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의존도 커지는 러시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오른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23년 3월 23일 크렘린궁에서 악수하고 있다. [크렘린궁 제공]
미국은 러시아 군산복합체가 제3국 금융기관을 활용해 우크라이나 전쟁 물품을 조달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이 조치를 시행했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러시아 군산복합체에 연루된 해외 금융기관은 제재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며 “이번 행정명령은 러시아의 불법 전쟁을 도우면 누구든 미국 금융 시스템에 대한 접근 권한을 잃을 위험이 있다는 분명한 메시지”라고 경고했다. 미국 정부의 한 고위 관리도 “러시아의 전쟁 기계 톱니바퀴 장치에 모래를 넣어 공급망을 해체하는 게 우리의 목표”라며 “제3국 금융기관들과 러시아의 관계를 끊게 만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국 은행들이 이 조치의 적용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서방 금융기관들이 러시아에서 철수하면서 중국 은행들에 대한 러시아의 의존도가 높아졌다. 러시아에 대한 중국 은행들의 위안화 대출이 크게 확대됐기 때문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2022년 2월 이후 중국은행과 중국공상은행, 중국건설은행, 중국농업은행 등 중국 4대 국영은행이 러시아 은행들에 대한 대출 규모를 종전 22억 달러(약 2조8000억 원)에서 97억 달러(약 12조5700억 원)로 늘렸다”고 보도했다.
실제로 윌리 아데예모 미국 재무부 부장관은 “러시아의 제재 회피를 도운 중국, 튀르키예,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의 은행들이 이번 행정명령의 타깃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미국 싱크탱크 랜드연구소의 찰스 킹 말로리 국제 위험∙안보 국장도 “미국 정부는 지금까지 중국 은행들에 대한 제재를 주저해 왔다”며 “중국과 러시아 간 교역 급증세를 고려할 때 중국 은행들에 제재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미국은 그동안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직접 군수 물자를 조달했거나 자금을 모금한 개인·단체를 제재 명단에 올려왔다. 세컨더리 보이콧은 미국의 달러 금융 체계를 이용하는 제3국 금융기관이 타깃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직접 제재보다 강력한 수단이 될 수 있다. 말 그대로 ‘전가의 보도’를 빼든 셈이다.
원유 수출에 힘입은 러시아 경제
러시아 모스크바의 한 전자제품 대리점에 중국제 스마트폰이 전시돼 있다. [코메르산트 제공]
러시아의 2023년 GDP에서 에너지 부문 비중은 27%였고, 전체 수출의 57%를 차지했다. 에너지 수출이 러시아 경제를 지탱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러시아가 지난해 수출한 에너지의 절반은 중국으로 갔고, 인도의 점유율도 40%로 높아졌다. 반면 유럽이 차지하는 비중은 2021년 40~45%에서 지난해 4~5%로 낮아졌다.
특히 중국 기업들은 서방 기업들의 러시아 철수로 생긴 빈자리를 메우고 있다. 러시아는 자동차에서부터 반도체까지 필요한 수입품의 조달처를 서방에서 중국으로 바꿨다. 2023년 1월부터 11월까지 러시아로 수입된 새 승용차는 99만2200대로 이 가운데 80%는 중국에서 들어왔다. 현재 러시아에서 대리점 등을 운영하는 중국 자동차 브랜드는 공식적으로 35개며, 19개가 2023년 러시아에 진출했다. 이에 따라 2021년 8%에 불과했던 중국 자동차 업체들의 러시아 시장 점유율은 2023년 55%로 뛰었다.
러시아는 중국으로부터 무기와 군수물자로 쓰일 수 있는 제품들을 대거 수입하고 있다. 미국 싱크탱크 실버라도 정책 액셀러레이터는 2022년 3월부터 2023년 9월까지 러시아에 수입된 반도체의 85%는 중국과 홍콩에서 공급됐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침공 전(27%) 대비 급등한 수치다. 중국 회사들은 러시아에 방탄복과 드론, 야시장비 등 민․군 이중용도 장비도 대거 수출하고 있다. 실제로 러시아는 2023년 중국산 드론을 1억 달러(약 1300억 원) 어치나 수입했다.
러시아는 중국으로부터 이중용도 제품을 수입하는 방식으로 제재의 허점을 십분 활용하고 있다. 이에 따라 러시아와 중국의 교역 규모는 2023년 1~11월 2000억 달러(약 260조 원)를 기록하며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양국의 교역 규모는 2021년 1468억8700만 달러(약 191조 2300억 원)였다. 서방 언론들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계속돼 서방의 제재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중국이 러시아의 경제적·군사적 ‘생명줄’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美, 러시아 동결 자산 압류 추진
미국은 해외에 동결된 러시아 자산 3000억 달러(390조 원)를 압류해 우크라이나에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미국이 이 방안을 고려하는 이유는 바이든 대통령이 제시한 614억 달러(약 80조 원) 상당의 우크라이나 안보지원 예산이 공화당의 반대로 인해 의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어서다. 미국 등 주요 7개국(G7)은 러시아의 자금줄을 차단하기 위해 전 세계에 흩어진 러시아 자산을 동결해 놓은 상태다. 미국은 이 자산을 압류해 우크라이나 지원에 사용하기 위해 동맹국들과 논의하고 있다. 미국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2주년인 2월 24일까지 G7이 구체적인 방안을 정하자는 입장이다. FT는 최근 G7 재무장관들이 모여 러시아 동결 자산을 압류하는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며 미국의 의지 표명으로 서방의 러시아 자산 몰수 작업이 가속화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은 G7과 협력해 국제법을 근거로 압류 권한을 사용할 수 있는지, 의회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지 등에 대한 법적 검토에 들어갔다.미국은 러시아 자금을 직접 우크라이나에 제공하거나 다른 방법으로 우회 지원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이미 러시아 동결자산의 수익금을 우크라이나 재건 비용에 쓰는 방안에 합의했다. 독일 연방검찰은 최근 러시아 금융회사의 프랑크푸르트 은행 계좌에서 7억9000만 달러(약 1조 원)를 압류한 바 있다.
러시아는 미국의 움직임에 대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드미트리 비리체프스키 러시아 외무부 경제협력국장은 “러시아 자산이 압류될 경우 대칭적으로 보복할 것”이라며 “보복 대상이 될 수 있는 서방의 자금 규모가 상당하다”고 지적했다. 러시아는 비우호국의 러시아 투자금 4770억 루블(약 6조7000억 원)을 통제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미국 등 서방의 이런 움직임은 국제법 위반이자 절도”라며 “이는 세계 경제 시스템을 훼손하고 미국뿐 아니라 EU 국가들의 신뢰를 약화해 매우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미국 등 서방은 러시아의 돈줄을 끊기 위해 제재를 더욱 강화하는 동시에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방안도 적극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