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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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팝 리믹스 앨범 붐

[미묘의 케이팝 내비]

  • 미묘 대중음악평론가

    입력2024-04-22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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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K팝 시장에 리믹스 트랙 발표가 늘고 있다. 하이브의 신인 걸그룹 아일릿(ILLIT)은 데뷔 미니앨범 ‘SUPER REAL ME’ 전곡을 수록한 ‘스페드업(Sped Up)’ 버전 미니앨범을 발매했다. 투모로우바이투게더는 리믹스를 추가하는 방식으로 리패키지 앨범을 구성했다. 르세라핌은 지난해 여름 이후 같은 곡에 피처링 아티스트를 기용하거나 리믹스를 가한 새로운 버전의 디지털 싱글 발매를 이어가고 있다. 베이비몬스터는 미니앨범 ‘BABYMONS7ER’에 선공개 곡 리믹스를 수록했고, 첫사랑(CSR)도 지난해 12월 ‘HBD To You’를 두 번 연속 리믹스해 발매했다.

    데뷔 미니앨범 ‘SUPER REAL ME’ 
전곡을 담은 ‘스페드업(Sped Up)’ 버전 미니앨범을 발매한 아일릿(ILLIT). [빌리프랩 제공]

    데뷔 미니앨범 ‘SUPER REAL ME’ 전곡을 담은 ‘스페드업(Sped Up)’ 버전 미니앨범을 발매한 아일릿(ILLIT). [빌리프랩 제공]

    리믹스는 해외 팝 시장, 특히 클럽을 무대로 하는 일렉트로닉이나 힙합 장르에서는 매우 전통적으로 맥락이 있는 형태다. 곡의 완성에 원작자 의도를 충실히 반영하고, 이후 라디오 송출이나 다양한 클럽 등 여러 매체의 성격과 요구사항에 맞춘 버전을 함께 발표하는 것이다. 더불어 리믹스 아티스트를 통해 음악적 다양성을 기하거나, 새로운 아티스트를 발굴하거나, 컬래버레이션 작업으로 화제성을 높이는 역할도 한다. 이에 비해 국내에서는 그동안 리믹스가 상대적으로 홀대받아온 것이 사실이다. 간혹 눈에 띄는 리믹스 트랙도 국내에서는 일종의 ‘번외작’이나 심하게는 트랙 수 채우기로 취급받기도 했다. 해외 시장에서 대대적인 성과를 거둔 일부 아티스트가 리믹스 싱글을 자주 발매한 것도 리믹스와 한국 시장의 괴리를 슬그머니 보여주는 장면이다. 변화가 생긴 것은 역시 해외 시장 맥락에서 2019년부터 리믹스 싱글을 꾸준히 발매한 BTS, 그리고 리믹스 역시 톡톡한 화제성과 흥행성을 입증한 뉴진스의 영향이라고 할 수 있겠다.

    같은 곡을 새롭게 감상하는 재미

    섣부른 진단은 이르다. 리믹스라 해도 단순한 스페드업에 불과한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곡 재생 속도를 높여 호들갑스럽고 경쾌하게 만든 스페드업은 틱톡(TikTok) 등 짧은 영상 콘텐츠 문화에서 널리 쓰이는 음악 형태다. 과거에는 사용자가 직접 간단히 편집해 만드는 경우가 많았다면, 틱톡이 자체적으로 제공하는 음원 서비스가 점차 확대되면서 지난 몇 년간 발매사가 공식적으로 스페드업 버전을 등록하는 일도 늘었다. 특히 지난해 피프티피프티의 ‘Cupid’가 틱톡을 무대로 대대적인 바이럴 인기를 구가한 이후 더 본격화했다. 팬들의 문화 현상에 기획이 직접 뛰어드는 모양새가 낯 뜨겁지 않게 여겨지는 흐름이 만들어진 셈이다.

    그러나 K팝 시장의 변화를 시사하는 면도 분명 있다. 빌보드 차트 등 해외 차트에서는 원곡 판매량과 리믹스 트랙의 판매량을 합산하기도 한다. 그러니 팬에게 리믹스는 같은 곡을 새로운 기분으로 감상하면서 차트 성적에도 기여하는 방법이 된다. 별도로 녹음하거나 준비해야 할 일이 적은 아티스트에게도 활동 부담은 다소 낮추면서 시장에서 입지는 유지 또는 확대하는 발판이 된다. 또한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서 활용도를 과거보다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다는 것은 K팝의 핵심적 활동 공간이 지상파 음악방송 무대에서 SNS와 팬 참여의 장으로 확대되고 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당분간은 리믹스 발매가 산업적으로 꾸준히 이어질 것으로 여겨지는 이유다. 그렇다면 음악적 측면에서도 새로운 아티스트와 협업이나 다양한 음악적 스타일의 도입을 바랄 수 있을까. 리믹스를 통해 여러 장르로 변주하는 르세라핌, 특유의 음악적 색채를 효과적으로 확장한 뉴진스 등을 보며 기대감을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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