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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의 쌀’ ‘첨단기술의 집약체’로 일컬어지는 반도체는 중간재 성격을 갖기에 일상에 직접적으로 모습을 드러내진 않는다. 하지만 어느 산업에나 존재하며, 반도체가 들어가지 않은 전자제품을 찾기 힘들 만큼 우리 삶에서 필수불가결한 부분으로 자리매김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왼쪽)과 윤석열 대통령(가운데)이 5월 20일 경기 평택시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을 시찰하고 있다. [뉴시스]
반도체가 세계 경제의 핵심 자원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해 영국 시장조사업체 TS롬바르드의 로이 그린 경제학자는 미국 경제매체 ‘CNBC’와 인터뷰에서 “반도체는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새로운 석유’”라며 “반도체 칩은 제조업과 소비자 가전의 중요한 부품이었으나, 앞으로 사용 용도가 교통, 디지털서비스로 확대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4차 산업혁명을 이끌 ‘新석유’
냉장고, 세탁기 등 일상에서 사용하는 전자기기에는 대부분 반도체가 들어간다. [GettyImages]
반도체 칩 종류는 쓰임새와 구조에 따라 수십만 개가 넘는다. 이 중 데이터를 저장하는 메모리반도체, 연산·제어를 담당하는 비메모리반도체 등 기능에 적합한 여러 칩이 탑재돼 제품을 완성한다. 스마트한 기능을 갖춘 TV나 냉장고에는 10개 내외, 스마트폰에는 10개 이상의 반도체 칩이 들어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반도체가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을 중심으로 한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핵심 기반 기술로 인식되면서 세계 각국은 반도체를 국가 전략사업으로 키우고자 발 벗고 나서고 있다. 다양한 데이터 확보와 가공이 중요한 상황에서 그 역할을 수행하는 게 바로 반도체이기 때문이다.
반도체는 메모리반도체와 비메모리반도체로 나뉜다. 업계에 따르면 시장 규모는 3 대 7 정도다. 메모리반도체는 데이터를 영구 저장하거나 임시 저장하는 역할을 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한국 기업이 60% 이상 세계시장을 점유하고 있다. 휘발성 메모리반도체인 D램과 비휘발성 메모리반도체인 낸드 플래시(Nand Flash) 등으로 시장이 형성돼 있다.
D램 시장에서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미국 마이크론이 3강 구도를 이루며 독주해왔다. D램은 개인용 컴퓨터, 노트북, 스마트폰, 그래픽카드, 차량용 반도체 등 데이터가 저장되는 모든 공간에 사용된다. ‘현명한 반도체 투자’의 저자이자 연세대에서 반도체 소재로 박사학위를 받은 우황제 박사는 “D램은 오랫동안 제조 기술이 발전해온 만큼 낸드 플래시보다 제조가 어렵다. 아무리 많은 금액을 투자해도 방대한 전문 인력과 수십 년 이상 쌓아온 노하우가 없으면 도전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에 반해 낸드 플래시는 시장 개화가 늦었던 만큼 아직은 기술적 진입 장벽이 상대적으로 낮은 것으로 인식된다. 하지만 메모리반도체 고용량화에 따라 낸드 플래시 구조가 복잡해지고 제조 기술이 발전하면서 기술 장벽이 점차 높아지는 추세다.
비메모리반도체는 데이터 저장이 아닌 다른 목적으로 사용되는 모든 반도체를 통칭한다. 그만큼 반도체 종류가 수없이 많고, 시장 규모도 메모리반도체에 비해 훨씬 크다. 컴퓨터 두뇌 역할을 하는 CPU, 스마트폰과 디지털 TV에 사용되는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등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 우 박사는 “비메모리반도체는 전자기기의 ‘뇌’ 역할을 하는 연산 반도체, 디스플레이의 화려한 화면을 만드는 그래픽 반도체, 통신 신호를 처리하는 통신 반도체, 외부에서 들어온 빛을 감지해 전기 신호로 바꿔주는 센서 반도체, 기계장치가 정밀하게 움직이도록 구동을 돕는 구동 반도체를 아우른다”고 설명했다.
진입 장벽 높은 독과점 시장 구조
스마트폰에 탑재된 비메모리반도체 AP는 모든 명령을 처리하며 각종 애플리케이션의 작동과 그래픽 처리 등을 담당한다. [GettyImages]
스마트폰의 핵심이 되는 비메모리반도체는 AP다. 모든 명령을 처리하고 각종 애플리케이션 작동과 그래픽 처리 등을 담당한다. 스마트폰의 공간 절약과 전력 소비 절감을 위해 컴퓨터의 CPU 기능과 메모리, 하드디스크, 그래픽 카드 등 복잡한 시스템을 AP에 모두 구현한다. 이에 따라 모든 칩셋이 한곳에 모여 있다는 의미로 ‘SoC(System on Chip)’로도 불린다. 비메모리반도체는 칩 종류가 워낙 다양하다 보니 칩 설계에 주력하는 기업과 제조 기업이 구분되는 경우도 흔하다.
이러한 산업 특성에 맞춰 반도체 기업은 크게 3가지 형태로 구분된다. 설계를 전문으로 하는 팹리스(Fabless), 팹리스가 설계하면 제조를 담당하는 파운드리(Foundry), 두 가지 사업을 모두 병행하는 IDM(Integrated Device Manufacturer: 종합반도체 회사)이다. 한국 삼성전자·SK하이닉스와 미국 마이크론·인텔은 IDM, 대만 TSMC·UMC는 파운드리, 미국 엔비디아·AMD·퀄컴 등은 팹리스 기업이다. 반도체 기업들은 앞서 설명한 것처럼 높은 기술 장벽으로 독과점 구조를 갖고 있다. 또한 산업 특성상 매년 설비투자에 수조 원 이상을 들여야 제조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어 진입이 쉽지 않다. 업계에서는 반도체 설비투자를 향후 시장 성장세를 전망할 수 있는 일종의 선행 지표로 인식한다. 세계 1위 파운드리 기업 TSMC는 1월 올해 설비투자를 지난해보다 3분의 1 이상 늘어난 400억~ 440억 달러(약 50조5720억~55조6000억 원)로 책정했다고 밝혔다. 삼성전자는 5월 24일 반도체·바이오·신성장IT 부문에 5년간 450조 원 투자 계획을 발표했는데, 반도체 분야에만 300조 원가량을 투자할 것으로 전해졌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최근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는 반도체 분야는 자동차용 반도체다. 전기차와 자율주행차가 등장하면서 자동차는 움직이는 전자기기로 인식되고 있다. 차량용 반도체는 자동차에 장착되는 전자기기를 제어하는 데 사용되며 센서, 엔진, 제어장치, 구동장치 등 핵심 부품에 탑재된다. 현재 자율주행차의 핵심 요소로 꼽히는 첨단 운전자 지원 시스템(Advanced Driver Assistance System·ADAS)에는 MCU, 전자제어장치(ECU), 그래픽처리장치(GPU) 등의 반도체가 들어간다.
자율주행차와 함께 성장하는 차량용 반도체
자율주행 기술은 시스템이 운전에 관여하는 정도와 운전자가 차를 제어하는 방법에 따라 0~5레벨로 점진적으로 구분된다. 레벨 0은 전통적 주행, 레벨 1은 운전자 지원, 레벨 2는 부분 자동화, 레벨 3은 운전자 개입이 필요한 조건부 자동화, 레벨 4는 고도 자동화, 레벨 5는 완전 자동화 단계다. 현재 적용 중인 자율주행 성능은 레벨 3이 가장 높은 수준이지만, 자율주행 고도화를 위한 반도체 연구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글로벌 컨설팅기업 맥킨지는 지난해 8월 ‘자율주행 시대를 위한 자동차 반도체’ 보고서에서 현재 상용화된 레벨 2 기술이 2030년까지 자동차 반도체 칩 수요를 이끌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와 함께 자율주행 기술 발전에 따라 2025년부터 레벨 3, 4의 차량용 반도체 칩 매출도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자율주행차 한 대에 탑재되는 반도체는 1500개가 넘는다. 업계에서는 자율주행차 시장의 성장이 차량용 반도체 시장 발전을 견인한다고 분석한다. [GettyImages]
강현숙 기자
life77@donga.com
안녕하세요. 주간동아 강현숙 기자입니다. 재계, 산업, 생활경제, 부동산, 생활문화 트렌드를 두루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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