과 AI가 그림 작가 등 관련 일자리를 감소시킬 것이라는 우려가 함께 나온다.
7분짜리 애니 6시간 만에 혼자 제작
최근 챗GPT가 불러온 ‘지브리풍(風) 그림’ 유행은 AI의 훌륭한 ‘그림 그리기 실력’을 증명했다. 지난달 25일 오픈AI가 출시한 이미지 생성 AI 모델 ‘챗GPT-4o 이미지 제너레이션’은 사용자가 사진을 첨부한 뒤 “지브리풍으로 바꿔줘”라고만 입력하면 1~2분 만에 첨부된 사진을 일본 대표 애니메이션 제작사 지브리의 그림체로 바꿔준다. 챗GPT의 뛰어난 이미지 생성 기능 덕분에 유튜브에서는 ‘챗GPT로 1분 만에 웹툰 만드는 법’ ‘초보도 가능한 AI 웹툰 제작’ 등의 영상이 조회수 수만 회를 기록하고 있기도 하다.실제로 이미 많은 창작자가 챗GPT 같은 이미지·영상 생성 AI를 콘텐츠 제작에 활용하고 있다. AI 도구로 웹툰을 만들어 유튜브 채널에 연재하고 있는 웹툰 작가 B 씨는 “AI 모델 ‘스테이블 디퓨전’에 텍스트를 입력해 이미지를 생성한 뒤 결과물을 손으로 수정해 웹툰을 완성한다”며 “그림 전공자가 아니지만 AI의 도움을 받아 웹툰을 제작하는 사람도 많다”고 전했다. AI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는 A 씨는 “챗GPT를 사용해 머릿속에서 구상한 줄거리에 소품이나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추가하고, 이미지와 영상을 만들 때는 미드저니(Midjourney)와 하이루오(Hailuo) AI라는 프로그램을 쓴다”며 “AI를 사용하면 6시간 만에 7분짜리 실사화 영상을 제작할 수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미지·영상 생성 AI가 널리 쓰일수록 웹툰이나 애니메이션 업계 일자리가 줄어들 수 있다는 점이다. 본래 웹툰이나 애니메이션을 만들 때는 선으로 된 그림에 색을 입히는 ‘채색 작가’, 애니메이션의 부드러운 움직임을 구현하고자 조금씩 다른 그림을 그려내는 ‘애니메이터’ 등 반복적이고 분업화된 공정을 담당하는 인력이 필요했다. 이들은 기업 형태의 콘텐츠 제작 스튜디오에 고용돼 정해진 디자인과 지시대로 그림을 생산해왔다.
하지만 AI를 활용한 1인 체제 콘텐츠 제작 과정에는 이들의 존재가 빠져 있다. AI가 이들의 업무를 대체한 것이다. 김한재 강동대 만화애니메이션콘텐츠과 교수는 “AI의 이미지 생성 기술이 진화함에 따라 줄거리 생성, 배경 제작, 채색 등으로 분업화돼 있던 공정들이 통합되고, 채색 작가 등이 담당하던 반복적이고 구조화된 작업은 AI 자동화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AI, 창작자 입지 넓힐 것”
반면 AI를 사용해 반복 그림 작업을 자동화하면 콘텐츠 제작자의 입지가 오히려 넓어질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제작자들이 반복 노동에서 벗어나 독창적인 작품 세계관을 구축하거나 캐릭터 감정 구조를 설계하는 등 창의적인 작업에 더 많은 역량을 투입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기업형 스튜디오를 갖추지 않고도 제작자 개인이 작품을 선보일 수 있다는 점 또한 AI가 불러올 미래로 제시된다. 웹툰 작가 지망생 C 씨는 “AI를 사용해 퀄리티 높은 작품을 작가 한 명이 빠르고 쉽게 연재할 수 있게 되면 좋을 것 같다”며 “스튜디오에서 제작하는 콘텐츠가 거의 사라지고 작가 개인이 작품을 더 많이 만드는 시대가 곧 올 것 같다”고 말했다.전문가들은 AI가 개인 창작자의 가능성을 넓혀 줄 것이라는 시각을 인정하면서도 기존 창작자 양성 교육을 시대에 맞게 재편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김한재 교수는 “AI 고도화로 소규모 팀이나 개인이 스튜디오에 상응하는 제작 역량을 확보할 수 있게 된 만큼 아이디어 중심의 개인 작가가 기동성과 실험성을 무기로 시장에 진입할 가능성이 확대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 교수는 “AI가 작화 작업의 일정 부분을 대체할 수 있게 된 지금 콘텐츠 제작자가 경쟁력을 갖추려면 제작자의 창의적 기획 능력을 강조하는 교육을 늘릴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임경진 기자
zz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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