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동 로비’ 의혹으로 구속 기로에 놓인 박영수 전 특별검사. [동아DB]
1952년 제주에서 태어난 박 전 특검은 학창시절 서울로 유학했다. 동성고, 서울대 종교학과 졸업 후 고려대 대학원 법학과에 진학했으며 1978년 제20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1983년 서울지검 북부지청(현 서울북부지검) 검사로 첫발을 내디뎠으며 1987년 수원지검 재직 중에는 ‘오대양 집단 자살사건’을 주임검사로 수사를 지휘했다. 2001년 6월 김대중 정부 때 청와대 민정수석실 사정비서관으로 발탁된 그는 2002년 2월 노무현 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도 고속 승진을 거듭하며 노무현 정부의 핵심 의제였던 재벌개혁을 검찰에서 뒷받침했다. 2003년 3월 서울중앙지검 제2차장 시절 SK그룹 분식회계 수사를 지휘하며 최태원 회장을 구속 수사해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2006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 재직 시절에는 현대자동차그룹 비자금 수사로 정몽구 당시 회장을 구속 기소해 ‘재계의 저승사자’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과거 재벌개혁 앞장선 ‘재계의 저승사자’
2007년 검사 생활을 마감한 그는 2016년 박지원 당시 국민의당 원내대표의 추천으로 국정농단 특별검사로 임명되며 전국구 스타가 됐다. 박 전 특검팀은 삼성 등 대기업 뇌물과 문화계 블랙리스트 의혹 등을 대대적으로 수사하며 30여 명을 재판에 넘겨 역대 특검 가운데 가장 큰 성과를 냈다는 평가를 받았다.하지만 2021년 이른바 ‘가짜 수산업자 사건’에 휘말리며 박 전 특검의 명성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포르셰 렌터카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이용하고, 여러 차례 수산물을 받는 등 금품 336만 원을 챙긴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고, 결국 특검팀 출발 4년 7개월 만에 불명예 퇴진했다. 곧이어 대장동 개발 비리 의혹 사건에 연루돼 검찰 수사를 받았고, 6월 22일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해 세 번째 검찰 조사를 받고 구속 기로에 섰다.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1부(부장 엄희준)는 박 전 특검에 대해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수재 혐의 등으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대장동 비리에 대한 검찰 수사가 시작된 지 1년 8개월 만이다. 검찰에 따르면 박 전 특검은 우리은행 이사회 의장으로 재직하던 2014년 11~12월 남욱 변호사(천화동인 4호 소유주) 등 대장동 일당으로부터 컨소시엄 관련 청탁을 받고 200억 원 상당의 이익 및 단독 주택 2채를 제공받기로 약속한 혐의를 받는다. 검찰은 박 전 특검이 실제 우리은행 측에 대장동 사업 컨소시엄 참여를 검토해달라고 요청했지만 우리은행이 내부 반대 등을 이유로 2015년 3월 컨소시엄에 최종 불참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 대신 우리은행은 1500억 원 규모의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여신 의향서를 대장동 일당의 ‘성남의뜰 컨소시엄’에 발급해줬다. 그 결과 성남의뜰 컨소시엄은 대장동 사업자 공모 과정에서 우리은행 등 국내 대형 시중은행의 PF 대출 참여를 강조해 ‘자금 조달’ 부문에서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받으며, 성남도시개발공사로부터 대장동 민간 사업자에 선정됐다. 검찰은 이 과정에서 박 전 특검이 우리은행 여신 의향서 발급 청탁 대가로 5억 원을 수수했으며, 우리은행의 역할이 줄어듦에 따라 약속받은 대가가 200억 원에서 50억 원으로 줄어든 것으로 보고 있다.
또 검찰은 박 전 특검이 2015년 대한변호사협회장 선거 당시 대장동 일당으로부터 선거자금 명목으로 현금 3억 원을 수수한 혐의도 구속영장에 적시했다고 한다. 박 전 특검은 2014년 말 변협회장 선거 캠프를 꾸린 뒤 2015년 초 선거에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대장동 개발 사업은 그 직후인 2015년 초부터 본격 추진됐다.
이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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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주간동아 이한경 기자입니다. 관심 분야인 거시경제, 부동산, 재테크 등에 관한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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