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검은 총선용 악법이라는 입장을 갖고 있다. 그걸 어떤 차원에서 어떻게 대응할지 당과 충분히 논의하겠다.”(2023년 12월 26일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수락 연설 후 질의응답)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2023년 12월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스1]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12월 11일 네덜란드 국빈 방문을 위해 경기 성남시 서울공항에서 공군1호기에 탑승하기 전 인사하고 있다. [뉴스1]
이후 한 비대위원장의 김건희 특검법 관련 발언은 수용 불가 쪽으로 한층 기울었다. 12월 25일 대통령실과 국민의힘은 비공개 긴급 당정협의를 갖고 김건희 특검법 조건부 수용 불가로 입장을 정리했다. 한 비대위원장은 이튿날인 26일 “당정 뜻에 따를 것이냐”는 기자 질문에 “오늘부터 여당을 이끄는 비대위원장이기 때문에 당과 충분히 논의된 내용만 책임 있게 발언하겠다”며 “특검이 총선용 악법이라는 입장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전과는 온도차가 있는 뉘앙스였다.
‘한동훈 효과’ 국민의힘 후원금 5배↑
정치권에서는 한 비대위원장이 총선 승리는 물론, 김건희 특검법 대응을 위해 예상보다 조기 등판했다는 평가가 많다. 차기 유력 대선 주자로 분류되는 그가 총선 출마가 아닌 비대위원장으로 갑자기 정치에 발을 들였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 지지율은 최근까지 30%대에 갇혀 있었다.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참패, 2030 부산 세계박람회(엑스포) 유치 실패, 재계 총수 동원 ‘먹방’ 논란 등으로 여론이 악화한 결과다. 이 가운데 김 여사의 명품백 수수 의혹까지 불거지며 특검 여론에 불이 붙었다.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12월 28일 전화 통화에서 “국민의힘 김기현 전 대표의 사퇴를 감안하더라도 1월 초~중순쯤 비대위를 꾸리면 시기적으로 충분했다”며 “그런데도 이렇게 서둘렀다는 건 윤 대통령이 한 비대위원장을 김건희 특검법을 저지할 목적으로 소환한 것이라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12월 20일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 “한동훈 체제가 들어서면 일체 당무에 언급하지 않을 생각”이라며 “한동훈 체제는 직할체제이기 때문에 윤 대통령과 직접 부딪치게 돼 아무래도 부적절하다”는 글을 남겼다. 한 비대위원장이 윤 대통령의 의중을 좀 더 확실하게 실행하는 사실상 ‘한 몸’ 같은 관계라는 해석으로 읽힌다.
홍준표 대구시장이 2023년 12월 20일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직할체제”라는 내용의 게시물을 올렸다. [홍준표 대구시장 페이스북 캡처]
다만 한 비대위원장이 이 같은 인기를 등에 업고 김건희 특검법 저지 등 윤 대통령의 의중대로만 움직일 경우 총선에서 역풍을 맞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현재 여론은 김 여사 특검이 필요하다는 쪽이 우세하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이 국민일보 의뢰로 12월 7~8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선 “윤석열 대통령이 김건희 특검법에 거부권을 행사하지 말아야 한다”는 응답이 70%를 기록했다(표본오차는 95% 신뢰 수준에서 ±3.0%p. 여론조사와 관련한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이를 무시한 채 김 여사 특검을 끝내 수용하지 않으면 총선 패배와 함께 한 비대위원장 본인의 정치 이미지도 상당한 타격을 입을 수 있다. 대통령과 여론 사이에서 어떤 묘수를 낼지가 그의 당면 과제인 것이다.
2023년 12월 28일 국회 본회의에서 ‘대통령 배우자 김건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임명 등에 관한 법안’(김건희 특별법)이 국민의힘 의원들이 불참한 채 야당 단독으로 가결됐다. [뉴스1]
“한동훈, 먼저 상설특검 제안해야”
강행 처리를 예고해온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등 야당은 12월 28일 국회 본회의에서 김건희 특검법을 통과시켰다. 국민의힘이 표결에 불참했으나 재석의원 180명 전원 찬성으로 통과됐다. 특검법은 재적 의원 과반수 출석에 출석 의원 과반수 찬성으로 의결된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하기로 했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법안이 국회에서 다시 의결되기 위해서는 헌법 53조 4항에 따라 재적의원 과반수 출석과 출석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신율 교수는 “김건희 특검법에 대한 여론과 한 비대위원장 개인의 정치 생명을 두고 봤을 때 한 비대위원장 본인이 윤 대통령에게 먼저 특검을 제안할 수 있어야 한다”며 “야당이 주장하는 특검 시점에 문제가 있다면 상설특검으로 2월 말까지 모든 과정을 끝내면 된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이어 “지지율 낮은 대통령이 뒤로 빠지지 않고 한 비대위원장이 민의를 살린 ‘김건희 리스크’ 해소 방안을 내놓지 못하면 내년 총선 결과는 불 보듯 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슬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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