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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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배터리 수주 잔고 2000조 향해 뛴다

LG엔솔 도요타 납품으로 수주 잔고 1000조 돌파… 중국 저가 LFP 배터리와 경쟁이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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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슬아 기자

    island@donga.com

    입력2023-10-16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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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국내 배터리 3사 (LG에너지솔루션·SK온·삼성SDI)의 배터리 수주 잔고 총액이 1000조 원을 돌파했다. [GETTYIMAGES]

    최근 국내 배터리 3사 (LG에너지솔루션·SK온·삼성SDI)의 배터리 수주 잔고 총액이 1000조 원을 돌파했다. [GETTYIMAGES]

    “일본은 ‘배터리 종주국’이라는 자존심이 센 나라다. 1990년대 소형 리튬이온 배터리를 가장 먼저 상용화했기에 기술 측면에서 누구에게도 뒤처지지 않는다는 생각이 있다. 이런 배경에서 도요타가 LG에너지솔루션에 손을 내민 것은 굉장한 화제일 수밖에 없다. 일본 1등 완성차 기업이 K-배터리 기술력을 인정했다는 의미이기에 그렇다.”

    선양국 한양대 에너지공학과 교수는 10월 10일 LG에너지솔루션(LG엔솔)과 도요타의 전기차 배터리 공급 계약에 대해 이같이 평했다. 이번 계약으로 국내 배터리업계는 고무된 분위기다. 자국산 배터리에 자부심이 강한 일본 완성차 기업이 한국 배터리를 선택한 것은 물론, 이번 계약을 기점으로 국내 배터리 3사(LG엔솔·SK온·삼성SDI)의 배터리 수주 잔고 총액이 사상 처음 1000조 원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LG엔솔은 10월 5일 도요타와 대규모 장기 배터리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고 발표했다. 2025년부터 10년간 도요타가 미국에서 생산하는 전기차에 배터리를 납품하는데, 그 규모가 연간 전기차 25만 대 분량인 20GWh(기가와트시)다. 금액으로 환산하면 약 30조 원에 달하며, 합작 공장을 제외한 단일 수주 기준으로는 최대 규모다. 도요타가 LG엔솔로부터 배터리를 공급받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로써 LG엔솔은 글로벌 톱5 완성차 기업(도요타·폭스바겐·현대차·르노닛산·스텔란티스)에 모두 배터리를 납품하게 됐다.

    LG엔솔과 도요타의 계약으로 국내 배터리 3사의 수주 잔고는 1000조 원을 돌파했다. 올해 2분기 기준 LG엔솔의 수주 잔고는 약 440조 원, SK온은 290조 원이었다. 구체적인 캐파(생산능력)를 밝히지 않는 삼성SDI의 경우 증권가에서 수주 잔고를 260조 원으로 추산하고 있다. 여기에 LG엔솔이 도요타로부터 30조 원의 수주를 따냄으로써 3사 전체 수주 잔고가 1000조 원을 넘어선 것이다. 지난해 연간 매출 기준으로 LG엔솔(25조5986억 원)은 18년, SK온(7조6177억 원)은 38년, 삼성SDI(20조1241억 원)는 13년 치 일거리를 선제적으로 확보한 셈이다.

    국내 배터리 기업의 수주 잔고는 수년간 꾸준히 증가세를 나타내왔다(표 참조). LG엔솔은 2020~2022년 말 기준 각각 150조, 260조, 380조 원 수주 잔고를 보유했다. 그러다 올해 도요타 수주로 470조 원을 기록하게 됐다. SK온의 수주 잔고는 2021년 130조 원, 2022년 220조 원에서 올해 290조 원이 됐다. 삼성SDI의 경우 2020~2022년 각각 75조, 100조, 130조~140조 원 수주 잔고를 올리다가 올해 260조 원까지 늘어난 것으로 추산된다.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현재 글로벌 배터리 시장점유율 순위는 중국 정부의 전폭적 지원을 받는 CATL, BYD를 제외하면 국내 배터리 3사가 나란히 톱3를 차지하고 있다. K-배터리 기술력을 세계무대에서 인정받으며 수주액이 점차 늘고 있는 것이다.



    중대형 배터리 개발 일본에 앞서

    한국이 지금처럼 글로벌 배터리 시장에서 선전할 수 있던 데는 배터리 사업 성장성을 내다본 각 기업의 선구안이 주효했다는 평가다. LG는 1995년 2차전지 독자 개발에 나섰고, 1998년 일본에 이어 두 번째로 소형 리튬이온 배터리 양산에 성공했다. 다만 이후 전기차용 중대형 배터리를 개발하기까지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매년 적자가 쌓여 2005년에는 2000억 원까지 불어났고 사업을 접을 위기에 봉착하기도 했다. 그러나 구본무 당시 LG그룹 회장이 배터리 사업을 강력하게 밀어붙여 현 LG엔솔이 존재할 수 있었다. SK와 삼성도 2000년대부터 중대형 배터리 개발 및 관련 사업을 본격화했다. 한국이 배터리 기술력 면에서 종주국 일본을 추월할 수 있던 배경이다.

    선양국 교수는 “일본은 가전제품 등에 사용할 소형 2차전지 개발만 목표로 했지 전기차 배터리 시장은 내다보지 못했던 것 같다”며 “국내 기업들이 천문학적 적자를 내면서도 중대형 배터리 개발에 나섰던 것은 오너의 촉이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다”고 말했다.

    K-배터리는 2009년 무렵부터 세계 최대 배터리 시장인 북미에서 존재감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2009년 LG엔솔 전신인 LG화학이 세계 최초로 배터리를 양산해 미국 완성차 기업 제너럴모터스(GM) 전기차에 납품하는 계약을 맺으면서다. LG는 이어 포드, 르노, 아우디 등 다수의 글로벌 완성차 기업과 배터리 공급 계약을 체결했고, 2019년에는 GM과 첫 배터리 합작 공장을 설립했다. 이후 SK와 삼성도 북미 진출을 선언했다. 현재 SK온은 포드, 삼성SDI는 스텔란티스·GM과 손잡고 합작 공장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K-배터리가 북미 70% 점유할 것

    이들 기업의 생산시설은 현재 미국 동부에 ‘K-배터리 벨트’를 형성하고 있다. 미시간·인디애나·오하이오·테네시·켄터키·조지아주 등에서다(그림 참조). 생산시설이 모두 완공되면 LG엔솔은 북미에 단독 공장 2개와 합작 공장 6개를 합쳐 연간 343GWh 생산능력을 갖추게 된다. SK온은 185.5GWh(단독 공장 2개·합작 공장 4개), 삼성SDI는 97GWh(합작 공장 3개)다. 각각 연간 기준으로 전기차 429만 대, 232만 대, 121만 대를 생산할 수 있는 규모다. 현 시점 북미 배터리 시장점유율 1위는 테슬라에 배터리를 공급하는 파나소닉인데, 국내 배터리 3사의 북미 생산시설이 전부 가동되면 북미 시장의 70%를 점유하게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들 배터리 기업은 3분기에도 좋은 실적을 이어가고 있다. 당초 증권가에서는 글로벌 전기차 수요 부진, 배터리 판매 단가 인하 등으로 국내 배터리 3사 실적이 주춤하리라 내다봤다. 하지만 LG엔솔은 10월 11일 분기 기준 역대 최대 영업이익을 기록한 3분기 실적을 발표했다. 매출 8조2235억 원, 영업이익 7312억 원으로 영업이익 기준 시장 전망치를 소폭 웃도는 어닝서프라이즈다(그래프 참조). 이에 아직 발표 전인 SK온, 삼성SDI의 3분기 실적도 예상보다 양호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LG엔솔 관계자는 10월 11일 “유럽 전기차 수요가 약세를 나타내지만 자사가 주력 시장으로 삼고 있는 북미 지역은 전기차 성장세가 지속돼 (배터리) 수요가 견고한 상황”이라며 “북미 생산 공장의 안정적 신·증설, 수율 향상 등이 이번 호실적을 견인했다”고 설명했다.

    K-배터리는 중장기적으로 중국 저가 배터리와 경쟁이라는 쉽지 않은 과제를 안고 있다. 중국 배터리 기업들은 국내 기업들이 주력하는 삼원계 니켈·코발트·망간(NCM) 배터리 대신 가성비가 좋은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로 글로벌 시장점유율을 빠르게 끌어올리고 있다. LFP 배터리는 NCM 배터리에 비해 주행거리는 다소 짧지만 가격이 30%가량 싸다는 것이 큰 장점이다. 현재 전 세계 LFP 배터리의 90%를 중국이 생산 중이며, 테슬라와 현대차도 중국산 LFP 배터리를 사용하고 있다. 또 아직까지는 중국 배터리 기업이 미·중 갈등으로 불이익을 보고 있지만,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등 관련 정책이 언제 순식간에 바뀌어 국내 배터리 기업을 위협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남인호 중앙대 화학신소재공학부 교수는 10월 11일 “국내 배터리 3사도 최근 LFP 배터리 개발 및 상용화에 뛰어들고 있다”며 “다만 LFP 배터리 양산에 성공하더라도 자원 매장량이 풍부한 중국과 원가 경쟁을 펼쳤을 때 이길 수 있는 확률은 희박해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남 교수는 “글로벌 시장점유율 방어 차원에서 LFP 배터리 개발을 등한시할 수는 없으나 이와 별개로 한국 배터리가 메인으로 가야 할 길은 기술 중심의 시스템”이라며 “하이니켈, 실리콘, 전고체 배터리 등 배터리 기술 자체에서 초격차를 벌리는 것이 자원 매장량이 부족한 한국 실정에 적합한 위기 극복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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