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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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전’ 유력한 미국 신형 호위함 사업 

군함 수출하려면 자국 ‘실적함’ 필요… 해군력 강화 나서야

  • 이일우 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

    입력2025-12-11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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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해군 컨스텔레이션급 호위함 이미지. 핀칸티에리 제공

    미국 해군 컨스텔레이션급 호위함 이미지. 핀칸티에리 제공

    옛 소련이 붕괴한 후 미국 해군력은 명실공히 세계 1위였다. 미국 해군은 자국을 제외한 세계 모든 나라 해군력을 합쳐도 맞설 수 없을 정도의 힘을 가진 것으로 평가됐다. 

    낙후 시설에서 건조되는 美 첨단 군함

    하지만 이것도 이제 옛말이 됐다. 그사이 중국 해군력이 엄청난 속도로 강화됐기 때문이다. 중국이 해안은 물론, 큰 강가에도 조선소를 짓고 건함에 나서는 동안 미국은 조선 카르텔에 발목 잡혀 해군력 현대화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 미군 군함은 반드시 미국 내에서만 건조해야 한다는 ‘존스법(Jones Act)’ 때문이다. 

    대부분 나라에선 여러 조선업체가 경쟁해 군함 건조 일감을 수주한다. 이와 달리 미국은 해군해상체계사령부(NAVSEA)가 군함 설계는 물론, 레이더와 각종 무장 통합까지 총괄한다. 조선사는 그야말로 건조만 맡는 것이다. 가만히 있어도 일감이 쏟아지니 미국 조선소들은 기술개발과 시설 투자에 돈을 쓰지 않았다. 그 결과 미국의 첨단 군사기술을 상징하는 고성능 전투함들은 세계 최강국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낙후된 시설에서 구식 공법으로 건조되고 있다. 당연히 미국의 건함 비용은 치솟고 납기는 느리다. 가령 한국의 최신형 이지스 구축함인 정조대왕함은 척당 약 1조3000억 원의 건조 비용이 들었다. 그런데 정조대왕함과 거의 비슷한 레이더, 전투체계, 무장을 갖춘 미국 알레이버크급 플라이트 IIA는 평균 25억 달러(약 3조6700억 원)에 건조됐다. 

    그나마 수십 척 건조된 주력 전투함 알레이버크급은 ‘양반’이다. 미 해군이 끝내 건조를 취소한 컨스텔레이션급 호위함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당초 컨스텔레이션급은 올리버 헤저드 페리(OHP)급 호위함을 대체하기 위한 보조 전력으로 기획됐다. 저렴한 건조비가 장점인 OHP는 냉전 때 51척이나 건조됐다. OHP 후속 모델로 연안전투함(LCS)이 등장한 바 있다. 그러나 LCS는 탈냉전 이후 저강도 분쟁 대응에 초점을 두고 설계돼 성능이 형편없는 데다 가격까지 높았다. LCS 실패에 대한 반성으로 추진된 게 차세대 호위함 FFG(X) 사업이다.

    미국이 FFG(X) 사업을 시작한 목표는 중국의 급격한 해군력 팽창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따라서 중국 전투함에 맞설 성능을 갖춘 동시에 대량 건조에 적합하도록 알레이버크급보다 저렴해야 한다. 이 사업에는 △미국 록히드마틴(LCS 프리덤급 변형 3500t급) △미국 오스탈 USA(LCS 인디펜던스급 변형 3100t급) △미국 헌팅턴 잉걸스 인더스트리(레전드급 경비함 변형 4200t급) △이탈리아 핀칸티에리(FREMM 카를로 베르가미니급 변형 7000t급) △스페인 나반티아-미국 제너럴 다이내믹스팀(F100 알바로 데 바잔급 변형 5500t급) 등 5개 업체가 경쟁을 벌였다. 미 해군이 선택한 것은 핀칸티에리였다.



    대릴 커들 미국 해군참모총장이 11월 15일 울산 HD현대중공업 조선소(왼쪽)와 한화오션 거제사업장을 잇달아 방문했다. HD현대중공업 제공·한화오션 제공

    대릴 커들 미국 해군참모총장이 11월 15일 울산 HD현대중공업 조선소(왼쪽)와 한화오션 거제사업장을 잇달아 방문했다. HD현대중공업 제공·한화오션 제공

    컨스텔레이션급의 실패

    미 해군은 핀칸티에리가 제안한 모델에 컨스텔레이션급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대대적인 개조에 나섰다. 작고 가벼운 EMPAR 레이더는 체급을 키운 SPY-6 레이더로 교체됐다. 미사일 수직발사기도 더 크고 무거운 모델로 바뀌었다. 이에 따라 선체와 동력 계통을 전면 재설계해야 했고, 배의 덩치가 커졌다. 자연스레 건조 비용도 높아졌다. 원형인 카를로 베르가미니급은 척당 7억 달러(약 1조300억 원)였다. 당초 미 해군이 계획한 컨스텔레이션급 가격은 최대 9억5000만 달러(약 1조4000억 원)였지만 재설계로 1번함 건조비만 14억 달러(약 2조600억 원)를 넘어섰다. 

    납기도 차일피일 미뤄졌다. 2020년 사업자 선정을 마친 FFG(X) 사업은 2030년까지 20척 인수를 목표로 추진됐다. 그러나 1번함 건조는 지난해 4월에야 시작됐다. 사업 취소가 발표된 올해 11월 25일 컨스텔레이션급 1번함 공정률은 12%였다. 미 회계감사원(GAO)은 1번함 인수가 아무리 빨라도 2029년은 돼야 가능할 것으로 평가했다. 저렴한 신형 전투함을 빠르게 대량 도입한다는 컨스텔레이션급 사업은 실패한 셈이다.

    결국 존 펠런 해군성 장관은 컨스텔레이션급 호위함 8척 중 이미 건조가 시작된 2척을 제외한 나머지 계약을 파기하고 ‘더 빨리 건조할 수 있는 옵션’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미 전쟁부(옛 국방부)는 “새로운 프레임워크를 구성해 새로운 함급 군함을 더 빠르게, 더 많이 조달하고자 노력하겠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기존 컨스텔레이션급 대신 새로운 군함 도입 사업을 시작한다는 뜻이다. 그래서인지 컨스텔레이션급 사업 취소 발표 열흘 전 대릴 커들 미 해군참모총장은 한국과 일본의 주요 조선소를 둘러보고 “중국의 조선 능력을 따라잡으려면 동맹의 힘이 필요하다”면서 한일 양국에 건함 협력을 요청했다.

    당초 FFG(X) 사업은 최대 38척에 달하는 초대형 프로젝트였다. 새롭게 시작될 호위함 도입 사업은 규모가 더 커질 가능성이 높다. 앞서 FFG(X) 사업에 제안서를 낸 업체는 물론, 세계 유력 조선업체가 도전장을 낼 것이다. 다만 빠른 납품과 낮은 가격, 장기간 대양 작전에 적합한 대형 선체 등 미 해군의 조건을 고려하면 미국과 유럽에는 마땅한 후보가 없다. 미국 조선소들이 제안하는 것은 3000~5000t 설계인 데다, 비싸고 성능과 확장성도 떨어진다. 이탈리아 핀칸티에리는 이미 실패한 사업자로 낙인찍힌 상황이다. 프랑스 나발그룹과 독일 TKMS는 미 해군의 요구에 부합하는 제품군이 없다. 그나마 조건을 충족할 만한 게 영국 BAE 시스템스의 26형 호위함이나 스페인 나반티아의 F110 보니파스급 호위함이다. 다만 이들 모델은 자국 해군 납품 과정에서 가격 및 납기 조건을 못 맞춘 바 있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미 해군의 새 호위함 사업은 ‘한일전’이 될 가능성이 크다.

    한국 조선 역량, 일본 압도

    미 해군은 이지스 레이더와 전투체계를 탑재하고 장기간 대양 작전이 가능한 체급의 호위함을 요구하고 있다. 한국 해군에서 호위함으로 분류되는 충남·대구급은 덩치가 작아 미국에 제안하기 어렵다. 따라서 국내 조선업체들이 미국 호위함 사업에 도전할 경우 HD현대중공업은 HDF-6000, 한화오션은 KDDX-S라는 수출용 옵션을 제시할 가능성이 크다는 게 필자의 분석이다. 이들 모델은 6500~7000t급 고성능 전투함이다. 한편 일본은 호주에 11척을 수출할 예정인 신형 FFM을 들고 나올 공산이 크다. 미쓰비시중공업과 재팬 마린 유나이티드가 함께 건조하는 6500t급 함정이다.

    사실 조선업체의 기술력 및 경쟁력만 놓고 보면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은 일본 미쓰비시중공업이나 재팬 마린 유나이티드를 넘어선다. 매출 규모, 수주 잔량 등 객관적 수치에서도 일본 조선업체들을 압도한다. 호주 호위함 수주 이전에는 해외 군함 수출 실적이 전무했던 일본과 달리, 국내 조선업계는 수출과 해외 협업 경험도 풍부하다. 개별 군함 설계를 봐도 한국이 우위다. 국내 조선업체들의 설계안은 국산 첨단 무기체계를 갖췄다는 점에서 일본 신형 FFM보다 우수하다. 가령 다기능 위상배열레이더의 경우 통상적인 방공은 물론, 탄도미사일도 대응할 수 있는 고성능 대형 모델이다. 탑재되는 미사일도 일본 호위함보다 많다. 그런데 이는 장점인 동시에 단점이 되기도 한다. HDF-6000과 KDDX-S는 레이더와 전투체계, 무장 모두 한국형 모델이다. 다시 말해 미국에 수출하려면 미 해군 표준 장비들로 교체해야 한다는 것이다. 개발 기간 연장과 비용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 무엇보다 두 군함 모두 아직 개념도만 존재하는 ‘페이퍼 십’인 점도 간과할 수 없다. 

    반면 일본 신형 FFM은 일본 해상자위대 12척, 호주 11척 등 33척의 수주 실적이 있다. 이미 상세 설계까지 완료돼 건조 중인 실존함이다. 신형 FFM의 레이더는 일본산이지만 미국산 센서, 통신장비, 무장 등과 높은 호환성을 갖췄다. 게다가 신형 FFM은 이미 대량 수주에 성공해 척당 8000억 원대 가격이 사실상 확정된 상황이다. 

    원래 신형 FFM은 해상자위대 장기 건함 계획에 없던 군함이다. 그 원형인 모가미급 호위함 사업의 경우 해상자위대 2선급 전력인 지방대 중소형 함정을 대체하고자 추진됐다. 그래서 원래 계획된 일본의 새 호위함은 만재배수량 3000t 미만에 빈약한 무장을 갖춘 경비함 수준이었다. 이런 상황은 2015년 일본이 ‘집단적 자위권’ 관련 11개 법안을 제·개정하고 해상자위대 전력을 대폭 강화하기로 결정한 뒤 급변했다. 호위함 사업 목표가 2선급 중소형 군함 획득에서 주력 전투함 도입으로 바뀐 것이다. 

    일본 해상자위대 신형 FFM(왼쪽)과 기존 모가미급 호위함 이미지. 일본 방위장비청 제공

    일본 해상자위대 신형 FFM(왼쪽)과 기존 모가미급 호위함 이미지. 일본 방위장비청 제공

    전투함 덩치, 도입 규모 키운 일본

    이에 따라 초계함 수준이던 3000t급 DEX 사업은 5500t급 호위함 사업(FFM)으로 변경됐다. 도입 규모도 22척으로 늘었다. 나아가 일본은 FFM 건조 사업이 시작될 무렵 이를 더욱 확대 개량한 고성능 군함 도입 계획도 통과시켰다. 그 결과 지금은 5500t 규모 모가미급 12척, 6500t 규모 신형 FFM 12척 도입으로 판이 커졌다. 일본이 10년 전 건함 계획을 그대로 실행했다면 지금처럼 대형·고성능 전투함이 나올 일도, 해외 군함 시장을 넘볼 일도 없었을 테다. 일본 정부의 결단이 자국 해군력은 물론, 군함 수출 경쟁력도 키운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의 해군력 증강에 아쉬운 대목이 있다. 안보 환경 변화에 따라 이미 20년 전부터 해군 정원 확대와 전투함 추가 확보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돼왔다. 미국도 한국에 동맹국으로서 역할을 확대해달라며 해군력 증강 및 투사 범위 확대를 촉구하고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과 인프라를 가진 국내 조선업계는 이 같은 변화에 맞춰 다양한 군함을 건조할 능력을 갖췄다. 하지만 정부는 해군력을 확장하는 동시에 더 크고 강력한 군함을 대량 도입하는 데 소극적인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쓰지 않는 무기는 남도 쓰려 하지 않는다. 성능과 신뢰성, 군수지원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K-방산이 한미 마스가(MASGA: 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 협력에 따른 수혜를 입기 위해서는 한국 해군의 ‘실적함’이 필요하다. 당장 한국 해군이 운용하거나 건조 중인 새 함정이 마땅치 않다면 미국은 자국 조선소 현대화 투자만 받고 다른 나라 군함을 구입할 수도 있다. 천문학적 규모가 될 미국 건함 사업 수주 ‘한일전’에서 이기려면 한국 해군부터 키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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