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또 1등’ 당첨자가 수십 명 나온 서울 노원구 한 복권 판매점 앞에 사람들이 길게 줄 지어 서 있다. 뉴스1
로또 판매점 성패 좌우하는 ‘입지’
복권 판매점 앞에 걸어놓은 플래카드에는 ‘축! 55번째 1등 당첨!! 19억 원’이라는 글이 쓰여 있었다. 이 복권 판매점에서 현재까지 1등 당첨이 55번이나 나왔다는 광고다. 2023년 말 기준으로 전국 복권 판매점 수는 8438개다. 그 가운데 일부에서만 1등 당첨자가 압도적으로 많이 나온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이런 곳은 ‘일확천금’을 노리는 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아 복권 판매 수수료 수입이 크게 늘어난다고 한다.하지만 모든 복권 판매점이 장사가 잘되는 건 아니다. 한 민간 창업포털 집계에 따르면 서울에는 복권 판매점이 1600여 개 있는데 5년 내 폐업률이 20~25% 수준이다. 일반 자영업체 폐업률과 비슷하다. 과거 복권 판매점은 “한번 창업하면 안정적으로 운영된다”고 해 부러움의 대상이었으나 이제는 옛말이 돼버렸다고 한다.
창업 지원 멘토를 자처하는 한 블로거는 복권 판매점 성패의 관건으로 입지를 꼽았다. 로또는 ‘동선형(動線形) 소비’, 즉 사람들이 어떻게 이동하는지에 따라 소비가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특성을 보이는 상품으로, 이를 감안한 위치 선정이 절대적이라는 설명이다. 이를테면 출근길 지하철역 앞에서 커피를 사거나, 산책로 편의점에서 즉흥적으로 음료를 구매하듯이 가깝고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곳에 판매점을 열어야 구매자가 많아진다는 의미다. 사람들이 길을 지나다가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곳은 풍수의 눈으로 해석하면 사람을 끌어들이는 지기(地氣)가 왕성한 터다.

중국 지안(集安)에 있는 고구려 옛 수도 국내성 터. 성곽의 허리를 잘라 도로를 놓았다. 동아DB
물 고이는 곳에 돈 모인다
앞에서 소개한 노원구 복권 판매점은 과연 어떨까. 이곳은 대단지 아파트 상가가 밀집한 지역이다. 서울지하철 7호선 노원역과 마들역, 4호선 노원역이 인근에 있고 버스정류장도 바로 가까이에 있다. ‘동선형 소비’가 발생하기에 안성맞춤인 위치다.그러나 전통 풍수 관점에서는 흠결도 있어 보였다. 전통 풍수에서는 산을 등지고 물을 앞에 둔 배산임수(背山臨水)를 길하다고 보는데, 이곳은 중랑천을 등지고 앞으로 불암산을 바라보는 배수임산(背水臨山) 형상이기 때문이다.
눈에 띄는 것은 이처럼 다소 부족해 보이는 지형을 묘하게도 주변 인공물들이 보완해준다는 점이다. 복권 판매점 뒤 거대한 아파트 단지(상계주공 10단지)가 산 구실을 하고, 바로 앞 도로가 물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 도로는 활처럼 감겨 있는데, 횡단보도가 설치돼 있어 급하게 흘러가지 않는다. 사람(혹은 자동차)들이 빨리 흩어지지 않고 물이 고이듯 모이는 형국이다. 게다가 아파트 단지를 뒤쪽에서 감싸듯 흐르는 중랑천은 공배수(拱背水)로서 좋은 기운을 돋우는 기능을 한다. 배산임수 명당이 인위적으로 이뤄진 셈이다. 이를 ‘인작(人作) 명당’이라고 한다. 그동안 1등 당첨자를 여럿 배출해 전국구 로또 명당으로 알려진 복권 판매점 중에는 이곳처럼 인위적인 배산임수 구조를 가진 곳이 꽤 있다.
사실 전통 풍수에서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배산임수론은 우리 고유 풍수론과는 차이가 난다. 삼국시대 고구려나 백제에서는 도읍을 정할 때 큰 산을 끼고, 강(물)에 의지해 궁궐을 세웠다. 대산의수(大山依水) 풍수관에 근거를 둔 것이다. 고구려 궁궐터인 중국 지안(集安)의 국내성은 서북쪽으로 산을 끼고 동남쪽 물에 의지하는 대산의수 형국이다. 백제 시조 온조 역시 나라를 열 때 동쪽으로 높은 산을 끼고 한수(漢水)에 의지하는 입지관을 보였다. 한국 풍수관에서는 꼭 산이 뒤에 있고 물이 앞에 있어야만 좋은 터가 아닌 것이다.

중복이던 7월 30일 오후 서울 한 삼계탕 전문점 앞에서 시민들이 입장을 기다리고 있다. 뉴시스
도시의 기(氣)가 머무는 자리
중요한 건 배산임수 같은 외형적 틀이 아니다. 그 터에 기운이 배어 있는지 여부다. 물론 기운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감별해내는 게 쉽지 않다. 이와 관련해 최근 발표된 ‘온라인복권 당첨 판매점의 풍수 및 입지 특성에 관한 연구’라는 논문이 눈길을 끈다. 이 논문의 저자(양성규·양승우)들은 서울에서 장기간(2008년 11월~2024년 5월) 영업하면서 복권 상위 당첨자(1·2등)를 지속적으로 배출한 점포들의 입지 특징을 규명했다. 그 결과 몇 가지 공통점이 발견됐다. 먼저 지형의 종착점, 즉 산줄기가 이어지다가 뚝 멈추면서 물길이 시작되는 지형에 자리한 점포에서 1등 당첨 확률이 눈에 띄게 높았다. 풍수에서는 이런 곳을 땅 기운이 뭉치는 혈(穴)자리라고 본다. 여기서는 비단 복권 장사만 잘되는 게 아니다. 식사 시간 때 사람들이 줄 지어 기다리는 ‘대박 식당’ 역시 대부분 이런 지형적 특징을 갖고 있다. 사람들 발길을 이끄는 지기가 충만하기 때문이다.그런데 복권 명당에서는 대박 식당과는 또 다른 특징도 발견됐다. 버스정류장과의 접근성이 좋을수록 1, 2등 당첨 가능성이 컸다는 점이다. 앞 논문의 저자들은 이를 “도시의 기가 머무는 자리”라고 표현하면서 “버스 승차 대기로 보행 흐름의 멈춤이 있는 버스정류장 요소가 복권 판매 매출 및 고액 누적 당첨과 관련이 있다”고 해석했다. 즉 버스를 기다리느라 잠시 체류하는 사이 충동 구매욕이 발생하고, 그것이 로또 구입으로 이어져 당첨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풍수에서 멈춤 현상은 물길이 흘러와 모이는 곳에서 발생한다. 물은 재물을 주관하기에 물이 모이는 곳은 재물이 풍성하다. 이를 도시에 적용해보면 물길은 도로로 치환된다. 도로의 흐름이 멈추는 곳은 버스정류장이다. 곧 버스정류장 근처는 일시적 멈춤을 통해 생기가 바로 빠져나가지 않으면서 재물을 모을 수 있는 핵심 변수가 된다. 이에 최적화된 영업장이 바로 복권 판매점인 것이다. 결국 도시 문명의 발전과 이에 따른 사람들의 움직임 패턴이 새로운 ‘도시 명당’을 창출했다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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