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은 급등락이 심해 ‘포모(FOMO ·Fear of Missing Out) 현상’의 끝을 보여준 해였다. 시장 흐름에 잘 올라탄 사람도 있겠지만 많은 개인투자자가 힘든 시기를 보냈을 것 같다.”
염승환 이베스트투자증권 이사는 2023년 12월 27일 한 해 증시를 돌아보며 이같이 총평했다. 2023년은 단기 급등락이 많았던 만큼 타이밍을 재다 투자 적기를 놓친 투자자가 적잖았으리라는 얘기다. 염 이사는 2024년 1월 중순까지는 상승세가 꺾이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염 이사는 2024년에 대해 “전체적인 그림은 괜찮게 보는데, 3분기가 약간 걱정된다”고 말했다. 공매도 금지 해제와 미국 대선 등 여러 요인으로 시장 변동성이 커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2024년 시장이 ‘상고하저’(상반기 강세, 하반기 약세)로 흘러갈 것으로 예상했다. 그리고 2024년 역시 인공지능(AI) 테마가 주도주가 될 것이라고 봤다. 다음은 염 이사와 나눈 일문일답.
염승환 이베스트투자증권 이사. [지호영 기자]
한국 증시 기대 이상
2023년 한국 증시를 총평하자면.“미국 증시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그래도 기대 이상이었다. 상반기는 이차전지주가 크게 상승하면서 시장을 주도했고, 하반기에는 AI 테마를 중심으로 반도체주가 바통을 이어받았다. 미국이 고금리를 유지하고 있는데도 굉장히 견조한 흐름을 보여 놀라웠다. 2022년 말에는 투자자들이 예상하지 못했던 부분이다. 이 과정에서 미국채 10년물 금리가 5%까지 상승했다가 한 달 사이 급격히 떨어지기도 했다. 금리가 롤러코스터를 탔다.”
미국 증시는 2021년 고점까지 상승했는데, 한국은 그러지 못했다.
“미국도 이른바 ‘매그니피센트 7’(애플, 아마존, 알파벳, 메타, 마이크로소프트, 엔비디아, 테슬라)으로 불리는 7개 빅테크 기업을 제외하면 크게 오르지 않았다. S&P500 기업 가운데 3분의 1은 2023년 수익률이 마이너스였다고 한다. 매그니피센트 7의 시가총액이 워낙 크다 보니 미국 지수가 수혜를 받았다. 한국 증시가 상대적으로 덜 오른 데는 중국 영향도 있었다. 중국발(發) 리스크로 한국 역시 타격을 받았다. 마지막으로 이차전지주 상승세가 하반기에 꺾인 것 역시 지수에 악영향을 미쳤다.”
산타랠리 후에도 상승세가 이어지고 있다. 2024년 시장에 대한 기대가 상당한데.
“연초에도 랠리가 이어질지가 관건이다. 2023년 4분기에 지수가 급격히 올랐다. 동일한 기울기로 지속적으로 오르기는 어렵다. 상승세가 둔화될 수 있다. 다만 그간 소외받았던 업종들을 중심으로 순환매가 나타나면서 강세장 기조가 이어질 전망이다. 연초 딱히 대형 이벤트가 없는 만큼 증시 분위기가 급변하지는 않으리라 본다. 다만 1월 말부터 2023년 4분기 실적 발표 시즌이 시작되는데, 이 과정에서 기업별로 주가 움직임이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 이때 변동성이 있을 수 있으니 주의가 필요하다.”
시장은 기업들이 호실적을 낼 것으로 기대한다.
“시장은 2024년 기업 실적을 굉장히 낙관적으로 보고 있다. 영업이익이 50% 이상 증가할 것으로 전망하는데, 사실 이랬던 적이 거의 없었다. 직전 해에 시스템 리스크가 발생한 경우에 이 정도 영업이익 증가율을 보였다. 지난해 경제가 그 정도로 나쁘지는 않았다. 물론 반도체 산업이 2023년 역성장한 만큼 기저효과를 감안하면 2024년 이익 환경은 좀 더 좋을 것이다. ‘영업이익이 50% 이상 증가하느냐 아니냐’의 싸움인데, 보통은 굉장히 어렵다.”
이베스트투자증권은 2024년 코스피 밴드를 2320~2650으로 전망했다. 주요 증권사 가운데 밴드 폭을 가장 좁게 잡았는데 이유가 있나.
“이베스트투자증권 리서치센터는 한국 기업의 자기자본이익률(ROE) 개선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점에 착안해 코스피 상단에 제한을 뒀다. 기업 이익이 크게 늘거나 주주환원율이 상승해야 ROE가 좋아진다. 주주환원의 경우 예측이 어려우니 차치하자. 앞서 얘기했듯이 기업 영업이익 증가율이 기대에 못 미치면서 증시 상단도 열리지 않을 수 있다. 결국 ‘박스권 종목 장세’가 펼쳐질 것이다. 개인적으로 2024년 증시를 상고하저로 전망한다.”
3분기 불확실성 커질 수 있어
상고하저로 전망하는 이유는.“한국 기업의 영업이익 증가율이 2024년 2분기 가장 높게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지수는 영업이익 증가율을 따라가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2분기에 고점이 형성될 수도 있다. 3월 전국인민대표회의 등이 열리는 만큼 중국의 경기 부양 정책에 대한 기대감이 상반기에 반영될 수 있다. 중국은 3년간 경제가 좋지 않았다. 경기 부양책을 더 펼칠 가능성이 있다. 금리인하 기대감도 상반기에 선반영될 수 있다. 하반기에 기준금리를 인하한다는 사실은 모두가 알고 있어 변수가 되지 못한다. 정작 이 시기에는 금리를 인하하더라도 사람들이 긍정적으로 해석할 것 같지 않다.”
하반기를 상대적으로 좋지 않게 보는 이유는 무엇인가
“수급 이슈가 있다. 2024년 7월 공매도 금지가 풀린다. 2021년 5월 공매도 금지가 해제됐을 때 증시가 난리 났었다. 심지어 코스피200과 코스닥150을 대상으로 한 공매도만 재개했는데도 증시가 급락했다. 2024년 11월에는 미국 대선이 있다. 3분기부터 불확실성이 커질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조심할 필요가 있다.”
상고하저라면 장기투자가 적합하지 않을 수도 있는데.
“어디까지나 지수가 그렇다는 얘기다. 약세장에도 주가가 상승하는 기업은 있다. 시장 기조 자체는 우상향할 것이라고 본다. 물론 ‘V자 상승’이 나타나기는 어려울 것이다. 2023년 증시가 좋았던 만큼 단기간에 한 번 더 급등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2월이나 3월에 조정이 나타나면 그때를 이용해야 한다. 너무 급하게 무리해서 시장을 쫓아갈 필요는 없다. 코스피 주가순자산비율(PBR) 0.9배가 2520 근방이다. 이 지점이 깨지면 ‘상승이 끝났다’는 얘기가 나올 텐데, 이때 천천히 모아가면 된다. 한국 시장의 경우 PBR 0.9배 이하에서 주식을 사면 장기적으로 손해 볼 확률이 낮다.”
2024년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발 위기가 온다는 우려도 있다.
“한국의 부동산 부채 문제는 걱정이 많이 된다. 부동산 PF 자금이 원활하게 돌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시장 원칙을 강조했다. 회생이 어려운 기업은 정리되도록 두겠다는 뜻으로 읽혔다. 시장 논리에 따른 접근이다. 개인적으로도 시장 논리를 따르는 것이 옳다고 보는데, 이 경우 증시에 충격이 가해질 수 있다. 다만 기회이기도 한 만큼 도망갈 필요는 없다. 부동산 PF 문제로 증시가 휘청거리면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
염승환 이사는 2024년 시장 주도주는 인공지능(AI) 테마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사진은 SK하이닉스의 고대역폭메모리(HBM).[SK하이닉스 제공]
AI, 중국 경기, 미국 대선이 주요 변수
그 밖에 2024년 주요 관전 포인트는 무엇일까.“강세장이 되려면 주도주가 반드시 필요하다. 2024년 주도 산업은 뭘까. 역시 AI가 시장을 이끌지 않을까. AI의 뒷받침 아래 반도체 산업이 얼마나 성장하느냐가 한국 증시의 기울기를 결정할 것이라 본다. 3년 동안 악화되기만 했던 중국 경기가 어느 정도 회복할될도 주요 변수다. 하반기 가장 큰 이슈는 역시나 미국 대선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색깔은 너무나 다르다. 한쪽은 환경 문제를 중시하고, 다른 한쪽은 화석연료 관련 산업을 좋아한다. AI와 중국 경기, 미국 대선을 중심으로 시장이 흘러가지 않을까.”
AI 섹터 안에 머무는 게 좀 더 안전하다고 보나.
“2023년 하반기 흐름이 좋지 않았지만, 상반기까지는 이차전지주가 뜨겁게 올라갔다. 2023년에는 이차전지 관련주를 포트폴리오에 담은 투자자와 그렇지 않은 투자자의 수익률 격차가 굉장히 컸다. 2024년도 비슷하게 흘러갈 것이라 전망한다. ‘주도주를 하나라도 갖고 있느냐’ 여부로 수익률 격차가 나타날 것이다. 2024년에도 AI 섹터가 시장을 주도할 것으로 전망한다면 한 종목 정도는 포트폴리오에 담아보자. 고대역폭메모리(HBM), 온디바이스(On-Device) 등 AI 테마도 종류가 다양하다. AI 테마 안에서 상대적으로 못 오른 기업을 찾았다면 포트폴리오에 편입해보는 것은 어떨까.”
최진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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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주간동아 최진렬 기자입니다. 산업계 이슈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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