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창 롤스로이스 막걸리. 재료와 숙성기간, 도수에서 기존 막걸리들과 차별화를 했다. [해창 제공]
얼마 전 전통주 업계에서 들은 신선한 소식이다. 주인공은 해남 해창 주조장의 해창 롤스로이스. 해남의 유기농 찹쌀을 사용, 무감미료로 만든 막걸리로 4번에 걸쳐 발효와 숙성을 진행, 이후 2달 이상을 숙성한 제품이다. 일반 막걸리보다 도수가 3배나 높은 알코올 도수 18도를 자랑한다.
어떻게 막걸리가 10만 원을 넘을 수 있느냐는 부정적인 의견이 많았지만, 이번 추석 때 해당 제품은 보기 좋게 완판이 되어버렸다. 그만큼 가치소비를 중시한다는 트렌드를 반영한 모습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요즘에는 전통주를 비롯한 막걸리 자체가 핫하다. 주류 분야에서 가장 주목받는 제품군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막걸리의 질적 성장이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중성보다 희소성 추구
이러한 고가 전략은 막걸리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여러 아이템이 니치 마켓(niche market)이라고 불리는 틈새시장에서 활약한다. 기존의 니치 시장과 다른 것은 단순히 틈새만 노리는 데서 그치지 않고, 고부가가치 시장으로 이끌고 있다는 점이다. 프랑스 보르도 및 부르고뉴의 고급 와인, 스코틀랜드의 싱글 몰트 위스키, 그리고 특수한 소비층을 위한 니치 향수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양보다 질, 대중성보다는 희소성을 추구하는 제품군이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시중에서 만날 수 있는 다양한 프리미엄 막걸리 제품. [명욱 제공]
지금 막걸리의 트렌드는 ‘고급화’다. 이미 10년 전부터 1만 원이 넘는 제품들이 하나둘씩 등장하며 시장 예열을 충분히 마쳤다. 이 중에서도 고급 막걸리계의 선구자를 뽑는다면 울산의 복순도가와 자희향을 꼽을 수 있다.
복순도가는 최초의 샴페인 막걸리라는 별명으로 소비자 가격 1만 2000원으로 시작했으며, 2014년 삼성 회장단 건배주로 선정된 자희향은 ‘향이 너무 좋아 마시기 아쉽다’는 의미의 석탄주(惜呑酒) 방식을 복원해 역시 1만 원이 넘는 가격에 등장하며 두터운 마니아층을 만들었다.
이러한 마니아층이 새로운 양조 전문가를 탄생시켰고, 중장년층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던 막걸리에 젊은 감각이 더해지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제품이 한강 주조의 나루 생막걸리, 단양의 도깨비 술, 시향가, 술아 핸드메이드, 산정호수 막걸리, 추연당, 삼양춘 등이다.
막걸리의 고급화는 단순히 가격을 올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다양한 방식으로 만들다보니 가격이 올라갔고 그 가치를 소비자가 인정한 형태라고 볼 수 있다. 다양화를 추진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고급화가 이뤄진 것. 결과적으로 와인, 수제 맥주, 그리고 위스키 애호가까지도 막걸리 및 전통주에 눈을 돌리는 계기가 됐다. 기존에 없던 새로운 소비 시장이 창출된 것이다.
전통주의 온라인 시장 확산 계기된 코로나19
막걸리는 고급화 전략을 통해 제품 차별화를 이뤘다. [GETTYIMAGES]
이러한 프리미엄급 제품은 90% 이상이 소규모 양조장에서 만들어진다. 대규모 시설을 갖춘 곳에서는 하나하나 수제로 만들기에는 효율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10년 전만 해도 작은 양조장에서 제품을 만든다는 것은 어려웠다. 하지만 지금은 가능하다. 온라인 쇼핑몰과 M세대 덕이다. 지역 특산주 면허만 있으면 언제든지 비대면으로 판매할 수 있는 온라인 쇼핑몰이 있고, 이러한 다양성을 인정하고 소비해주는 M세대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분야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로 뜨고 있기도 하다.
코로나 19는 오히려 프리미엄 막걸리 및 전통주의 온라인 시장을 크게 확산시켰다. 막걸리와 전통주가 술 중에서 유일하게 인터넷으로 판매되기 때문이었다. 코로나 시대의 혼술, 홈술 문화와 정확하게 맞아떨어진 데다가 외국 주류 기업이 한국에서 직접 마케팅을 하기가 어려운 것도 전통주 업계에는 도움이 됐다. 일본 맥주, 사케, 소주 등이 빠진 부분을 자연스럽게 전통주가 메웠다.
막걸리와 반대의 길을 가는 와인
와인업계는 초저가 와인으로 승부수를 띄웠다. [GETTYIMAGES]
이미 도스코파스는 연간 판매량 200만 병을 넘어섰고, 롯데 마트 와인 역시 초기 주문한 40만 병이 한 달 만에 소진된 상황이다. 와인 업계에서는 굉장히 이례적인 상황이다. 이렇게 가격을 내린 것은 단순히 가성비만을 추구한 것이 아니다. 기존의 맥주, 소주, 막걸리의 고객층을 와인으로도 유도한 것이다. 가격 저항선 때문에 와인에 쉽게 다가가지 못했던 소비층에 적극 어필한 것이다.
흥미로운 건 이와 함께 고급 와인도 매출을 올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 역시 코로나와 관련이 깊다. 원래 이맘때면 공항은 해외 여행객으로 붐빈다. 대부분 면세점에서 뭔가를 하나 고르게 마련인데 주류는 화장품, 패션 제품, 담배에 이어 4위를 차지하는 효자 품목이었다. 주세와 부가세를 내지 않는 만큼, 국내 구입가와 가격차이가 컸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고급 주류를 면세로 사기 어려워졌다. 사회적 거리 두기 단계 강화로 인해 레스토랑이나 바에서 술을 즐기기도 꺼려지는 상황이라 소매점에서 구매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자연스럽게 해외였던 고급 와인의 구매처가 국내 주류 소매점으로 바뀌었다.
관세청 수출입통계 자료에 따르면 2020년 1월부터 6월까지 전반기 국내의 와인 수입량은 2019년 전반기 대비 9.9% 증가한 2만3063톤, 수입금액은 11.0% 증가한 1억 3480만 달러(한화 약 1626억 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실질적으로 와인 소비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시각도 있다. 구입 장소만 해외 또는 면세점에서 국내 소매점으로 바뀐 것뿐, 결과적인 소비량은 늘지 않았다는 의견이다.
저가의 막걸리 시장은 고급화로 트렌드를 이끌고 있으며, 와인은 기존의 고급 이미지를 벗고 대중화를 추진하고 있다. 정반대의 길을 걷는 듯하지만, 공통점도 있다. 다양화다. 막걸리는 와인, 및 맥주, 위스키 애호가들이 눈을 돌릴만한 고급스러운 제품으로 어필하고 있고, 와인은 가격을 낮춤으로써 소비를 머뭇거리던 고객층에 어필했다. 이러한 구성의 다양화는 ‘고정관념 탈피’라는 시대적 요구에도 부응하는 현상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